아버지와 딸 82
<신길우의 수필 >
대학 4학년에 다니는 딸애의 방에 갔다가 우연히 그 애의 글을 읽었다. 그냥 읽어보다가 만 것인지, 아니면 퇴고라도 할 요량으로 꺼내 놓았다가 무심히 그대로 놓아둔 것인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놓인 빛바랜 공책 속에서였다. 그것도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고 꿈도 많다는 여고 1학년 시절에 쓴 것이었다. 더구나 그 글이 나에 대한 것이었으니 호기심이 발동되어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공부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주 어렸을 때에도 그랬고 학교를 다닐 때에도 그랬다. 여고생이 된 지금도 ‘아버지’ 하면 즉각 떠오르는 것은 늘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시거나 글을 쓰시는 모습이다. 낡은 책상 사이로 묻어나는 고귀한 향(香)처럼 아버지에 대한 나의 인상은 언제나 아버지의 모습에, 아버지의 그늘에 어려 있다. 몇 십년간을 딱딱한 책상 앞에서 학문과 삶을 연구하시고 그것을 낙(樂)으로 삼으셨던 모습들이 어릴 땐 그저 귀품 있어 보인다는 생각에 마냥 좋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 좀 더 자라고 나니 그것이 한 치의 헛발도 꺼려하시는 아버지의 굳은 의지와 꾸준한 당신의 터울거리심이었으며, 또한 얼마나 고된 것이며 값진 것인지를 알 것 같다.
어느 땐 새벽녘까지 책상에서 논문을 쓰고 계시는 아버지를 뵈면 죄송스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며, 뭐라도 도와 드리고 싶어진다. 때때로 힘들고 피곤하시다면서도 눈을 비비시고 기지개를 켜서 뻐근한 몸을 펴며 열중하시는 모습은 학문의 어려움을 절로 실감케 한다. 때로는 낮은 지식을 가지고도 게으름을 피우며 딴청만 부렸던 내가 갑자기 죄인이 되는 느낌도 든다. 학생으로서의 임무,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내 능력을 스스로 비판하고 잠재(潛在)시킨 것이다.
오늘도 아버지는 변함없이 퇴색된 책장을 신중히 넘기신다. 어느 새 아버지 몸에 배어버린 다 헐어진 책들의 구질구질한 냄새, 고약하리만큼 진하고 짜릿하다. 그러나, 난 이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랑하게 되었다. 아마도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인가 보다.
앞으로 나도 달빛을 벗 삼아 열심히 공부하는 훌륭한 학생이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는 자세를 지녀야겠다. 느긋한 나이이심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보다 더 열심이시고 더 노력하시는 모습이야말로 참다운 학자의 모습이 아닐까?
읽기를 마치고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이 아이가 가끔씩 글을 써서 상을 타 오기도 하였지만 여고 1학년 초년 시절부터 글쓰기를 한 줄은 몰랐다. 여간해서는 자신의 글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문집을 만들자면서 글짓기 입상 작품들을 내놓으라 했을 때에도 이 딸애는 싫다며 한 편도 주지 않았었다. 그런 아이가 여고에 입학한 3월에 작문 노트를 마련하고 이런 글을 썼다니……, 내 무심에 순간 얼굴이 화끈해진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그 아이의 따스한 마음이었다. 철부지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으로만 여기며 지냈는데 이러한 면도 있었던 것이다.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나 마음을 써 주며 살았는가? 이 아이가 내게 준 것의 열에 하나만큼도 못될 것 같다. 언제나 나 할 일만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지낼 뿐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지 못하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어려서부터 제 스스로 살아가기를 기대하며 살았다. 우등상을 받아 오면 열심히 했으니 당연하고, 10여 등으로 떨어지면 그 역시 소홀히 했으니 당연하다는 태도만 보였을 뿐이다. 한 마디 칭찬이나 격려에는 인색하였고 꾸중이나 훈계를 능사로 여기며 지냈다.
나보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아이들에게 가끔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느냐고 물었고, 40대 후반에 대학원을 다녀 보니 힘이 들지만 놀기만 하던 아이들이 아버지를 따라 공부에 힘쓰더란 친구의 이야기도 서운한 마음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하였었다. 하나같이 잘 하기만을 바랬고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을 해 주기를 기대했을 뿐 자상하고 다정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지낸 것이다.
가끔 아내로부터 네 명의 아이 모두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숙제를 함께 해 준 적이 없다고 나의 무심(無心)을 불평하는 말을 들어도 오히려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아내의 무심(無心)을 무심하다고 말하곤 하였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 밑에서도 아이들은 잘 자라 주고 푸근한 마음들을 가꾸며 살아 온 것이다. 그저 고맙고 대견하면서 미안할 뿐이다.
또한, 내 자신이 글을 쓰고, 국어교과서에 실리고, 수필집을 내면서도 나는 한 번도 ‘나의 아버지’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보지 못한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이 아이만큼 나의 아버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살지 않은 것은 아닌 데도 나는 잡문 한 편도 써 보지 못한 것이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열에 하나만큼만 알아도 효자가 된다고 하였던가? 자식의 마음도 열에 하나를 이해해 주면 자부(慈父)가 되련만, 이제껏 엄부(嚴父) 노릇만 하여 온 셈이다.
이번 주말에는 조용한 곳으로 가족 외식을 하러 가야겠다. 마침 단풍도 곱게 물들고 있으니 가을 햇볕이 한층 따사로울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아이들의 글도 읽어보아야겠다. 그래서 어릴 때처럼 볼을 비비며 껴안고 뒹구는 즐거움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성장을 보고 느끼는 흐뭇함을 맛보며 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