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사람 <장편 시정시>

<연변 김응준>

2007-12-09     동북아신문 기자

1

연변사람은 하이얀 백두산이다
눈보라 막아선 선바위는 척추
백설 헤쳐 피여난 진달래는 얼굴
티없이 해맑은 천지물은 심장
은하수 내리뛰는 폭포수는 동맥
백열로 비등하는 온천수는 맘씨
하늘 높이 오똑 빼여난 모습
흘러가는 구름떼도 깊은 고개 수그린다


2

백두산 심산속을 뛰여나온
하이얀 샘물의 마음이다
두만강과 해란강
티없이 해맑은 두줄기 흐름
시커먼 퇴수물 밀쳐들어도
세월의 찌꺼기 적시여와도
하나의 원색으로
새하얀 심령의 색채로
끝없이 일렁이고 씻어내며
동으로 동으로
무지개 일어서는 먼 바다에로
하얀 돛 끊임없이 날리여간다

3

뼈는 바위다
한 뼈가 부서지면 다른 뼈 이어선
굽지 않는 백두산 바위다

성전에서 피어린 바위
연변땅 마을마다 산마다에
하이얀 비석으로 일어서니

아아한 열여섯 봉우리처럼
동방의 한개 하늘
뼈로써 끄떡없이 떠받들고있다


4

연변아가씨
얼굴은 장백산 방실 웃는 진달래꽃
몸매는 가녀린 소년기 미인송
노래는 심심산천 명창의 꾀꼬리
춤은 청청하늘 날아예는 백학
마음은 백두산 비등하는 온천수라
세상 만방에서 청혼이 너무 들어
연변을 소문놓는 《명표》의 보배둥이


5

아무데나 살지 않는
고결한 장백산의 미인송
이 세상 진짜 미남이다
세속의 먼지바람 불어쳐도
어지러워지지 않는 넋
백호같은 눈보라 덮쳐도
빠알간 알몸으로 맞서는 사나이
파아란 팔뚝 기발로 젓는다
거인같은 미남들이 한데 모여
한개 높은 하늘 받쳐들고
예쁜 꿈만은 식히지 않고
밤낮 익히며 기다린다
어차피 이 땅에 강림할
천궁에서 내리는 절색의 선녀들


6

통이 산악이다
아름드리 거목들도
이름없는 풀포기도 함께 키워주는
산중왕 호랑이도
약소한 다람쥐도 함께 품어주는
장백산의 흉금이다

제 아무리 먹구름 지지눌러도
          빙설이 들이조여도
          사나운 풍운이 몰아쳐도
쬐쬐한 세속과는
    구덩을 파고
    벼랑을 쌓고
하이얀 설산으로
푸르른 청산으로 드팀없어라


7

바다같은 평야는 없지만
산간의 좁다란 분지
충실한 옥토
슬기론 백성
세상에 이름높은
록색의 백옥미 빚어낸다

윤기 찰찰 넘치는 쌀밥으로
떡메의 메아리 깃든 인정미로
기름 동동 뜨는 감주로
손님을 혈육처럼 포옹해주는
뜨거운 인정 질기다

좁은 산간에 살지만
일등 백옥미에 정성을 담아
천리밖에 보내는
만리밖에 띄우는
바다의 흉금
사막같은 세월을 포옹하고
뜨겁게 뜨겁게 일렁인다


8

연변황소는
이 세상 소들중 으뜸의 미남
                  으뜸의 장사다
천근 멍에를 메고도
고귀한 머리 수그리지 않고
헌앙하게 앞으로 전진한다
겨레의 씨름판에 올라서
월계관 머리에 얹을제면
영각소리 구중천 울려가건만
하지만, 하지만
아직도 올림픽에 오르지 못하고
시골 씨름판만 지키는 거물
천년의 멍에 벗어메고
산너머 저 넓은 세상 가자고
오늘은 서투른 투우를 배우면서
새로운 피를 흘려도
주인에겐 변심없이 충실하구나


9

하얀 꽃
파란 꽃
노란 꽃
색갈은 서로 달라도
하나로 어우러진 어여쁜 화원

바람 불면 서로 장벽이 되여
큰비 퍼부으면 서로 우산이 되여
시샘 모르고
다툼 모르고
똘똘 뭉쳐온 미담
세기를 뛰여넘어
세상에 빛을 뿌리네

하늘의 거룩한 해님도
근심없는 눈길로
어여쁜 화원 굽어보누나


10

빌어먹어도 자식 공부시키는
어여쁜 맥락 이어간다

학교 없는 산촌을 떨쳐나와
도시에서 남의 창고 세방살이
호화의 아빠트 업수이 내려다봐도
소처럼 짐수레 끌고 끌어도
자식의 래일에 희망을 걸고
눈물 한방울 모르는 사나이

새벽엔 거리쓸기
낮에는 구두닦기
막벌이군 설음 태산같아도
푼돈 총총 모으고 모아
자식의 진학 춰세우는 녀인

이런 초매로운 맥락 이어져
시골에서 룡이 난다
봉황새 난다


11

산에는 오솔길 수레길 썰매길
산길을 잘 빼던 선조의 후예들
지금은 많이 산에서 내려와
벌판에 도시에
새길을 빼고 뺀다
굽이굽이 아흔아홉굽이
아리랑 고개길을 펴서
올곧은 턴넬을 빼고
황막하던 산기슭에 공항 닦고
세상 만리에 하늘길 빼고
온 우주에 나래치려
파란 날개 다듬는다

 

12

혈친의 정
백두산 바위 뿌리로 깊이 박혀

친구의 정
두만강 지류들로 갈래갈래 뻗어

사랑의 정
심산속 도라지꽃으로 티없이 피여

언제나 나를
    받들어주고
    포옹해주고
    키스해주는
최고의 복지다


13

연변의 높은 산들처럼
소문높은 술의 고향
격전의 년대에도
평화의 세월에도
용감한 술은
           하많은 호걸
           하많은 영웅
술술 빼내는
어여쁜 공훈 세웠기로
그 희생정신
톤급메달 주어도 아깝지 않으련만

절제의 예술콩클엔
영락없는 빵점이야
사람이 술을 먹는것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
술이 사랑도 먹는
그 장하고 어리석은 세속에서
깨여날 시절 왔노라
청신한 하늘에서 해비 퍼붓는다


14

새벽닭이 제일 먼저 홰치는 땅이다
아침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땅이다
선조들이 제일 먼저 개척한 땅이다
광복의 종소리 제일 먼저 메아리친 땅이다

하지만
이 광대무변한 대륙 마라손에서
앞장에서 달리지 못하고
가끔 뒤떨어져 우수에 잠기는 땅
앞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치는 땅
바다를 업지 못한것 큰 원이다
산악에 갇힌것 큰 한이다

어서 산악을 가르고
진짜 큰 대문 열고
바다로 나가자
바다 넘어 넓은 무대 오르자고
새벽닭은 오늘도 홰를 잦친다


15

토템같은 달구지 멍에
우리 동포들을 더 누르지 않는걸 보았으면

누더기같은 초옥 그림자
우리 산촌에서 자취 감추는걸 보았으면

떠돌이같은 동냥아이들
우리 거리에서 사라지는걸 보았으면

난 이 땅에서 쓰러져도
만세 부르며 안식하리라


16

시골의 페교
강단에선 참새 강의를 하고
구석에선 거미 설계도 그리고
교정에선 수탉이 병아리들에게
걸음마타기 배워주는데

백발 할아버지
자전거에 손자애 싣고
먼먼 도회학교 가는 길
솟아오는 해님을 보고
손자는 기뻐서 웃고
할아버진 손자 위해 웃는다


17

천리 타향에서 고향을 바라보니
끊임없는 주마등 돌아간다
황막한 북간도 개척하던
할아버지 쟁쟁한 괭이소리
메아리로 살아서 들리여온다
어찌나 이 아들을 춰세워보려고
밤낮 흙을 파던 아버지 갈구리손
학교에 끌어주던 어머니 따스한 손길
이내 가슴 외로움 헹구어준다
고향강  차돌처럼 많은 친구들
혈친같은 우정이 나를 부른다
하나씩밖에 없어서 더 귀여운
마누라, 아들, 손자, 손녀
두손 꼽아 날 기다리는 땅
사랑의 숨소리 나를 당긴다

떠나면 곧 그리운 고향
멀리 갈수록 더 가까워지는 고향
고향 없인 서러워 난 못살아


18

조국의 대륙은 하나의 큰 장기판
우리 연변은 장기판의 장기쪽 하나
장기쪽 가운데서도 작은 졸이다

보통 하나의 졸이
전반 국세 쥐락펴락 못하지만
때론 승부에 피줄로 이어져있나니

전반 장기의 승리를 위해
졸은 노상 앞장에서 강을 건너고
목숨으로 적의 궁전 돌진한다

              백 발


김룡칠

 

할머니는
파뿌리같은 머리 감고
참빗으로 비듬을 빗어내신다
긴 세월의 비듬도 빗어내신다

파란만장 인생살이
오리오리 백발에 서리여
서리서리 머리칼사이로
인고의 체취 풍긴다

그믐밤같은 머리
곱게 땋아서
갑사댕기 맨 외태머리는
추억속의 고운 꿈이고

버섯돋은 손으로
틀어얹은 머리에
가로 꼽는 은비녀는
할아버지 첫 사랑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