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죽같이 꿋꿋한 자존
장정일
세계에서 둘도없는 연변조선족자치주 50년의 자랑찬 력사를 더듬으며 연변일보는 <<그때 그 사람>>시리즈에 원로작곡가 허세록선생을 취급하고있다. 우리 음악사에 큰획을 그은 허옹이 작곡집을 내지 못한데 대해 남긴 감회의 말씀이 가슴을 친다--
<< 두터운 책을 낸다고 대길인가요. 한곡이라도 불리여지고 전해지는 노래를 지어야 진정한 작곡가이지요. 작곡집 한권 못내본 작곡가이지만 몇수의 노래로 만족할뿐입니다. >>
이 말씀에서 우선 허세록선생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작곡가가 작품집 하나 남기지 못하고 타계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작품집 한권에 돈이 얼마 드는데? 지금은 돈만 내면 무더기로 찍혀나오는게 책이 아닌가! 허세록선생같은 천재적인 작곡가만은 원고료를 지불하는 제대우를 하면서 책을 찍어주면 안되는가? 그만한 가치가 없어서인가 아니면 정말 돈 때문에 못나왔는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가슴에 마멸할수 없는 음악의 진한 감동을 남긴 작곡가의 담담한 말씀에 나로서는 안타깝고 송구스러울뿐이다.
허지만 타방으로 나는 허세록선생의 대가다운 예술신념과 덕성, 그리고 송죽같은 예술가의 자존에 머리가 숙어지며 일말의 위안을 느끼기도 한다.
깊은 강물은 조용하다.
큰 흐름은 소리가 없다.
정진옥선생처럼 우리 음악엔 거인적인 존재였건만 허세록선생은 확실히 작곡집 한권 남기지 못했고 평생에 개인작품음악회 한번 열어보지 못했다. 따라서 그 흔한 출간기념회나 작품세미나 한번 개최해보지도 못했고 그토록 흔해빠진 상을 한번도 타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확실한것은 그의 음악생애, 그의 음악교육, 그의 음악사상, 그의 음악명작은 이 모든 떠들석함과 호들갑과는 무관하게 세월과 더불어, 여러 민족 남녀로소의 정감세계와 더불어 영생하고있다는 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잠깐이나마 허옹과 스쳐지나간 사연이 있어 더구나 감격의 정을 지워버릴수가 없다. 소학시절 나는 등교시에 연길다리를 지나면서 허다한 분들이 허세록선생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하는 장면을 여러번 목격한 적이 있다. 1954년 여름방학기간 나는 연길시소년합창단에 뽑히워 정진옥선생이 지휘한 연변가무단 관현악단의 반주로 심양에 가 레코트취입을 한적이 있다. 그때 아동가요 4수를 취입했었는데 그중의 두곡이 허옹의 <<고개길>>과 <<강남가는 제비>>였다. 그뒤에도 나는 소년합창단의 여러 단원들과 함께 아동음악극록음때문에 허선생님과 그가 지휘한 연변방송국 과외경음악단의 분들을 자주 만나뵌 적이 있다.
나의 동년 예술의 꿈은 이렇게 허세록선생의 음악과 인연이 닿았었다고 할수 있다. 지금도 그때의 그 감명을 잊지 못해 저도 몰래 선생의 <<베짜기노래>>나 <<고향생각>>을 흥얼거릴 때가 있다. 명곡은 이렇게 세기를 넘도록 긴 세월이 흘러도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감미로운 여운으로 영생하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명곡의 가치이며 이것이 바로 예술가의 자존이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 세상이 돌아가는것은 력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헌신적이고 용기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으므로 가능하다. >> 우리는 이렇게 말할수 있을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명맥을 유지하고 번영발전하는것은 허세록선생과 같이 헌신적이고 존엄있는 << 그때 그 사람 >>들의 예술혼과 자존이 있으므로 가능하다고.
연변일보 / 2002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