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지원 놓고 서경석-김해성 목사 충돌

2004-01-09     운영자
[조선일보]2004-1-8

중국동포 국적 회복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서울 조선족 교회 서경석 목사와, 국적 회복 운동의 즉각 중단을 주장하며 중국 동포들을 재외 동포의 범위에 완전하게 포함시켜야 한다는 재외동포법 개정을 추진하는‘중국 동포의 집’ 김해성 목사가 7일 정면으로 충돌했다.
두 목사는 이날 서울 정동 ‘4·19 도서관’에서 13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재중동포문제의 해법에 대한 공청회’에서 깊은 갈등의 골을 드러냈다. 중국 동포를 지원하는 양대 단체의 이같은 노선 차이로 인해 불법 체류 중국동포들은 한국 정부의 발표대로 정해진 시점까지 출국해야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심한 혼란까지 겪고 있다.
“서경석 목사가 주도한 국적회복운동 때문에 중국 현지에 있는 200만 조선족 동포들이 납죽 엎드려서 숨도 못쉬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국적회복 운동에 참가했던 중국동포들이 우리 교회로 와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서목사가 과오를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서는 것이 동포들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김해성 목사)
“김해성 목사와 임광빈 목사가 벌여온 재외동포법개정 투쟁을 국적회복운동과 같이 2800명의 동포들이 8개 교회에서 단식투쟁을 벌였다면 중국 정부가 똑같이 긴장했을 것이다. 중국 동포들은 다른 외국인 노동자와 달리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가 있다는 이슈로 투쟁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서경석 목사)
해외교포문제 연구소 주최로 열린 이날 공청회에서 서경석 목사와 임광빈 조선족복지선교센터 소장은 각각 “국적회복을 통한 해법이 바람직하다”, “재외동포법의 평등 개정만이 유일한 대안이다”라는 주제로 약 30분씩 발표를 했다. 공청회는 당초 두 사람의 주제 발표 뒤 정대화 변호사와 김해성 목사가 20분씩 발언을 한 뒤 다른 참가자들의 견해를 듣고 마무리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김해성 목사가 자신의 토론 차례가 되자 서경석 목사에 대한 비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이에대해 서 목사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예정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넘기며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김 목사는 “작년 10월쯤 서 목사가 ‘동포들이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헌법 소원을 내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2~3년은 출국이 보류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나는 ‘여기있는 몇천명 살리자고 중국 현지의 200만명을 다 죽일 수도 있다’고 말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후 관련 단체 대표들과 학자들 40여명이 함께 집단 토론을 하고 ‘역시 중국국적 포기운동은 안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모았지만 서 목사가 혼자 뛰쳐나가 일을 벌여 여기까지 왔다”고 비판했다.
김 목사는 “서 목사는 처음에 벌였던 ‘중국 국적 포기·한국 국적 취득’ 운동에 대해 중국 동포들이 중국 내 가족의 신변에 위험을 느껴 동참하지 않자, 이를 포기하고 얼마전부터는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란 새로운 이름을 쓰고 있다”면서 “이는 서목사가 사실상 꼬랑지를 내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서목사가 추진해온 국적회복 운동은 불법 체류자들도 헌법 소원을 내면 2~3년은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제추방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한 임시 방편이었다”며 “이런 문제를 명백하게 까발리고 잘 잘못을 따지는 일이 5000여명의 중국 동포를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이때문에 공식 석상에서 이같은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경석 목사는 “중국 동포들을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와 똑같이 생각하는 정부의 논리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이들의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를 매스컴에 부각시키는 일이 필요했다”며 “수천 명이 과천 법무부에 몰려가 국적 회복을 신청하고, 헌법 재판소에 가서 헌법 소원을 내고, 마지막으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가는 세 가지의 드라마틱한 기획은 홍보 전략으로 꾀를 내본 것”이라고 말했다.
서 목사는 이어 “국적 회복 운동이 중국 내 동포사회를 위험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서 중국 북경에 사람을 보내 확인해봤지만 중국 정부가 동포들에게 위해나 불이익을 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보 전략 탓에 중국 정부가 오해가 생길 수도 있어서 나중에는 국적회복 운동 이야기를 괜히 꺼냈다고 후회를 했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중국 정부의 오해를 어떻게 풀까 궁리하다가 ‘국적 취득 운동’이라는 표현까지 시정해 ‘고향에 돌아와 살 권리 찾기’로 바꾸게 되었다”며 “운동이 실패해 꼬리를 내린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논란이 벌어지자, 130여명의 방청객중 상당수는 김 목사의 발언에 대해서는 “맞습니다”라고 말하고, 박수를 친 반면, 서 목사의 발언에 대해서는 “발언 시간이 10분이 넘었다”, “표정도 안바꾸고 거짓말을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서 목사는 이에대해 “우리 교회에서는 20명 정도만 방청을 왔고 나머지는 임광빈, 김해성 목사 교회에서 왔다”며 “청중에서 압력을 가하시는데 이런 식의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못하겠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공청회에 참석한 호남대 김태기 교수(정치학)는 기자에게 “지도자들 사이의 골이 깊으니 동포들끼리도 분열되어 싸우고 있다”며 “동포들을 위해 서로 입장이 달라도 같이 운동할 수 있는 것인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3·1운동 기념사업회 김봉석 사무총장은 공청회 종료 직전 마이크를 잡고 “단기적으로 절실한 재외동포법 개정에 노력하고 장기적으로 국적회복 문제를 하나된 마음으로 해결해 나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재은 기자 2ruth@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