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푸~

<우상렬 만필>

2007-11-09     동북아신문 기자

 연변이 어떤 곳이냐?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이니 술놀음이 많은 곳. 그렇다. 그래서 나는 연변에 있을 때 술에 절여 있었다. 몸에서 술 냄새가 풀풀 났다. 1차, 2차, 3차에 새벽에 두부-뚜푸~ 소리가 날 때까지 퍼 마시다나면 녹초가 될 때가 많았다. 여기에 이튼 날 땡하고 해 뜰 날이 되어도 일어나지 못하고 머리가 땡 해나서 하루 점도록 누워있는 꼬락서니는 내 스스로도 못봐주겠다. 그래서 이제 술은 절대 안 마셔, 술 마시면 개아들놈이야 하면서도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를 붙여주면 또 한잔 하는 내 꼬락서니라구야 정말 못 말리지. 그리고 또 후회하고... 그래서 내가 생각해낸 것이 저 멀리로 도망가기. 그런데 바로 이때 학교당국에서  포스트닥인지 무언지 나도 잘 모르는 닥을 하러 저 멀리로 가라니 어디 이렇게 아다리가 맞아떨어질 수 있으랴! 이래저래 나는 복 있는 놈이다.

그래 나는 비행기를 타고 훨훨 날아 이 머나먼 남쪽 땅에 와 있다. 처음에는 그래도 노마에 가면 노마법을 따르는 식으로 적응을 하느라고 호기심에 신비감까지 느끼며 그럭저럭 보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영 말이 아니다. 내 꼬락서니를 좀 보라. 하루 점 도록 앉아 하는 짓이란 책하고 씨름하기. 그래 이젠 지겹다, 지겨워, 책도. 어떤 놈도 나를 한잔 하자고 불러주지 않는다. 연변에서 그렇게 흔하게 마신 술 한 잔 할 친구 없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내 친구가 없다. 외롭다. 쓸쓸하다. 왕따 당한 느낌이다. 한없이 잡쳐지는 기분. 그래서 ‘잔 들고 권할 이 없으니/달을 불러 마시노라/달빛에 내 그림자 해서 세 사람이니/술 맛이 절로 나네’,「月下獨酌」의 이백시가 절로 읊어진다. 나도 시인이 되려는가봐. 오랜만에, 정확히 말해서 가물이 콩 나듯이 어쩌다 술 장소가 생기면 나의 기분은 붕 뜬다. 그런데 이것도 잠시, 나의 기분은 풍선이 펑 하고 터지듯이 곧바로 터지고 만다. 술은 있으되 술 마실 친구들이 없다. 냠냠 맥 물 같은 포도주나 맥주를 한 잔 부어놓고 마시는 흉내만 내고 안주만 냅다 먹어주기에 여념이 없는 작자들. 점잖고 세련된 척 하지만 먹기에 바쁜 너희들, 내 보기에 탁하다 못해 민하다. 그래서 내가 붙여준 이름 먹자주의들, 딱 맞다 딱 맞아. 모두들 잘 먹어 얼굴에 게기름이 번지르하다. 못 먹은 나만은 비루먹은 개처럼 깨죄죄하다. 실은 술만 퍼 마시는 사이 먹자주의자들이 어느새 싹 먹어치우고 말았으니, 못 먹는 것도 당연지사지.

아, 연변아, 그립다. ‘床前明月光,疑是地上霜./擧頭望明月,低頭思故鄕.’이백의‘靜夜思’가 아니라 나의 ‘靜夜思’로 받아주렴. 나의 그 술친구들 그립다. 먹자주의자들보다 세련되지 못한 것 같지만 훨씬 멋이 있는 나의 마시기주의 친구들이 그립다. 철이야, 돌이야, 땡이야, 내 연변에 가면 술 사줘야 해. 많이많이. 내 여기서 마시지 못해 기갈 들었던 만큼. 아니, 더 많이. 또순이, 갑순이, 금순이도 부르고. 우리 술상에서 세속의 골치 아픈 모든 거 다 털어버리고 형님에, 동생에, 아저바이, 조카... 권커니 작커니 참 재미있고 멋있었다. ‘한 잔 먹세그래, 한 잔 먹세그래...’‘將進酒 ’의 송강정철이 우리가 아니냐? 그래 영웅호걸이 따로 있냐?  한 잔 하고 호쾌하게 천하를 호령해보는 것도 내 멋이지. 사실 나는 영웅호걸이고 자시고 다 떠나 그저 통하는 수컷들 몇이 만나 별 볼 일 없이 한 잔 하며 시시컬컬 희희작작 거리는 것이 내 인생의 최대낙의 하나다. 여기에 암컷 몇이 끼어들면 더 좋고. 암컷이야 통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다다익선. 아이 다 키운 놓은 아준마들이 할 일 없이 만나서 맥 물 놓고 인생에 최대의 낙인양 수다를 떨듯이 말이다. 근엄한 책보기와 논문 쓰기에만 돌입한 중대가리 같은 내 여기 인생은 역설적으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래 술 마신다고 못해내는 일이 어디 있냐? 더 잘 해내는 우리가 아니냐? 잘 나도 내 청춘, 못 나도 내 청춘... 우리 내 멋대로 살기요. 이제 우리 연변에서 뚜푸~ 소리날 때까지 마시기요!

 

2007.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