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해주니까…저도 잘 대해주는거죠”
외국인 노동자와 정쌓기 7년 ‘천막제작업 김재식 사장’
2004-01-08 운영자
“명절 때 저 친구들하고 고스톱을 쳤는데, 글쎄 내 돈을 다 따먹더라니까요.
아주 한국사람이 다 됐나봐요.” 우리와 똑같던데요
경기도 광주에서 10여년째 천막 제작업체를 운영해 온 김재식(46) 사장. 식당에서 밥해주는 아주머니를 빼고 직원이 모두 8명인 조그만 공장을 꾸려오고 있다. 직원 가운데 절반이 스리랑카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다. 7년전 직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제발로 찾아온 스리랑카 노동자를 채용한 게 첫 인연이었다.
지금까지 스리랑카 이외에 네팔·인도·페루·조선족 등 여러나라 출신 외국인노동자 20여명이 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다 나갔다. 사업을 하는 김 사장에게 이들 외국인노동자들은 우선 고마운 존재였다. 힘든 일 꺼려하는 ‘눈높은’ 한국인들이 이 조그만 회사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 때 외국인노동자들이 일을 해 줘 공장이 문을 닫는 최악의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열심히 일 해주니까 저도 잘 대해주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김 사장은 고마움을 넘어 갈수록 이들에게서 ‘각별한 정’을 느낀다. 매일 한솥밥 먹고 작업장에서 얼굴을 맞대다 보니 정이 드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매운 음식과 고기를 좋아하는 스리랑카 노동자들과 한달에 한두번씩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고 나면 금세 친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경국가인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이 어른을 깍듯이 공경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억척스럽다는 점도 한국인과 비슷해 친근감이 더 크다. 지난 여름휴가 땐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직원들 다 데리고 동해 바닷가로 여행도 다녀왔다. 김 사장은 직원과의 관계를 “그저 한가족 같은 사이”라고 짧게 표현했다.
김 사장이 꼭 지키는 것들
말이 달라 서로 완전한 의사소통을 하지는 못하지만, 김 사장은 이제 표정과 눈빛만 봐도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함께 일하는 한국인 직원들도 외국인노동자들과는 친구 사이다. 이곳에서 일한 지 3년 됐다는 이영주(42) 과장은 “일 마치고 이들과 술 한잔 하며 ‘돈 벌어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얘기를 하다 보면 이들도 우리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김 사장이 이들 외국인노동자들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고용주와 노동자라는 자본주의적 관계 때문에 껄끄럽거나 부딪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외국인노동자들이 게으름을 피울 때 싫은 소리를 하면 이들도 얼굴이 굳어지고 금세 손이 느려진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가 근무시간이지만, 일감이 많을 땐 야근과 잔업을 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김 사장은 꼭 지켜야 할 것들을 어기지는 않는다. 첫째, 월급을 제때 꼬박꼬박 줄 것. 둘째,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인간적인 대우를 해 줄 것.
빨리 돈모아야지 무슨 술이냐
이곳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삼바트(30)와 저머리(27) 부부는 “옛날 일했던 회사에서 3달치 월급을 못 받았고 욕까지 얻어먹었다”면서 “이곳 사장님은 월급을 많이 주고 꼬박(꼬박) 주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김 사장이 외국인노동자들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난 20여년 전 유럽 선진국으로 돈 벌러 떠난 우리나라 노동자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지난 70년대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나간 우리 노동자들과 지금 저들과 크게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똑같이 돈을 벌러 이역만리를 날아온 외국인노동자들을 한국인 노동자처럼 대접하는 게 김 사장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외국인노동자라고 해서 월급을 일부러 떼먹거나 욕을 하고 심지어 때리는 고용주가 진짜로 있냐”고 반문한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는 우선 묵을 곳을 제공해줬다. 삼바트 부부는 공장 옆에 태양열로 난방을 하는 별도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나머지 두 직원은 컨테이너를 개조한 방을 숙소로 줬다.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들이 아플 때 약국에서 간단한 약을 사다 주는 일도 김 사장의 몫이다. 일이 힘들다고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직원에게는 “돈 벌러 왔으면 빨리 돈을 모아야지 무슨 술이냐”며 잔소리도 한다.
배신감 느꼈던 적도 있다
김 사장이 외국인노동자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했다가 배신감을 느꼈던 적이 없지는 않다. 지난해초 한 인도 출신 노동자는 많은 월급에 돈까지 빌려주자 3개월 만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외국인 직원 7명을 데리고 강원도로 휴가를 다녀왔더니 이번에는 모두들 다른 공장으로 자리를 옮겨버려 공장 문을 잠시 닫아야 했던 일도 있었다. 더 큰 아픔은 두달 전에 겪었다. 지난해 11월 공장에서 일하던 다라카(32)란 직원이 자살을 했다. 4년 넘게 이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너무나도 성실한 모습을 보여줬던 직원이었다. 권투선수처럼 덩치가 큰 다라카는 마음씨도 좋아 김 사장의 어린 두 딸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왔다. 그러던 다라카가 불법체류 신분임을 괴로워하다 단속에 쫓기게 되자 결국 지하철 몸을 던졌다.
경찰과 외국인노동자의집 김해성 목사로부터 소식을 전해 들은 김 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김 사장이 다라카의 주검을 확인하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두 딸아이에게 다라카 삼촌의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며 눈물만 흘렸다”고 김 목사는 전했다. 김 사장은 “가족처럼 정이 든 다라카를 한국인과 똑같은 예우로 보내주고 싶다”며 장례식을 치르고 주검을 스리랑카의 가족에게 보내줬다.
성실하던 직원의 자살…그리고 오해
아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다라카의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 스리랑카 신문에 “다라카가 악덕 기업주로부터 혹사당하다 자살했다”는 기사가 났다며 아들의 죽음을 돈으로 보상해놓으라는 것이었다. 다른 스리랑카 출신 직원들이 “신문기사가 엉터리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안다”며 위로했지만 상처를 지울 수는 없었다. “여기서 일하다 돈을 모아 돌아간 외국인 직원들로부터 종종 전화나 편지가 옵니다. 어떤 이는 ‘한국 음식과 기후가 그리워 다시 갈 테니 일자리를 주겠느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가장 뿌듯하죠.” 김 사장은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현실적이지 못해 인권침해 등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꼬집는다. “한국인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이기 때문에 이들의 취업을 합법화시키는 것이 경제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광주/글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ch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