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불법체류자의 일본생활체험기(20)
사요나라 일본이여!
출입국안에서 천엔 내고 전화카드 사면 십분가량 통화할수 있다. 그리고 휴일 제외하곤 하루에 한번 10분동안 면회도 할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잛은 시간때문에 하고싶은 중요한 말들은 잊어먹지 않도록 미리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유리창너머로 줄 끊어진 구슬마냥 눈물 흘리는 설이모습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저려온다!!! 유리창 사이 두고 손바닥 맞대고 축해진 서로의 얼굴 보면서 한번만이라도 그 얼굴의 눈물이라도 닦아주고싶었다. 십분이 어찌나 빨리 가는지 그냥 들어왔다 나가는듯했다. 시간이 되여 서로 갈라질 때면 설이가 울면서 날 부르는 에절한 소리에 내 가슴은 찢기고 남자답지 못하게 닭똥같은 눈물을 둘렁둘렁 잘도 훌렸다. 감시원들도 감동되는지 조금 시간이 지체되여도 너무 재촉하지는 않았다.
갈라져 감방에 들어서면 혹시라도 돌아가는 설이모습이나마 보이려나 해서 목을 길게 빼들고 밖을 내려다 보았지만 그 먼 거리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이는 어느날 면회하러 와서 5월 1일날 비행기로 나를 보내기로 표를 끊어놓았다고 했다. 그러나 골덴위크 련휴일 때인지라 다른 때보다 이만엔가량 더 비싸다고 했다. 나는 표값이 어떠하든 관심이 가지 않았다. 다만 갇혀있는 몸이라도 설이가 곁에 있다는것이 좋아 표를 일주일후 즉 8일표로 바꾸라고 했다. 하루에 십분일망정 설이얼굴 볼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다행스러웠다.
2006년 5월8일, 드디여 일본하고 《사요나라》를 할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곱시가 되자 출입국인원이 우릴 데리고 지하에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거기에는 그날에 떠나는 불법체류자들이 수십명이 있었다 허리띠랑 신이랑 핸드폰이랑 그때에야 돌려주고 자기 짐들을 확인하게 하였다. 큰 뻐스에 앉아서 우리들은 두명이 수갑 하나에 묶이워 한 뻐스에 국적도 인종도 다르지만 화목하게 나란히 앉아 나리따공항으로 떠났다.
공항에 도착하여 보니 나의 귀국행 비행기는 오후 두시에 떠난다는것이였다. 시간이 되여 비행기 타러 갈 때 역시 수갑차고 비행기에 오른 다음 풀어준다는것이였다. 창밖에는 비가 구질구질 내린다. 비행기에 오르자 난 인차 호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내 설이한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즉시 울리는 전화 진동음, 전화를 받아보니 흐느끼며 우는 설이가 나만 혼자 가지 말고 자기도 함께 데려가라는 애끊는 울부짖음을 실어왔다.
비록 이렇게 일본땅을 떠나지만 일본의 하늘아래 어디선가에서 내가 탄 비행기를 눈바램해주는 설이가 있었다. 영원히 변함없이 나 하나만 사랑하겠다는 설이. 전화기를 내려놓았건만 내 귀전에는 설이의 울부짖음이 여운으로 남아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다. 창밖에는 우리의 눈물인듯 비가 구질구질 내린다.
얼마후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큰 희망을 품고 온 일본땅이였는데 이모양 이꼴로 쫓기워가는 내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외국땅에 남겨놓고.
세시간 남짓이 날으니 확성기에서 상해포동공항에 온것을 환영한단다. 비행기에서 내리기전에 공안 한명이 나를 마중왔다. 그를 따라서 한 사무실에 들어서니 벌써 저녁진지 드셨는지 이를 쑤시던 경찰 한명이 나를 보고 왜 일본에서 압송되여오느냐 언제 일본에 갔고 어느 공항으로 갔냐고 하면서 당장 덮칠것처럼 으르렁거린다. 꼭 마치 빚받이 다니는 깡패상을 하고. 손목에 찬 수갑을 남들이 볼가봐 천으로 가려주고 비행기에 앉을 때 실례했다면서 잘 가라고 허리굽혀 인사하던 일본공항 경찰들과는 너무나 뚜렷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였다.
심문이 끝나면서 벌금이라도 하라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별소리 없으니 휴~ 한숨이 나왔다. 공항 출구로 나오면서 머리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서쪽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타고있었다.
이제 밤이 지나고 또다시 새 아침이 올것이라 믿으면서 난 사람들이 붐비는 고속뻐스에 몸을 실었다.
(끝)
/ 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