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하는 한국정부 믿을 수 없다"

2004-01-05     운영자
[오마이뉴스]2004-1-5

서경석(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 목사가 불법체류 재중동포에게 자진 출국할 경우 6개월 뒤 재입국 등의 특혜를 보장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강조해 설명했지만 동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특히 국적회복운동에 참가한 동포들은 중국정부가 강력 처벌계획을 밝혔다며 귀국을 거부했다. 근본적인 대책이 모색되지 않는 한 단속과 잠적의 악순환에 따른 사회 문제가 불가피 할 것으로 우려된다.

서 목사는 지난 4일 오후 4시부터 2000여명의 재중동포들이 모인 가운데 서울 구로동 서울조선족교회 도로변에서 중국동포 자진귀국 설명회를 가졌다. 서 목사는 귀국 신청자 3234명의 명단을 정부에 전달한데 이어 5일까지 명단을 추가로 접수받아 또 다시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서 목사는 설명회에서 "정부가 작년 말까지 정한 자진출국 날짜를 1월 15일까지 마지막으로 연기했다"면서 "자진 출국하면 금년 7월에 고용허가제로 재 입국할 수 있는 예외적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는 정부방침을 강조해 설명했다.

서 목사는 또한 "(자진 출국자)명단을 국무조정실에 넘기면 한국 정부가 1월 안에 고용허가제 안을 가지고 중국 정부와 협약하게 돼 재 입국과 취업이 가능하다"면서도 "(현재는)정부가 재 입국을 보증할 단계가 아직은 아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를 듣던 일부 동포들은 "무엇을 믿고 나가느냐"며 항의했다.

서 목사는 이에 대해 "정부는 내일(5일)부터 대책을 논의해 모레(6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부 방침을 발표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한 동포는 "(중국에)들어가서 잡히면 어떻게 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또 일부 동포들 간에 "듣고 싶지 않다", "이야기 계속하라"고 언성이 높아지자 서 목사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서 목사는 이와 함께 "국적회복운동과 단식농성 참가자들은 교회가 특별히 관리할 것이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도록 책임질 생각이다"며 "정부당국과 나눈 많은 이야기가 있으니 6일 정부 기자회견을 보고 최종적으로 거취를 결정하라"며 모종의 밀약을 암시했다.

서 목사는 특히 "언론이 국적회복운동과 단식농성 참가자들이 중국에 가면 1500만원의 벌금과 3년의 징역을 받는다고 했는데 잡혀간 사람이 없었다"면서 "이세기(한중문화협회) 회장이 주중대사관에 질의한 결과, 중국정부는 국적회복운동과 농성참여를 이유로 어떤 형태의 불이익이 없다고 확약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북경의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농성참가자 숫자, 이름도 중국정부에 없으며 처벌 의사도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면서 "국내 언론의 보도 때문에 재중동포와 한국의 재중동포들이 제풀에 걱정한 것"이라며 피해가 발생하면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강조했다.

"들어가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설명회가 끝났지만 대다수 재중동포들은 흩어지지 않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모여 웅성거렸다. 이들은 정부가 안전 귀국과 재 입국을 보장하지 않는 한 출국하지 않겠다며 불신감을 터트렸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재중동포들은 "들어가 죽으나 여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며 "한국정부가 동포를 속인 게 어디 한 두 번이냐.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며 자진출국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자신을 합법체류자라고 밝힌 정봉준(26·가명·길림성)씨는 "작년 12월 23·24일 이틀 동안 CCTV(중국관영방송)를 통해 중국정부가 국적회복에 참가한 5700여 명을 처벌하겠다고 보도했다"면서 "부모님이 국적회복운동에 참가했는데 귀국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한국정부와 서 목사에 대한 불신을 제기했다.

김태동(50·가명·흑룡강)씨는 "청도와 연변시 공무원으로 있는 동서와 조카가 컴퓨터 조회를 하다가 내 이름이 명단에 들어 있는 걸 봤다면서 10년 안에는 오지 말라고 했다"며 "우리가 중국정부를 더 잘 아는데 반드시 처벌한다. 다급한 김에 국적회복운동에 참여한 게 너무 후회된다"며 자신을 원망했다.

박용수(58·가명·길림성)씨는 "회관(공항출입관리기관이라고 함)에 근무하는 친구 동생이 동북 3성(요녕, 길림, 흑룡강성) 공항에서 단속이 있으니 지금 나오지 말라고 했다"면서 "서 목사가 국적회복에 참가할 때는 잡혀가지 않겠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말이 틀려지고 있다. 중국에 돌아가면 집안이 망한다"며 단속이 벌어지면 잠적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을 합법체류자라고 밝힌 이길자(여·51·가명·요녕성)씨는 "아들이 단식농성에 참가했는데 불안해서 오도가도 못하고 일도 못하고 있어 큰일이다"면서 "일본 놈에 쫓기는 것보다 더 심하다. 오락가락 하는 한국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한국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성토했다.

안영수(50·가명·길림성)씨는 "이대로 쫓겨가면 중국동포들이 한국 정부와 한국 동포들을 몹시 미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민족간 분열을 일으키는 강제추방 정책을 포기하고 단속을 풀게 해달라"며 하소연했다.

이밖에 다른 동포들도 "2∼3개월 지나 돈이 떨어지고 굶어죽는 게 눈에 훤하다. 돈 떨어지면 강도로 변할 수도 있다", "차라리 세금 내고 일하게 해달라. 그러면 한국정부와 동포들이 좋은 일 아니냐", "가도 죽고 안가도 죽느니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등의 절박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정부 "자진출국 마지막 조치, 강력 단속과 연행하겠다" 강경 방침

정부가 불법체류 재중동포들의 자진출국을 유도하기 위해 출국 시한을 보름 연장하고 6개월 뒤 재입국 혜택을 주겠다고 제시했으나 동포들이 정부정책에 강한 불신감을 밝히고 있어 자진출국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정부는 작년 12월 31일 고건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에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자진출국 마감 시한인 이날까지도 귀국 신청이 많지 않자 보름을 늦춘 1월 15일까지 출국기한을 연장했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자진출국의 마지막 조치라고 설명했다.

최경수 국무조정실 사회수석조정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법체류자의 보호는 장기간 방치할 수 없는 문제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면서 "(장기간 농성장) 지역·장소에 대해서는 필요시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자진출국 이후의 강력 제재조치를 시사했다.

최 사회수석조정관은 2일 최의팔 상임대표(외국인노동자협의회)와 서경석 목사(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와의 면담에서 △1월 15일까지 출국하는 모든 미등록 노동자 고용허가제로 인력도입 시 1순위 보장 △1월 8일부터 합동단속 시작과 (불법체류 노동자 고용한)기업주 강력 단속 △농성장을 벗어난 집회 시위는 강력 단속과 연행하겠다는 등의 정부방침에 대한 기자회견을 6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 사회수석조정관은 5일 오후 성공회대, 기독교백주년기념관, 기독교연합회관 등 3곳의 농성장 대표들과 만나 불법체류 노동자에 대한 자진출국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해성(43·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대표) 목사는 4일 "정부로서는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장기농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체류자가 늘어나고 있어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일관성 없는 이주노동자 정책이 걸림돌이 됐는데, 정부가 고용허가제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어 나머지 문제에서도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할 경우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편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은 작년 12월 3일 "금년 말까지 자진출국할 경우 입국규제를 최장 2년에서 6개월로 단축하고 범칙금을 면제키로 하였으며, 중국동포의 경우에는 불법체류기간이 2년 미만인 경우 입국규제를 유예키로 하였다"며 "중국동포의 경우 취업관리제 자격대상이 되는 자에 대해서는 금년말까지 자진출국 시 우선 재입국하여 취업할 수 있도록 하고 취업 업종도 건설업을 추가하는 등 확대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밝힌 바 있다.


/조호진 기자 (tajin@ohm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