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눔의 거시기..."

<정정배 醉說>

2007-10-08     동북아신문 기자
 토요일, 공장에 너무 일찍 갔더니 문을 열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며 핸드폰으로 텔레비를 조금 보았더니 핸드폰 빠뜨리가 다 나갔다. 제길, 앞집신문사에서 날짜가 지난 신문 두개를 빌려 갖고 밖에서 보고 있노라니 신문 두개를 다 읽었는데 ... 회사의 문은 닫힌 데로 이더라


혹시나 해서 문을 두드려 보았더니 ㅎ ㅎ 글쎄, 벌써 어느새 모두들 어느새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 일인지 문을 꼭 닫고 일을 하다니 ... 난 조금 이상했다. 더욱이 요즘처럼 더운때 말이다.


회사에 들어서니 모두들 반긴다. 비록 지각 아닌 지각을 하였으나 모두들 반긴다. 나한테 전화 까지 하였단다. 내 핸폰이 빠데리가 없어서 받지 못한 나다. 어쩐지 오늘 나를 반기는 것은 이상한 느낌도 있더라.


아줌마 한분이 말씀 하신다. " 아저씨 들어 올 때 머 못보셨어요. " " 아니 아무것도 못 보았는데 ..."


" 한 번 더 나가 보세요. 무어 있어요. 에구 더러워서 ... "


" 또 쥐를 잡았어요. " 공장엔 쥐가 많아서 종종 쥐들이 잡히는 것이어서 내가 한 말이다.


실장님이 또 한마디 보탠다. " 난 저런 것은 더러워서 못치워 ! 아저씨 치우세요."


난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두들 나를 기다리는가 의아해 하면서 공장 문을 열고 다시 문밖을 내다보았다.


엉, 이거 뭐냐 ? 누가 회사 문 앞에다 이런 짓을 하였단 말인가?! 난 기막혔다. 어이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눔의 거시기, 인분이었다. 그것도 개똥도 아니요 고양이 똥도 아니요. 쥐똥도 아닌 바로 누런 거시기었다.


이런 공장 문 앞에 누가 똥을 싸놓고 갔던 것이다. 글쎄 어떤 늠인지 급해서인지 아니면 무슨 원인인지는 알길이 없지만, 분명 인분인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똥도 물똥인 것을 보니 무척이나 급했던 모양이다. 난 나도 장이 나빠 매우 화장실이 급해서 하마터면 바지에 실례할 뻔 한 적이 있어서 좀 이해가 되였지만 이건 아니다 싶더라. 어쩌면 남의 공장 문앞에다 실레를 한단 말인가? 그것도 큰 것을 말이다.


그러나 어쩐지 조금 이상하였다. 화장실이 급한데 왜 공장 문앞에다 쌌을가 조금 더 나가면 공중화장실도 있고 조금 더 나가면 자그마한 공원도 있고 그 속엔 자그마한 화단도 있고 나무도 있어서... 꽤 볼일 보기 괜찮을 텐 데 말이다.


하여간 이 인분을 난 두말하지 않고 삽으로 흙을 가져다 덮어놓고 다시 삽으로 떠서 화단에 버렸다. 그리고 물로 깨끗이 씻고 딲고 하였더니 그 다음에는 아줌마들이 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수다를 떨면서 일들을 하더라.


모두들 그 똥을 치우니 꽤 기분이 좋아 졌는지 말들이 많아진다. 똥을 보니 외국인 똥이라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밥을 먹지 않아 저런 똥을 눈다는 둥, 외국인들은 빵 같은 밀가루 음식만 먹어서 똥이 저렇다는 둥 ...


똥을 치우고 난 후 난 조금 불쾌했다. 그 똥을 두고 나를 기다린 것이 똥을 치우고 난후에야 나는 알았고, 똥을 치운 후에야 난 그들이 나를 오늘 그처럼 반긴 것은 바로 그 똥을 치울 사람이 출근하였기 때문이였던 것이다.


만약 내가 오늘 출근하지 않았다면 그 똥은 누가 치웠을까, 난 혼자 속으로 궁리 하였다.


난 한국에 돈벌러 나왔다가 똥푸개가 된 셈이었다.


그 옛날 연길시에는 공공변소밖에 없었다.


정말 더럽게 말이 아닌 변소였다. 그래도 우린 변소란 의례 그러러니 하고 거기서 볼일을 보면서 수다도 떨고 신문도 보고 하였다. 여름이면 더욱더 더러워진 변소는 그냄새가 구리다 못해 이상한 냄새가 난다. 거기에 똥파리가 위윙위윙 날아다니고 ...


그보다도 똥푸개( 똥푸는 사람 ) 가 여러 날 똥을 퍼가지 않는 날에는 똥을 눌때마다 똥물이 튀길까 겁난 적도 한두 번은 아니었다. 정말 어느 똥유머를 본 후 우리고향변소가 그대로 떠오르더라.


겨울이면 그 똥들이 얼어서 냄새는 별로 나지 않지만 똥푸개들이 똥을 제때에 꺼가지 않으면 (겨울에는 똥이 얼어서 곡꽹이로 꺼가야 한다.) 그 변소는 또 발디딜틈이 없을정도다. 똥숫간에 똥이 모아산꼭대가 처럼 아니 마지막에는 뽀죡산 꼭대기처럼 뽀족할 때까지 볼일을 보았는데 그 똥들이 얼어서 그렇게 되였단 말이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우리는 될수록 그 구멍 속에 누려고 엉덩이를 쳐들다 보면 더쳐들 수 없을 정도가 아니면 도립하여야 할 정도로 발목을 잡고 엉덩이를 높게 하고 , 볼일을 볼 정도로 , 똥이 꼴똑 찼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닌듯하다.


그래서 당시에는 모두들 똥푸개는 그렇게 천한 일을 하였지만 그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그들이 오면 변소가 깨끗해지기에 똥푸개를 그렇게 반기였다.


어쨌든 십년똥을 푸는 똥푸개질 하면 모택동도 만나볼 수가 있었으니 ㅎㅎ 똥푸개가 대단했던 것만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오늘 나를 애타게 기다리던 아줌마들도 그 옛날 우리가 똥푸개를 기다리던 그 심정이 아니었던가 싶다.


오늘 내가 똥푸개가 되다니 ㅎㅎ 돈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별일 다 해보는구나 생각하니 조금 서글프기도 하였다.


그리고 집에서 애들이 아버지 한국에 갔다고 돈 벌러 갔다고 도처에서 떠들고 다니며 애비가 붙여준 돈이나 물건들을 적다고 투덜거리는 꼴을 보거나 친구들한테 들을 때면 허구픈 웃음이 절로 난다.


한국에 돈은 많지만 벌기도 쉽지 않다고 ...


우리 친구네 아들늠은 애비가 한국에 갔다고 일도 하지 않고 매일 집에서 허송세월만 하고 있단다. 거기에 요즘은 결혼등기도 하지 않은 여자를 임신 시켜놓고 둘이서 함께 집에 들어 박혀 먹고 자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달마다 한국서 붙혀 오는 돈만 기다리면서 ...


그래 애비, 에미가 한국서 이렇게 똥까지 퍼가면서 번 돈을 적게 준다고 투덜거리며 더 달라고 떼질 쓰는 아들딸들을 둔 우리친구들은 인젠 일할 맥도 없다고 하더라 .


난 그 친구가 불쌍했다. 삶 , 자기의 삶도 좀 즐겨가면서 돈을 벌라고 , 권하고 싶다.


하여간 똥을 보고 나도 내가 초라해 보였고 내일생도 똥 같게 생각되어 불쌍한 듯하여 한숨이 나오더라.


집에 있으면 그 똥을 내가 쳤을까?! 중국에 있었다면 말이다.


오~ 불쌍한 내 신세 돈 앞에 머리만 숙인 것이 아니라, 돈 앞에 무릎도 꿇은 것 같다.


그래도 난 앞으로도 똥 같은 자존심은 버리고 열심히 꾸준히 돈을 벌 것이다.


돈에서는 똥구린내가 나지 않겠지 하면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돈을 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