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의 광장 (외 2수)
<김동진의 가을 명상>
2007-09-13 동북아신문 기자
가을의 산과 들은
온통 옷 벗는 소리뿐이다
옷 벗는 시간이다
알맹이 남기고
쭉정이 버리며
가을은 스스로 벗는다
온갖 허물 감추고 살아온
지난 껍데기 벗어 던지는,
가을의 몸짓은 비속하지 않다
하늘은 저만치 높이-
알몸 다듬는 누드의 광장을,
파란 눈으로 굽어보고 있다
가을산
가을산은
화려한 도포를 벗어
훌훌 날려 보내면서,
바뀌는 계절을 바라보고 있다
밟히고 뜯기고 찢긴 상처의
백팔번뇌를 기억 밖으로 몰아내고
대자대비의 부처님 마음으로
또 한 해 열심히 살아온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하여
불타는 단풍축제를 펼치고 있다
가을산은
번쩍이는 왕관을 벗어버려도
의연히 거룩하고 듬직한 가을산은
죽으나 사나 한마음이 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음을,
타버린 가슴으로 말하고 있다
떠나가는 단풍잎
가지를 놓친 단풍잎 하나
무수한 눈들이 구경 할뿐
아무도 잡아주는 손이 없다
곱게 다듬어진 채색의 꿈이
젊은 날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의 사치였음을
살아본 친구들은 알 것이니
그 아름다운 추억을 노래 부르며
나는 이제 흙으로 가야한다
저 위태로운 나무 가지에 앉아
잠깐 그네놀이를 한 것도
흙으로 가기 위한
쉬임 없는 준비동작이었음을,
바람과 구름은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