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동포 실무한국어능력시험 대련시험현장의 이모저모

“고달픈 원정시험도 이제 한국만 가면 OK”

2007-09-13     동북아신문 기자

9월 16일, 무연고동포의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이 대련, 장춘을 포함한 전국 16개 시험 장소에서 일제히 치러졌다. 이날 수험생 2만 9700여명이 각 시험장에서 동시에 시험에 참가, 개별 시험장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시험시간이 지연되고, 또 일부 수험생이 개인 신분증 분실 등 피치 못 할 개인의 사정으로 아쉽게도 시험에 참가 못했지만 처음으로 무연고동포들의 자유로운 한국취직을 위해 실시하는 1차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은 무난하게 치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9월 16일, 드디어 오매에도 그리던 무연고동포 실무한국어시험 날자가 다가오자 전국각지의 중국동포들은 미리 각 시험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는데 연변지역의 원정시험응시자가 제일 많은 걸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자 심양철도국에서는 연변지역 응시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임시열차를 증편하여 처음으로 실시되는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을 잘 치르도록 해 주었으며 일부지역의 수험생들은 리무진을 이용하여 주야를 마다하고 달려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치루어 지는 한국어시험현장을 취재하기 위하여 기자는 심양청청외국어훈련학교에서 마련한 뻐스를 타고 현지취재 길에 올랐다. 새벽 5시반에 출발하여 6시간 남짓 달려서야 시험장소인 대련외국어학원 신학구에 도착할수 있었다.  

 

 대련지역은 대련외국어학원의 로학구와 신학구로 나뉘면서 불편을 겪었는데 신학구는 대련역에서 차편으로 약 한시간 거리가 떨어져있는 려순 남로에 위치, 캠퍼스내 도로와 잔디공사가 한창이여서 어딘가 시험장소와는 잘 어울이지 않는 분위기다. 응시자들이 꾸역꾸역 몰려들면서 고사장이 설치돼있는 교사 앞마당은 어느새 수많은 인파로 넘쳤다.

 

 모두가 피곤하면서도 긴장감이 가시지 않은 기분들이였다. 처음 치르는 시험이라 적지 않는 사람들은 책을 들고 하나라도 더 보려고 하였다. 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도 여럿이 보였다. 연길에서 5달되는 갓난애를 안고 왔다는 한 남자는 아내의 시험을 위해 침대표를 살수가 없어 좌석에 앉아 대련까지 왔다고 했다. 또 연길에서 온 김모(42)씨는 연길-대련 기차표를 직접 보여주면서 《어제(15일) 밤 동료 학원생 3천명과 함께 기차를 타고 오늘 아침 대련역에 도착하자 바로 시험장으로 달려왔다》고 하면서 피로에 지친 모습을 보였다. 심양에서 왔다는 한 50대중반의 사나이는 아해도 한국에 가 있고 해서 한국에 가려고 준비했는데 학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차를 놓칠가봐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하면서도 시험에 대해서는 자신을 보였다. 이날 대련지역엔 6천여 명의 수험생이 몰려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시험은 정각 오후 2시부터 시작되였다. 시험장안에서는 긴장감이 감도는 수험생들의 시험이 한창이고 시험장밖에는 그들의 원만한 시험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실히 200여명 되는 인파는 부분 인솔인원들 외 다수가 수험생을 배동한 배우자나 친척, 친구 또는 동료들이였다. 학원생들의 시험이 걱정되여 따라나선 청청외국어훈련학교 한영기사장은 이들 대오에 끼여 초조한 심정으로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대련외국어학원 신학구의 정문 앞의 도로 양쪽에는 연길, 할빈, 오상, 목단강, 환인, 심양 등지에서 온 50여대의 리무진버스가 줄지어서 있었다. 

 

 이번 실무한국어능력시험은 조선족이 집거한 동북3성에는 대련과 장춘 2곳에만 시험장이 설치되여 있어 특히 시험응시자가 가장 많았던 연변자치주의 수험생들이 시험장소 때문에 부득이 멀리 떨어진 대련, 천진, 북경, 청도 지어 남쪽에 있는 상해와 광주로 원정시험을 치르러 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이외 요녕의 수험생들도 가장 가까운 대련을 정하지 못하고 저 멀리 북경이나 연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한국어능력시험 준비학원에서 시험 편의제공 명목으로 받고 있는 시험장까지의 이동비용도 장춘이 210원, 대련은 720원, 청도는 1310원으로 거리가 멀수록 비용도 따라 높아졌는데 이러다보니 단 하루 시험응시를 위해 조선족동포들이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오후 5시 반, 두시간반의 시험이 끝나면서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입장시의 긴장감과는 달리 대부분 밝은 표정들이였다. 시험문제가 그런대로 쉬운 편이고 또 그만큼 준비도 잘 된데서 치러진 시험의 결과였을 것이다.

 

 길림성 통화시에서 온 박모(60)씨는 《이렇게 해서라도 한국에만 갈수 있다면 모든 고생이 다 눈 녹듯 사라질 것 같다》고 말해 모든 수험생들이 몇 달간 긴장한 마음으로 준비해왔던 시험이 불과 두시간반에 끝났지만 이들의 마음은 오직 하나, 《원정시험의 고달픔도 이제 한국만 가면 OK!》라는 희망의 기대갑을 그대로 털어놓았다.


  /오지훈 전길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