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엔 무서움 타지만
<장정일 칼럼>
나는 수학에 특별한 흥취를 가져본 적이 없다. 진학을 준비하던 고중시절엔 문과지망을 한답시고 수학숙제에 게을렀던 탓에 숙제검사가 제일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그 두려움이 잠재의식의 밑바닥에 앙금처럼 남아있었던지 나는 지금도 간혹 수학때문에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그런데도 나의 독서노트에는 수자가 적힌 대목이 더러 않다. 수자란 따분한 일면이 있기는 하지만 때로는 웅변보다도 강한 설득력이 있으며 적어두고 깊이 음미할 멋도 있는것이다. 거기에 내포된 심오한 사상, 거기에 깃든 심각한 계시는 항상 나로 하여금 라태에서 헤여나와 뭔가를 사랑하고 뭔가를 해보게 한다.
여기에 수자와 관련되는 필기내용 몇단락을 적어본다.
-세계적인 바이올린명장(名匠) 재일동포 진창현(필기시75세)씨가 만드는 바이올린이 한대에 150만엔, 첼로는 300만엔에 팔린다. 바이올린 한대 제작원가가 7000엔밖에 안되니 그 수백배 값을 받고 파는 셈이다.
엄청난 수익이다. 수익도 수익이지만 흥미로운건 뒤에 있다.
《일주일 일하면 1년 먹고살만한 수입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도 작업대에 앉습니다. 16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바이올린이란 소우주, 거기에 아직 내가 이르지 못한 경지가 있거든요.》
수익타산을 넘어선 우주적인 사고의 경지이다. 세상에 돈버는 사람은 기수부지이지만 진창현처럼 이렇게 자기딴의 우주적인 사고를 하며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것이다. 남들은 재일동포란 사실을 큰 약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경지가 있었기에 진창현은 오히려 약점을 《운명과 맞서 싸우는 힘의 원천》으로 생각할수 있었을것이다.
《역경이 오히려 인간을 성장시킨다》고 말하는 진씨의 삶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는 두가지 삶밖에 없다. 한가지는 기적같은건 없다고 믿는 삶. 또 한가지는 모든것이 기적이라고 믿는 삶. 내가 생각하는 인생은 후자이다.》
그렇다. 인간에게 있어 정신적인 경지는 삶의 기둥이다. 그 기둥이 부실해 나약해지고 휘청거리는 사람이 어찌 한둘뿐이랴만 이와는 반대로 정신기둥이 서있는 사람은 진씨처럼 70대의 로경이라도 청춘이다. 그의 가슴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의욕으로 설레이고 용기로 고동친다.
오늘의 뿌쉬낀이라고 소개되고있는 로씨야시인이 있다. 리야뽀브라고 하는 이 시인도 아인슈타인의 말에 못지 않은 흥미로운 수자를 언급하고있다.
-쏘련과학원이 출판한 뿌쉬낀문학자전에는 60000개의 어휘가 들어있다… 해당부문의 통계에 따르면 시가창작을 위해서는 적어도 20000개의 어휘를 습득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3000개 어휘만 가지고도 변변하다고 한다.
경지의 고하를 말해주는 대비적인 수자이다. 천단위의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 만단위의 어휘를 구사하는 사람. 중복을 일삼는 사람과 창조적인 사람은 이렇게 수치로도 구분될수도 있다는것이 자못 흥미롭다. 수자를 무서워할 일이 아니다. 수자는 분발을 부른다.
-파브르의 《곤충기》. 근 40년의 세심한 관찰과 깊이있는 연구소득을 바탕으로 21년(1878-1909)동안 힘들여 쓴 책이다. 전부 10권.
인간의 경지가 낳은 끈기가 어느 선에까지 도달할수 있는지를 숙고해보게 하는 놀라운 수자이다. 미물곤충을 관찰하는데 어찌 자신의 한생을 바칠수 있었는지, 사람이 어떻게 그 지리한 수십년의 로고와 고독을 그처럼 묵묵히 곤충과 더불어 감내할수 있었는지, 참으로 경악을 금할수 없다. 끈기가 부족해 깃털처럼 가벼운 자신이 부끄러워나기도 하지만 바다처럼 속깊은 장인의 끈기가 주는 감동은 나의 경박함을 일깨워주고도 남음이 있다.
필사적인 노력으로 평생공부를 실천하는 높은 경지의 사람들도 있다.
시가의 명장인 괴테는
-《나는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는데도 아직까지 그것을 잘 배웠다고 말할수 없다》고 땅이 꺼지게 한탄을 했다.
60이 넘어 류학을 떠났던 언론인이자 무협소설가인 김용의 고백은 고무적이면서도 자연스럽다.
-《나는 매일 적어도 네댓시간 독서한다. 종래로 멈춘 적이 없다. 소설을 쓴다는것은 피아노연주처럼 지름길이 없다. 한단계 한단계 제고되는것이며 매일의 고심한 훈련과 축적이 있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으면 안된다. 신문사에서 퇴직한 뒤에도 나는 련속 중외대학에 가서 연수하기에 고심했다… 나는 1991년후에 영국의 켐브리지대학에 가서 영국문학, 철학과 력사를 공부하였다.》
괴테, 80년동안의 우둔한 독서방법연구자.
김용, 60살의 철모르기류학생.
그러나 창조를 위해서는 이는 기본에 속하는 수자들일뿐이다. 지칠줄 모르는 평생공부, 이 기본이 서있지 못한 사람은 섣불리 창조요, 돌파요를 운운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가?
기본이 안된 자신을 나무라면서도, 수학이라 하면 꿈결에서까지 무서움을 타면서도 그것때문에 나는 실망하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적어도 요긴한 수자들에 감동을 할줄은 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