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과 나무

<신길우의 수필 52>

2007-06-30     동북아신문 기자

우리 나라는 4계절이 뚜렷하다. 그러나 지내기 좋은 봄과 가을은 짧고, 여름은 비가 많고 무더우며, 겨울은 바람이 많고 춥다. 이런 기후로 우리는 산을 등지고 앞에 하천이 있는 남향진 곳에 많이 살게 되었다. 산이 겨울의 매운 북풍을 막아주고, 여름에 많은 빗물을 강으로 내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집도 자연히 그런 곳에 지었다. 그러나 집은 이런 기후에 대한 대비를 더욱 구체적으로 하여야 한다. 뒷산만으로는 추운 바람을 막기 어렵고, 여름의 무더위를 쉽게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한옥(韓屋)이고, 집 주변에 나무를 많이 심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집들을 보면 대부분이 서양식 건물들이다. 아파트건 단독주택이건 건물들만 바짝바짝 세운다. 주변에는 나무들을 거의 심지 않고 있다. 냉․난방(冷煖房) 시설에, 필요한 기구들을 다 설치해 놓고 사니 앞뒤에 나무들이 필요 없어서인가?

 

  내 고향 시골집은 남향 초가집이었다. 방 앞에는 마루를 깔고, 뜰에 이어 널따란 마당이 있었다. 그래서 집은 북풍(北風)을 등지어 막고, 따뜻한 햇볕을 받는 집 앞은 생활의 주된 공간으로 썼다. 서쪽에는 동향으로 헛간채를 지어 창고와 헛간과 외양간으로 썼는데, 여름철 오후에는 마당에 그늘이 져서 서늘했고, 가을과 겨울에는 매서운 서북풍의 바람막이가 되었다.

 

  집 뒤에는 대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돌담에 가까운 대나무들은 밑동부터 곁가지를 일부러 자르지 않아서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는 방풍림이 되었다. 그 앞쪽에는 얕은 돌담을 쳐서 찬바람을 걸렀다. 담 앞의 보리수와 앵두나무 떨기도 열매와 풍치를 겸한 바람막이가 되었다. 서쪽 담 밑에는 약으로 쓰는 옻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겨울에는 이리로 서북풍이 들어왔다. 나중에 아버지는 이곳에다 작은 곳간을 세워 바람을 막았다.

 

  그러니까, 우리 집 뒤는 1차로 대숲이 바람을 막고, 돌담과 보리수⋅앵두나무 떨기가 2차로 걸렀고, 서북쪽 곳간채가 찬바람을 막아주었다. 집 앞 넓은 마당은 서쪽의 헛간채가 바람막이와 그늘을 만들어주는 이중 역할을 하도록 배열한 것이다.

  동향(東向)인 사랑방 쪽은 바람막이가 필요 없었다. 그래도 동북쪽에는 가지가 많고 키가 큰 나무들을 심었고, 일부에는 머루넝쿨도 올렸다. 동쪽에는 자두나무와 대추나무에 이어 몇 그루의 뽕나무로 울타리를 삼았다.

 

  사랑방 길과 마당 사이의 작은 화단에는 참죽나무 두어 그루가 늘씬한 몸매를 뽐냈고, 온통 초록색인 벽오동 한 그루가 넓은 잎새를 우산처럼 펼치고 있었다.

  앞마당 담 너머로는 아이들이 심심하면 올라타고 노는 허리가 굽은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내다보였고, 서남쪽 담 옆에는 고욤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남쪽으로 더 먼 곳에는 산자락이 좌우로 길게 펼쳐지고, 능선에는 오래 된 큰 소나무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러니까 동쪽과 남쪽에는 방풍(防風)보다 전망(前望)을 고려하고, 유용한 열매나 잎이 좋은 나무들을 심은 것이다.

  이러한 집 주변의 나무들은 어린 나에게는 아주 좋은 놀이와 휴식과 삶의 대상이 되었다.

 

  봄이면 버들가지 호드기는 물론, 죽나무의 새로 돋은 가지로 바리톤 피리를 만들어 불었다. 달착지근한 앵두를 따먹고, 갖은 양념을 묻혀 말린 짭짤 달콤한 죽나무 순(筍)은 들고 다니며 조금씩 맨입으로 씹어 먹었는데 그 맛이 천하에 없는 별미였다.

 

  여름이면 오디를 따먹으며 감꽃을 주웠고, 시어서 조금씩 베어먹는 풋자두에, 떫은 듯 달콤한 보리수 열매는 심심풀이용이었다. 떨어진 풋감을 주워 따끈따끈한 논바닥 진흙 속에 박아 넣어 울궈내서 먹기 시작하면 가을이 온다.

 

  머루 몇 송이를 따러 한 아름이나 되는 곧고 미끄러운 나무를 안간힘을 쓰며 기어오르기도 하고, 곱게 물든 감나무 잎새를 주워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하였다. 홍시(紅柿)는 다 익기도 전에 나를 감나무 위로 끌어 올렸고, 고욤은 제맛이 나도록 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까지 참고 내버려두었다. 천년마다 나타난다는 봉황새의 먹이라는 오동나무 열매는 호두(胡桃)보다도 더 고소했지만 팥알보다도 더 작아 까먹는 수고가 많았다.

 

  그러나, 어린 날의 우리집 나무들은 나를 단순히 이런 유익함만 알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즐거운 삶을 하게 하고,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도록 해주었다. 물질적 유익함보다 정신적 평화(平和)를 주고, 삶의 풍요(豊饒)보다 좋은 삶을 살아가게 하였다.

 

  봄철이면 하루가 다른 초록 세상에 감탄하고, 죽은 줄로 안 대추나무는 다른 나무들이 다 피운 한참을 지나야 잎을 내밀어 신기해하였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음이 더 순수해졌다. 자두나무 잎에 내리는 빗소리는 사락사그락 나고, 감나무 잎에 떨어지면 투둑투둑 들린다. 오동나무 잎은 툭 주르륵 소리하고, 소나기는 솔바람처럼 솨―솨 거렸다. 마당에 내리는 비와 앞 논에 내리는 비는 굵기가 달랐고, 소나기가 앞산 앞으로 바람을 타고 지나갈 때면 하얀 망사(網紗) 치맛자락을 펄럭이는 것 같이 주름져 지나갔다. 태풍이 몰아칠 때면 앞산의 활엽수들은 잎새까지 떨구며 몸부림치듯 요동을 하는데, 능선 위 큰 소나무들은 굵은 가지들이 너울거리기만 했다.

 

  이런 모든 경험들은 나무와 연결되지 않고서는 맛볼 수가 없다.

  지금은 옛날보다 분명히 더 잘 산다. 에어컨 바람은 대숲 바람보다 더 시원하고 즉각적이다. 전기 난방도 온돌보다 더 빨리 더 따뜻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진실로 더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통조림은 따먹는 과일만큼 싱싱할 수가 없다. 냉장고의 음료수가 얼음처럼 시원하기는 하지만 천연 샘물 같은 맛은 나지 않는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달[月]과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달은 사뭇 다르다.

 

  요새 아이들은 버들피리나 감나무잎 모자를 모르고, 새까맣게 익은 머루를 따러 아름드리 나무를 기어오르려고도 않는다. 필요한 것들을 그때그때 사서 쓰기에 그들은 그럴 필요성도 못 느끼고, 따라서 그럴 마음도 갖지 않는다.

 

  하지만, 집 주변의 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다. 환경이 삶을 지배하듯이, 주된 생활공간인 주택(住宅) 주변의 나무들은 어려서부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진실하고 즐겁게 살아가도록 깨쳐주고 길러주는 이웃이요 무언(無言)의 스승이다. 이 어찌 유․무익(有無益)과 편의⋅불편의만 따져 소홀히 할 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