盗癖
지난 세기 70년대 초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 쩍 하면 도난사건이 발생했다. 오늘 이 친구가 연필을 잃어 버렸는가 하면 내일 저 친구가 고무지우개를 잃어 버리고 모레는 다른 한 친구가 또 무엇을 잃어 버린다. 우리 반은 조용한 날이 없다. 매일 도적을 잡아내기에 바쁘다. 우리 담임선생은 나이 지긋한 여선생이었는데 이 도적안건 수사에 이골이 나 정말 福尔摩斯 뺨칠 정도의 고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매번 잡혀 나오는 도적놈이 다름 아닌 우리 반에서 첫날 각시처럼 제일 조용한 여자애였다. 매번 잡혀나올 때마다 검토서를 읽게 했다. 우리 담임선생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뒤로 호박씨 깐다고 한단다. 그런데 또 이상한 것은 이 여자아이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집안의 딸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녀에게는 훔친 연필이나 고무지우개보다 훨씬 좋은 것들이 필통에 수두룩했다. 그래서 우리가 왜서 훔쳤는가고 물으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머저리, 머저리하고 말았다. 전형적인 병적인 盗癖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단순히 끝나고 만 것이 아니다. 우리 담임선생을 비롯한 학교당국에서는 결국 그녀를 청소년교양원에 보내고 말았다. 당시 그들에게는 워낙 이런 병적인 盗癖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다. 우리 반에 또 내가 소학교에 다닐 때와 비슷한 병적인 盗癖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에는 멀끔하게 생긴 남자애가 그 주인공이었다. 학교 보위과에서 와 짜식의 농장을 뒤지니 무슨 세수수건이며 비누며 신이며, 여하튼 우리 반 남자애들이 기숙사에서 잃어버렸다고 한번쯤 투덜거린 시시껄렁한 모든 것들이 다 나왔다. 우리는 그날 무슨 신기한 보물을 보듯 그 물건들을 보며 결국 한바탕 웃고 말았다. 뛸 데 없는 병적인 盗癖. 짜식, 왜 이런 시시껄렁한 것을 훔쳐, 저 은행쯤이나 털꺼지. 우리가 이렇게 농담을 하면 그 친구 한다는 얘기가 어쩐지 아무 것이고 훔치고 나면 시원하다 말이야.
얼마 후 이 친구는 盗癖을 치료하려 한 학기를 휴학했다. 한 학기를 지나 이 친구를 보니 언제 盗癖이 있었나 싶게 전적으로 새로운 모습이었다.
2007-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