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망신시킨 ‘비자장사’ 외교관
2003-12-20 운영자
나라를 대표해 외국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의 비리가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홍콩 주재 한국 대사관 영사로 근무했던 이아무개씨는 재임 1년 남짓 현지 브로커들한테서 2억여원의 뒷돈을 받고 부적격 재중동포 260명에게 비자를 내 준 것이 들통나 구속됐다. 몇 달 전에는 중국 선양 주재 부영사와 베이징 주재 영사가 역시 비자를 불법으로 발급했다가 구속 기소됐다.
브로커에게 뇌물을 쓰고 한국에 온 재중동포들이 그 돈을 벌기까지 돌아가지 않으려 할 것은 뻔하다. 불법 체류자들이 단속에 쫓겨 도피생활을 하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배경에 일부 외교관들의 비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비자발급 비리는 중국뿐만 아니라 일부 동남아 쪽 재외공관에서도 저질러졌다고 한다.
외교관은 특수직이어서 외부 사람들이 내부 사정을 잘 알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다 보니 안에서 부정부패나 낯뜨거운 비리가 횡행해도 여간해선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폐쇄적인 구조에서 잘못을 저질러도 못 본 척 눈감아 주거나 끼리끼리 감싸온 관행이 굳어지면 더 큰 비리를 낳게 된다. 출장 일수를 늘여 차액을 챙기거나 사적으로 친구들을 만나 법인카드를 쓰고, 관저에서 만찬을 하면서 사람 수를 부풀려 돈을 타내는 등 몰염치하고 낯뜨거운 짓을 일삼는 상사들의 비리를 내부 통신망에 올린 한 외교부 직원의 용기있는 ‘고발’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를 다른 조직에서도 흔히 있는 ‘도덕적 해이’나 ‘잘못된 관행’ 정도로 가벼이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외교관은 나라를 사랑하고 대표한다는 사명감이 가장 투철해야 할 직군이다. 그런데 이들이 불법·비리를 저질러 주재국 국민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거나 부하 직원들을 좌절하게 한다면 이는 국위를 드높이는 게 아니라 나라 망신을 시키는 것이다. 철저히 수사해 구조적 비리의 싹을 도려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