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도 동포상대 ‘비자 장사’

2003-12-19     운영자
[한겨레] 2003-12-18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이 ‘비자 브로커’한테 뒷돈을 받고 비자발급 부적격자들에게 비자를 발급해줬다 구속되는 등 해외 공관 비리가 잇따르고 있다. 검찰은 이런 비자 발급 비리가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을 양산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광범위한 내사를 벌이고 있다.

서울지검 외사부(부장 민유태)는 18일 비자발급 브로커한테서 2억여원을 받고 부적격 재중동포 260여명에게 비자를 발급해 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로 외교통상부 외무행정관 이아무개(52·3급 상당)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홍콩 주재 한국영사관 영사로 재직중이던 2000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브로커 황아무개씨와 이아무개씨가 대리 신청한 재중동포 고아무개씨 등 265명에게 비자를 발급해주고, 황씨 등한테서 모두 176만4천 홍콩달러(한화 2억63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다.

검찰 조사결과, 이씨는 브로커 황씨 등이 위·변조한 ㅅ여행사 등 한국 기업체 명의로 된 초청장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비자를 발급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 등은 재중동포 한명당 1천만원 안팎의 대행료를 받은 뒤, 이 중 100만원 정도씩을 이씨 몫으로 떼어 이씨가 홍콩의 한 은행에 개설한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이처럼 비자를 부정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온 중국동포 240여명에 대한 출입국 조회결과 몇명을 뺀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 신분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에도 비자 브로커들한테 7억여원을 받고 중국동포 260여명에게 비자를 부정 발급해준 전 중국 선양 주재 한국영사관 부영사 최아무개씨와, 3천여만원을 받은 전 베이징 주재 영사 양아무개씨 등을 구속기소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일부 동남아국가에서는 우리 정부의 고용허가제 시행으로 귀국했다가 한국에 재입국하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현지 브로커 등에게 뒷돈을 건네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동남아의 다른 재외 공관에서도 비자발급 관련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다는 첩보를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비자 부정발급 행위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수사를 펼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의팔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의 단속으로 불법 체류중인 외국인노동자들이 비인간적인 노동환경과 도피생활에 지쳐 잇달아 목숨을 끊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현지의 비자발급 담당영사는 이들을 상대로 뇌물을 챙겨왔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며 “외국인고용허가제 실시 뒤 3년 이상 체류한 노동자들을 일시적으로 본국에 귀국시킨 뒤 재입국하게 한 제도 때문에 현지 대사관 관계자들이 이들에게 금품을 요구한 사례가 계속해서 접수되고 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하석 석진환 기자 hgrh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