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연합회관 등 한달째 농성현장 르포…중국동포·외국인노동자 교회가 도와야한다

2003-12-18     운영자
[국민일보]2003-12-17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인 18일 한국에서 기념일을 맞이하는 재중동포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맘은 어느 때보다 춥고 쓸쓸하다. 지난달 15일 불법 체류 외국인에 대한 정부 당국의 강제 단속이 시작되면서 벌이고 있는 집단 농성이 어느덧 한달째.

농성중인 재중동포와 외국인들 중에는 강제 추방에 대한 걱정과 불안,공포로 자살하거나 추위에 못 견뎌 동사한 이들이 한달 사이 7명에 달하고 있다. 또 추위가 닥쳐오면서 감기 등 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의 강경 방침에 밀려 이들이 기대고 있는 곳은 교회와 몇몇 인권단체. 언제 끝날지 모를 암울한 투쟁속에서 이들은 교회가 베푸는 도움의 손길에 힘을 얻어가며 오늘도 ‘강제추방반대’와 ‘재외동포법 개정’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2시. 재중동포 200여명이 35일째 집단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연지동 기독교연합회관에 들어서자 100여명의 재중동포들이 피곤에 지쳐 스티로폼 위에 누워 잠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간혹 앉아서 성경이나 책을 읽는 동포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충혈된 눈과 핼쓱해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로비 벽에는 보자기에 싸인 이불과 옷가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한쪽 벽에는 커다란 종이 위에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는 구호와 힘을 내자는 격려의 글들이 가득 했다.

이에 앞서 같은 날 낮 12시쯤 건물에서 100여m 떨어진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 1층로비에서 31일째 농성중인 150여명의 재중동포들은 서울 공릉제일교회(담임목사 윤두호) 여전도회에서 준비해온 육개장으로 점심을 먹느라 분주했다.

며칠 전 함께 농성하던 동료가 밀린 임금을 받으러 외출했다가 새벽 추위에 못 이겨 동사한 일이 있은 뒤 이곳 동포들은 다른 어느 곳보다 비장한 각오로 농성에 임하고 있었다.

이들은 매일 두차례 재외동포법 개정 등의 구호를 외치며 종로5가 일대를 돌면서 집회를 갖고 예배를 드리고 재외동포법에 대한 강의,현재 정부의 법 개정 논의 상황 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97년 한국에 들어온 재중동포 이도율(37)씨는 “농성을 시작한 뒤로 우리와 외국인 노동자가 벌써 7명이나 죽어나갔다”며 “재외동포법이 하루빨리 평등하게 개정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길지 모를 일”이라고 걱정했다.

특히 농성 기간이 한달을 넘어가고 추위가 본격화하면서 각종 환자들이 늘어나는 것도 큰 걱정거리. 이들의 농성을 지원하는 재외동포추진연대 기춘오 총무는 “이달 들어 감기 뿐만 아니라 지병이 악화돼 병원을 찾는 동포들이 계속 늘고 있다”며 “농성이 길어지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서울 기독교감리회관과 서울 성공회성당,명동성당 등에는 재중동포 외에 필리핀 방글라데시 미얀마 우즈베키스탄인 등 추방 위기에 놓인 3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단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상경해 서울 태평로 기독교대한감리회관 16층 회의실에서 농성중인 경남지역 외국인 노동자 140여명은 교회가 고마울 따름이다. 지난달 정부의 단속으로 가슴을 졸이며 숨어지내던 그들을 교회가 받아줬기 때문. 현재 감리교단측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고 강제 추방 반대 운동을 함께 벌여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98년 한국에 와 경남 창원에서 선원으로 일해왔던 조노(27·인도네시아)씨는 “6년동안 한국에서 수없이 구타와 사기를 당하면서 한국인이 더 이상 사람으로 안보일 만큼 미웠다”면서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다는 것을 알고 힘을 얻게 돼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신앙을 고백하기도 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대표 김해성 목사는 “현재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소외당하고 있다면 우리의 기분이 어떻겠느냐”며 “나그네 된 자를 귀히 여기라는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입장을 한번만 바꿔 생각해보면 우리가 왜 이들을 돌봐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찬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