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둥지(연재31)
일본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어제일 같지만, 귀국하여 어느새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시내 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세월이지만, 지나온 길이 몹시 험난했는지, 기억은 깨지고 다슬고 황폐해 버려, 돌이켜 보니 남은 건 개천에 널려있는 조가비와도 같이 형태만 띄고 있을 뿐입니다.
- 죽은 조개도 조개일까요?
일본유학 6년이라지만 대충 계산해보니 제대로 공부를 한 시간은 합쳐도 2년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까마귀 처지에 2년이면 공부를 많이 한 거였습니다. 불법체류를 안 한거만도 다행으로 여겨야지요.
까마귀는 북경에서 유학생선발 시험에 합격되어 일본어학교를 다니지 않고 직접 대학으로 입학했습니다.대학 4년은 법학부에서 법률공부를 했는데, 솔직히 말이 공부지 젊은 나이에 원래 놀기를 좋아하는 놈인지라, 자유를 만끽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발전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오게 되니, 배울 것도 참 많았지만 한편으론 그 놈의 유혹 또한 대단했습니다.
빠찐꼬도 놀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고, 스트립 쇼도 보고 싶고, 도시 속의 비밀스런 고장을 탐험하고 싶고, 여하튼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아가씨들 또 얼마나 귀엽고 예쁘게 노는지?역시 여자는 일본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동전처럼 정과 반 양면이 존재하듯, 세상에는 절대적인 자유란 존재 하지 않았습니다.
2,3년 자유로운 생활이 끝나자, 학업은 밀릴 때로 밀리었고, 빚도 적지 않게 불어났습니다. 이대로 나가다간 졸업도 문제이고, 졸업 뒤에 계속 일본에 남아있을 지도 문제입니다. 그나마 마지막 학기를 열심히 뛰어 졸업은 할 수 있었지만, 부모님들이 억지로 심어준 변호사의 꿈은 영원히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억지로 하는 일이 잘 될 리가 있을까..^^
졸업을 앞두고 취직이냐 진학이냐, 거듭 고민을 한 끝에 까마귀는 진학을 선택했습니다. 당장 취직하여 인생의 길을 결정하는 것 보다 한 2년 공부를 더 하면서 진정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은 겁니다.
왜냐하면 사회에 들어서면 일생동안 돈벌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까마귀는 아직 사회로 진출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에 책임도 없이 너무 일찍이 결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한 2년 공부를 더 하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 사회로 진출해도 늦지 않지 않을까요?
그리고 변호사의 꿈을 접었으면 다른 꿈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닙니까?
그때 까마귀는 집구석에 박혀 방황과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고서점에서 무라카미 하루끼의 <노루웨이의 숲 >을 발견했는데, 결과적으로 문학을 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루웨이의 술>을 읽고 솔직히 대단한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까마귀도 좀만 노력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감히 무라카미 하루끼를 무시하다니, 역시 까마귀는 위대합니다..^^
그 다음부터 집에서 시험삼아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모자라면 배워야지요. 까마귀는 열심히 대학원입시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전공은 문학으로 선택하고 열심히 문학방면의 책을 찾아 읽어보고 필기를 했습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한 적은 없습니다.그때처럼 열심히 공부를 했더라면 변호사 자격을 따고도 남지 않을까요?
역시 변호사는 아무나 되는 거 아닌가 봅니다.
노력한 보람인지, 운수가 좋은 건지, 결과적으로 까마귀는 교토시 모 대학원의 인문학연구학과의 합격통지를 받았고, 그때 까마귀의 기쁨은 또한 뭐라 말할까, 술은 또 얼마나 퍼먹었을까요? 이미 작가가 다 된 기분입니다.
이렇게 까마귀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일본문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2년동안 닥치는 대로 일본소설을 읽어봤습니다. 예술가 어머니의 영향도 있고 하여 어릴 때부터 문학에 흥취가 많았는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되니 공부도 잘 되는가 봅니다.
2년 뒤에는 열심히 연구를 하여 석사논문을 만장같이 썼고, 논문 발표도 무난히 통과되었습니다. 노력한 보람이 있어, 지도교수님이 저를 박사 과정으로 추천하겠다며 저의 의향을 물어왔습니다.
내심으로 고마웠지만 사절하였습니다.
"죄송하지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서 조용히 글을 쓸 생각입니다. 우리 고향은 순문학적으로 많이 발달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대중 문학 부분이 많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여튼 재미가 없다니까요. 돌아가서 고향의 대중문학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을 바칠 생각입니다."
교수님께서는 '민족애'에 넘친 까마귀의 기특한 마음를 배려해주시고, 저의 선택을 존중해주셨습니다.
솔직히 술집 여자에게 몸을 바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난 고향에 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데 교수님인들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대신 박사 공부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며 저에게 뒷문을 빼쭉 열어주셨습니다.
“세상일은 모르니깐, 돌아가서 열심히 하다 잘 안되면 다시 연락을 줘요.”
“교수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캠퍼스 문을 나서면서 자부심에 넘친 까마귀는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 내가 하는 일이 안 될리 있을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