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史 지키기" 대책은 무엇인가

2003-12-15     운영자
미디어다음 2003-12-15

학계를 중심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책이 활발하게 논의되는 가운데, 일부 학자들과 언론들은 이 문제를 "제2의 나당(羅唐)전쟁", "쑤저우(蘇州)대첩" 등으로 부르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시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느냐"며 고구려 역사 지키기에 동참할 태세다. 민족의 역사적 뿌리를 뒤흔드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중국의 세계문화유산 등록 막아야 … 북한과 공조도 방법>
현실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내년 6월에 열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에서 중국 지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막는 것이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최광식 교수(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은 9일 열린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학술발표회(이하 학술회의)"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다면 고구려의 역사가 마치 중국의 역사인 것처럼 오해될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이 신청한 평양의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도록 도와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해 평양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시키려 했지만 실패한 바 있다. 당시 유네스코는 "북한의 유적은 접근성과 보존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정을 미뤘다.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최종택 교수는 "북한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일이 쉽지 않다"며 "하지만 준비를 철저하게 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최교수는 특히 남북 공조를 통한 대비를 강조했다.

"절실한 문제입니다. 북한 관광도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과 공조해 고구려 유적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협의하고, 보존 작업에 도움을 주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내년 6월에 열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위원회가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다는 점. 중국은 개최지의 이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지안의 유적에 대해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벌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고대사학회 등 학자 집단은 국제 학술회의 등을 준비하며 쑤저우 회의에 대비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쑤저우 대첩을 준비하자"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여론 도움 절실, 연구센터 세워야">
학자들은 여론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외대 사학과 여호규 교수는 "정부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국민들 사이에 여론이 형성되어야 정부가 움직임을 보일 것 같다"고 말했다.

여론을 바탕으로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 내는 것도 중요하다. 경희대 임기환 교수는 "중국의 경우 고구려사 왜곡을 위해 수백억 단위의 돈을 쓰고 있지만, 우리는 억 단위도 안된다"며 정부의 안이한 자세를 꼬집었다.

학자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고구려사를 비롯한 고대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기관이 만들어져야 체계적인 연구가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여호규 교수는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힘으로 중국에 가서 자료를 수집한다"며 "국내에는 국내외 역사적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거나, 자료 수집에 도움을 주는 기관이 없다"고 연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광식 교수도 "연구센터를 설립해 고대 동북아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먼저 자료 수집 등 기본적인 연구작업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구심점이 생겨야 중국의 주장에 대한 대응 논리를 개발하고 그들이 왜곡한 부분을 찾아내 사실을 규명해야 하는 것이 용이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뜻이 있는 일반인도 동참이 가능해 진다.

<"IT 강국 이점 활용하고, 연구 결과 외국어로 번역">
학술발표회에서는 "IT 강국의 이점을 활용하자"는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수백명의 학자들이 고구려사와 관련된 논문을 해마다 수십~수백 편을 쏟아내고 있는 중국의 학술적 인해전술과 물량공세에 대해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광식 교수는 "중국의 역사 왜곡 관련 홈페이지 하나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며 "중국의 역사왜곡실태와 문제점을 설명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IT강국의 면모를 살려야 한다"고 한다.

고구려사 연구결과를 영문으로 번역해 전세계 학자들에게 중국의 역사왜곡 실태를 알려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학술발표회에 참가한 한 학자는 "중국이 정치적인 목적 때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 마당에 우리가 연구를 아무리 많이 해도 반응이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진실을 번역해 미국과 유럽 등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루투갈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우리의 강점은 진실, 해볼 만 하다">
고구려사를 지키려는 노력은 성공할 수 있을까. 최광식 교수는 "우리의 연구 결과를 들고 중국과 맞붙는다면 해볼만하다"고 말했다. 최종택 교수 역시 "우리는 지금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밀릴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여호규 교수는 "중국학자들도 실토하듯 과거의 역사를 현재를 위해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왜곡이고,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관련 학자들은 국민적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 된다면 명백한 진실을 주장하는 한국이 불리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단, 여론이 부정확한 정보에서 비롯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를 때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학술발표회에서 만난 한 사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라며 "지식이 뒷받침 되지 않은 가벼운 분노가 난무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한 사학자는 "현재 연구 결과를 가지고도 충분히 중국의 역사 왜곡행위의 허구를 증명할 수 있지만, 조선족 문제도 중국의 눈치를 보는 마당에 우리가 아무리 진실을 내밀어도 효과가 있겠느냐"며 "국력의 문제, 인문학 홀대 문제가 겹친 총체적인 위기 국면"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학자는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 없는 만큼,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책들을 신속하고, 꾸준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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