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LA 이주형 목사, “조선족은 조선족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기자가 만난 사람-
키가 크고 몸이 우람지고 얼굴빛이 불그스레한 이주형 목사는 사람 좋게 웃었다. 마음씨 무던하고 편해 보이는 인상이다.
지난 9일 오후 낙성대 커피숍에서 기자는 간단히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고향이 경기도 수원인 이주형 목사는 기업가 정주영이 창업 초창기부터 곁에서 지켜보았고,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시민운동 캠프를 만들 때도 동참권고를 마다, 미국으로 이민 갔다고 한다. 인생을 보다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조선족과의 첫 인연은 91년도 여름, 친구들과 장춘에 와서 백두산구경을 하고자 동포들이 살고 있는 연변으로 출발하기 전이었다. 마침 가이드를 맡은 조선족할머니가 그들 일행에게 이런 권고를 해왔었다. 자기가 알고 있는 조선족대학생들이 있는데 하느님을 믿고 박식하고 맘씨 좋은 당신들이 아무래도 걔들을 좀 도와줘야할 것 같다고! 결국 이주형 목사가 남고 일행은 백두산구경을 떠났었다.
“당시 장춘에서 대학 공부하는 조선족학생 7명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더군요. 후에 다들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를 했지만…제가 보니 학생들이 몸이 마르고 왜소하고 이가 누렇고 영양상태가 좋지 않더군요. 공부를 하는데 저녁 9시를 넘기지 못했어요. 한 주일 그들과 얘기를 하고 놀다보니 정이 들었지요. 그래서 바로 서울 가서 회충약과 영양제를 한 보따리 마련해서 들고 왔지요…이듬해는 7명에서 15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당시 전 미국에서 꽤 잘나가는 빵집을 운영했었는데 그것을 정리하고 중국으로 향했지요.…”
이주형 목사는 비록 한국인이지만 미국에 가서 똑 같이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이민 가면 백인동네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한다. 자식들은 자기네가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데 주위에서는 꼭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단다. 동양인라 깔보고 배척하고 기시한다. 그러면 애들은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이 깊다고 한다. 그래서 당당하지 못하고, 자주 사고를 친다고 한다. 지어 자기 아버지마저 죽이는 참상이 발생되기도 한단다.
기실 미국과 중국은 소수민족이 제일 많은 나라이다. 중국은 56개 소수민족, 미국은 150여개의 소수민족이라 한다. 소수민족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차이점에 대해 이주형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한 때 미국도 중국과 비슷한 ‘녹이는 냄비’정책을 썼지요. 그 많은 인종을 용광로정책을 써서 미국화 시키는 것이었지요. 후에 별로 효과적이 아니어 ‘사라다’정책을 썼어요. 이를테면 여러 가지 야채를 그릇에 담은 다음 사라다를 넣어 비벼서 맛을 내는 정책이지요. 그러면 상추, 배추, 당근 등이 섞여 있으면서도 제 맛이 살아있어 별미를 이루고 있지요.…지금 미국에서는 미국인을 호칭할 때 먼저 인종과 계를 밝힙니다. 이를테면 차이나계 미국인, 코리안계 미국인, 아프카계 미국인 등등, 저 마끔 인종이 달라도 결국은 미국인이니까 문제가 안 되는 것이지요.…”
이주형 목사는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했다.
예하면 한국에 사는 중국인 후예들은 중국말을 잊지 않으나 미국에 사는 중국인 후예들은 중국말을 모른다. 그것은 애들의 의식 속에 미국이 존경스럽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이가 드니까 스스로 자기의 정체성을 찾더군요. 우리 집 애만 봐도 큰애가 서른다섯의 치과의사인데, 이제는 승용차에서도 주현미의 노래를 듣고 있어요. 한국말을 제법 잘 해요.…” 둘째도 고등학교 선생인데 사자성어(四子成語)까지 스스로 알아 배운다고 한다.
물론 고국 대한민국과 부친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유태인은 미국인구의 2%밖에 안 되고 대부분 시민들이 모국어를 모르지만, 그들의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고 미국 모든 분야에서 선두를 지키고 강한 응집력을 과시하고 있는 미국 현재의 실정이다. 이를테면 이스라엘은 우수한 유태인청년들을 모국에 데려와 정책적으로 ‘랍비(목사)’로 길러 미국사회에 진출시켜서 유태인들을 지도하게 한다고 한다. 때문에 유태인 어린애들도 배가 아파 보채다가도 “랍비가 와서 배를 만져준다”고 하면 울음을 그칠 정도로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위치에 있다고 한다. 그만큼 유태인들은 미국사회에서 인수가 아주 작지만 자기들의 정체성을 흔들림 없이 갖고 권세와 부귀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저는 조선족은 조선족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주형 목사는 결론적으로 말했다. 조선족은 한국인으로 될 수 없다. 아니 되지 말아야 한다. 중국에서 살면서 훌륭한 중국인이 되어 중국에 최대한 공헌하는 것이 곧 한민족을 돕는 일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이런 조선족들이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한국을 도우려할 것이다. 물론 자기가 조선족이란 것을 잊지 말고 민족의식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조선족도 자기의 강한 랍비, 즉 리더가 있으면 좋다. 미국식으로 표현하면, 조선족계 중국인-그러할 경우 조선족의 진정한 의미를 체현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조선족들이 자기를 교포라고 표현하는 것 싫습니다. 조선족은 조선족입니다.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한 개 민족, 당당하지 않습니까?…전 조선이란 말 참 좋아하거든요. 우리 민족특색을 제대로 반영한 단어지요. 때문에 저는 한국을 남조선, 북한을 북조선- 이런 식으로 표현해 남들의 오해도 꽤 받았었습니다.…”
이주형 목사는 현재 미국에서 5~60여 명의 조선족대학생들을 보살피고 이끌어주고 있다. 미국에서도 조선족을 보면 그냥 반갑다는 한국인, 아니 코리안계 미국인?…15여년 조선족과 함께 생활하고 생각해온 그이가 어쩐지 더 고맙고 감사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