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탉 , 어미닭 , 양 (羊)

<신길우의 수필 37. 38. 39>

2007-04-13     동북아신문 기자

수탉 

중개 한 마리가 닭 모이통에 부어넣은 밥찌꺼기를 먹으려고 다가간다. 그 바람에 쪼아 먹던 닭들이 물러난다. 개는 긴 혓바닥을 내밀며 핥아먹는다.

  근처에 있던 수탉이 이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와서 개를 공격한다. 개가 달려들자 수탉은 달아났다가 개가 다시 먹이통을 핥자 또 공격한다. 수탉은 부리로 쪼고 발로 할퀴면서 대들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한다. 그러자 개가 먹다 말고 닭 모이통을 떠난다.

  물러났던 닭들이 다시 모이통으로 슬금슬금 모여든다. 수탉은 그들을 바라보며 그 주변을 천천히 감돌기만 한다.

 

  내가 수탉에게 말을 걸었다.

  “넌 개가 무섭지도 않니? 물리면 어쩔려고.”

  그러자 수탉이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으란 말이요? 우리 밥을 빼앗아 먹는데.”

  나는 그 갸륵한 뜻을 인정하며 다시 짓궂게 물었다.

  “하지만, 만용이 아닐까? 개가 훨씬 더 힘이 센데.”

  그러자 수탉이 말한다.

“설령 개한테 물린다 해도 대들어야지요. 그러지 않고는 내 식구들을 어떻게 지켜냅니까? 모두들 나만 믿고 사는데.”

 

  나는 수탉의 말에 더 이상 시비할 수가 없었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로 무단히 가출하여 떠도는 가장들을 생각하며, 수탉의 덕이 높음을 다시 느꼈다. ☺



  어 미 탉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데리고 개울가로 나갔다. 어미닭은 좀 비탈진 뚝 아래로 내려서며 연신 ‘꼬꼬’ 소리를 내어 어서 내려오라고 이른다. 병아리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면서 뚝 아래로 내려갔다.

 

  어미 닭은 두 발로 흙을 파헤친다. 작은 벌레와 지렁이들이 나온다. 어미 닭은 부리로 콕콕 찍고 집어 보인다. 병아리들은 그럴 적마다 쪼르르 달려들어 쪼아보고 집어먹곤 한다.

  한참 뒤 어미 닭이 다시 뚝 위로 올라간다. 병아리들은 뒤따라 오르다가 미끄러지고  굴러 내리기를 여러 번 하여 겨우겨우 올라간다. 어미 닭은 병아리들을 몰고 밭으로 들어간다.

  갑자기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몰아 품안에다 품는다. 하늘을 바라보니 솔개 한 마리가 떠 있었다. 모두들 조용했다.

 

  그런데, 병아리 소리가 났다. 한 마리가 높은 뚝을 오르지 못하고 얕은 곳을 찾아 반대쪽으로 가고 있었다. 어미닭 소리가 끊기자 병아리는 겁이 나서 연신 삐악거렸다. 그 소리에 어미 닭은 소리를 내며 두리번거리다가 그 병아리 쪽으로 달려간다. 어미 닭의 소리에 그 병아리는 힘을 다하여 간신히 뚝 위로 올라왔다. 어미 닭은 그 병아리를 데리고 다른 병아리들이 있던 쪽으로 간다.

 

 그런데, 병아리들은 땅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병아리들은 다가오는 어미 닭을 보고서야 품안으로 파고들었지만, 이미 한 마리는 솔개에게 채여 간 뒤였다.

  나는 그 어미 닭에게 핀잔하듯 물었다.

“아무리 급해도 생각해 봐야지. 한 마리를 구하러 여러 마리를 내박치면 어떡하니?”

  그러자 암탉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혼자 떨어져 있는 놈은 당장 위태로운데 어떻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어?”

  나는 잡혀간 병아리가 마음에 걸려서 한 마디 더 던졌다.

  “결국 한 마리를 잃었잖니. 시간이 걸렸으면 더 잡혔을 것이고.”

  그러자 어미 닭이 한탄하듯 이렇게 말했다.

“먹히고 먹는 것도 섭생(攝生)이고, 살고 죽는 것도 다 하늘의 뜻이지요. 지혜가 많다는 사람도 섭생과 천리(天理)에는 별수가 없잖습니까.”

 

 나는 그 말에 더 이상 대꾸를 하지 못했다. 예수가 길을 잃은 1마리의 양을 구하러 99마리의 양들을 버리는 이야기를 실감하며, 양혜왕이 흔종(釁鐘)을 위해 끌려가는 소[牛]를 불쌍히 여겨서 보이지 않는 양(羊)으로 바꾸라고 한 마음을 다시 떠올렸다. 어진 마음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한가지로, 일의 앞뒤와 시간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 ☺

 


  양 (羊)



  목장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한 무리의 양떼를 만났다. 그 뒤쪽에서는 소년 하나가 긴 막대기를 좌우로 옮겨들며 양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갔다. 양들은 무리 전체가 마치 커다란 한 마리의 아메바처럼 선두를 중심으로 언덕을 넘고 있었다.

  

그런데, 선두 가까이에서 양 한 마리가 선두 무리를 조금 벗어나 방향을 틀었다. 이어서 옆에 있던 다른 양들이 그리로 따라갔다. 그러자, 소년이 달려가서 긴 막대기를 들고 제지하였다. 그런데도 그 양은 꿈쩍을 않았다. 소년은 막대기로 양들을 때리며 몰아 본래의 방향으로 가게 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 양은 옆쪽으로 계속 나아갔고, 다른 양들도 계속 그쪽으로 몰려와서 합쳐지게 되었다. 소년은 막을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올라가게 두었다.

 

  언덕을 넘어간 양떼들은 새로운 풀밭으로 몰려가 풀을 뜯었다. 한참을 그러던 양들은 제각각 적당히 흩어져서 풀을 되색임하며 한가로이 강산을 구경하였다. 널따란 푸른 초원 위에 하얀 양들이 자연스레 퍼져있는 모습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는 맨 처음 옆길로 나간 양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왜 가라는 길로 안 가고 딴 길로 갔니?󰡓

󰡒그 길은 늘 다니던 길이라 잘 미끄러지지요. 그래서 옆길로 간 겁니다.󰡓

󰡒그렇다고 못 갈 것도 없는데 맞아가며 다른 길로 갈 건 없잖았니?󰡓

  그러자, 양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주인이 가라는 대로 가고, 때린다고 안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판단해서 갑니다. 어린 목동이라 아직 그런 걸 모르는 거지요.󰡓

  나는 양의 그 말에 ‘목동이 아무리 몰아도 양들이 가지 않는 쪽 너머에는 목초가 없다’는 히말라야 고산족의 속담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떠올랐다.

 

󰡒양들이 무리지어 가는 것은 막대기를 든 목동의 힘 때문이 아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양들의 감응력(感應力)에 따라 어느 쪽으로 가게 되어 있는 양들의 말없는 합의(合意)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숙달된 목동은 범위를 벗어나는 양들만을 추스를 뿐이지 이동의 추세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사람을 부리고 부림 받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