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와 벌

<신길우 수필 36>

2007-04-09     동북아신문 기자

  모기가 거미줄에 걸렸다. 그런데 거미는 꼼짝도 않는다. 모기는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얼마 안 되어 모기는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고 붙어만 있었다.

  내가 거미에게 물었다.

  “어째서 모기가 걸렸는데 가만있니?”

  그러자 거미가 이렇게 대답했다.

  “먹을 것도 못되는데 잡으면 무엇해요.”

  그래서인지 거미줄에는 모기나 하루살이 같은 작은 것들이 여럿 달라붙어 있었다.


  잠자리 한 마리가 나풀거리다가 거미줄에 걸렸다. 잠자리는 온 힘을 다하여 달아나려고 애를 썼으나, 그럴수록 크고 얇은 날개가 거미줄에 더욱 찰싹 달라붙어졌다. 잠자리는 여러 차례 힘을 모아 온몸을 뒤채면서 퍼덕여 보았지만 별수가 없었다.

  거미는 그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왜 달려가 잡아 두지 않니? 먹을 만도 한데.”

  내 물음에 거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버려둬도 도망가지 못할 텐데 힘들일 것 없지요.”

  거미는 잠자리가 움직일수록 커다란 네 날개가 더욱 달라붙게 됨을 알고 있었다.


  풍뎅이가 날아오르다가 거미줄에 걸렸다. 풍뎅이가 벗어나려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자 거미줄이 크게 흔들렸다. 그래도 발에 달라붙은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고, 매끈한 등껍질에 닿은 거미줄은 붙었다 떨어졌다 하였다. 풍뎅이의 몸부림이 점차 힘을 잃자, 거미는 그때서야 달려가서 꽁무니에서 하얀 실을 뽑아 풍뎅이를 칭칭 감아 거미줄에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는 가만히 있었다.

  “어째서 바로 달려가지 않고 쳐다보고만 있었니? 달아나면 어쩌려고.”

  그러자 거미가 이렇게 말했다.

  “풍뎅이는 힘이 세어서 달아날 수도 있어요. 그럴 놈인지 아닌지 살펴본 거지요.”

  “그래도 얼른 달려들어 묶어놓으면 되잖니?”

  면박 주듯 다시 건넨 내 말에 거미는 어이없어 하는 눈길을 주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힘이 좋을 때 달려들면 죽기살기로 용을 써서 잘못하면 내가 다칠 수도 있지요. 버둥대게 내버려두었다가 힘이 빠졌을 때 덮쳐야 쉽지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벌이 거미줄에 걸렸다. 거미는 흔들림으로 즉각 알고도 달려가지 않는다. 벌도 두어 번 움직여 보더니 가만히 있다.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 벌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은 뒤에야 슬슬 벌에게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고서도 조심스레 둘러보며 벌의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한다.

 

  순간, 죽은 듯 꼼짝도 않고 있던 벌이 거미의 배에다가 벌침을 꽂았다. 불의의 습격을 받은 거미는 곧 기절하여 땅바닥으로 뚝 떨어졌다. 벌은 그제서야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쳐서 거미줄에서 벗어나 달아났다.

  나는 땅에 떨어진 거미를 찾아내어 살펴보았다. 발만 꼼지락거리던 거미는 차차 정신을 차리더니 엉금엉금 기어서 토란 줄기를 타고 올라갔다. 그리고는 줄기 속에 입을 깊숙이 처박고는 토란 줄기의 즙액을 한참 동안 빨아먹었다.

  나는 거미에게 위로부터 하고 물었다.

  “어째서 먼저 공격하지 않고 빙빙 돌기만 했니?”

  그러자 거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상대방이 어떤 놈인지 알아야 잡지요. 조심하느라 했는데 독침을 맞은 거지.”

  그러고 보니, 거미는 힘이 센 줄 알고 지치기를 기다렸고, 벌이 두어 번 용써 보고 가만히 있었던 것을 힘이 빠진 것으로 잘못 판단한 것이다. 그래도 다가가 살펴보는 조심성을 보였는데, 벌이 침으로 기습을 한 것이다. 독을 맞았으니 혼절하여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토란 줄기의 즙액이 해독제란 것을 알고 있어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벌도 힘을 빼지 않고 기다렸다가 공격자를 처치한 다음에 탈출한 것이다. 만약 벌이 달아날 생각만으로 끊임없이 허겁지겁 몸부림쳤더라면 거미가 다가와도 기운이 빠져서 독침을 제대로 놓지 못해서 실패했을지도 모른다.


  동물들도 먹이를 사냥할 때 무작정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도 힘으로만 벗어나려 하는 것도 아님을 알았다. 각기 지혜를 다 짜내서 상황을 살핀 뒤에 방어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약한 자도 지혜로우면 적을 물리칠 수 있고, 힘센 자도 생각 없이 덤볐다가는 도리어 당할 수가 있다. 천길 나락에 떨어져도 지식이 있으면 살 방도를 찾아내고, 생사의 위기에서도 지혜로우면 살아날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사람만의 경우이겠는가. 거미나 벌 같은 미물의 삶도 다 이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