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의 대화/ 돼지­

<신길우의 수필 35>

2007-04-09     동북아신문 기자

  시골에서 살고 있는 친척집을 방문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인데도 친척 아저씨는 돼지를 기르고 있었다. 돈벌이보다도 심심하지 않고 기르는 재미로 그냥 기른다는 것이다.

 

  아저씨가 퍼서 담은 돼지밥 양동이를 들고 따라가 보니,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앞발을 둘 다 통나무 울타리 위에 올려놓고 엉거주춤 선 채 얼굴을 내밀고 꿀꿀거리고 있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이 몸무게가 150㎏은 훨씬 넘어 보였다. 

 

  돼지는 제 밥을 울안의 큼지막한 나무통 밥그릇에 넣어주기도 전에 바가지를 들이받으며 난리를 친다. 주인아저씨가 밥통에 담아주자 돼지는 기다란 주둥이를 통속에 처박고 정신없이 먹어댄다. 더 주려고 들이미는 바가지를 머리로 받아서 돼지밥이 엎질러지기도 한다. 아저씨는 그러는 돼지를 그릇으로 툭툭 치며 두세 번을 더 퍼서 넣어주었다. 먹는 데만 열중하던 돼지가 잠시 고개를 들어 숨을 쉬는데, 숨소리가 그대로 증기기관차 김 빼는 소리 같다.

  돼지는 밥을 먹다가 우리를 쳐다보며 더 안 주느냐는 듯이 꿀꿀댄다. 고개를 들어 짜금거리자 밥이 밥통 주변에 떨어진다. 그러기를 몇 차례 하면서 돼지는 밥통 안의 밥을 깨끗하게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양이 차지 않았는지 또 바라보며 꿀꿀거린다. 더 줄 기색을 보이지 않자 먹다가 흘려서 지저분해진 밥통을 핥아먹고, 나중에는 밥통 주변의 것까지 주어먹었다.

 

  내가 돼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밥을 그렇게 법석을 떨며 먹니? 누가 빼앗아 먹을까 봐? 너 혼자 다 먹을 밥인데.”

  그러자 돼지가 대답한다.

“배고파 봐. 차분히 먹을 수 있나. 너희들도 배가 고플 땐 허겁지겁 먹지 않니?”

  나는 이해가 잘 안 되어 또 물었다.

“하지만, 주인이 정기적으로 밥을 갖다 주는데 뭐가 그리도 배가 고프니?”

  내 말에, 돼지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렇게 대답한다.

“모르는 소리. 우리는 자주 밥을 먹어야 되는데 사람들처럼 삼시 세끼씩만 주니까 그렇지.”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배고프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돼지의 밥만은 누구나 충분히 주니까.”

“그건 알지. 그래서 밥을 먹곤 식곤증으로 한숨 자는 거야. 하지만, 다음 끼니때까지는 너무 길어. 그래서 자꾸 꿀꿀거려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우리는 배고파하는 거야.”

  돼지의 말에 나는 이렇게 의견을 달았다.

“그러면, 좀 남겨 두었다가 배가 고플 때 먹지.”

  그러자 돼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안타까운 듯이 대답한다.

“만약 밥을 남겨 봐. 본래 양이 적은 줄 알고 조금씩밖에 안 주지. 그러면 우리는 더욱 굶주리게 되잖아?”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배가 불러도 꿀꿀대는 돼지를 생각하고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흘린 것까지 주어먹을 건 없지 않니? 너희들이 밥을 주기 전에도, 준 후에도, 싫건 먹고 난 뒤에도 계속 먹으려고만 하고; 사람만 보면 밥을 달라고 꿀꿀대기만 하니까, 사람들이 너희들을 ‘돼지’라고 부르지.”

 

  내 말에 돼지는 한참을 어이없어 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보고 돼지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도 욕될 것이 없지. 또, 돼지라고 안 부른다고 해도 우리가 돼지가 아닐 것도 없고. 오히려, 우리의 한 면만 보고서 그런 사람을 ‘돼지’라고 부르는 사람이 바로 제 생각밖에 모르는 ‘돼지’지.”

  돼지는 잠시 있다가 또 이렇게 말을 하였다.

“그리고, 그릇에 묻고 흘린 것을 먹는 게 이상하다고? 그것은 먹을 것이 아니냐? 밥 한 술이 얼마나 귀한 것인데…. 너희들처럼 맛이 없다고 고기도 남기고, 배가 부르다고 그 많은 음식들을 그냥 내버리는 족속들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야. 감사히 먹겠다고 기도하고서도 남기고 버려? 그러고도 복을 받겠다고? 먹어야 사는 놈들이 음식 귀한 줄을 알아야지.”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사자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절대로 사냥을 하지 않고, 독수리나 까마귀 같은 새들은 죽은 고기만을 먹기도 한다. 남은 먹이를 그냥 내버리는 동물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복돼지’ ‘금돼지’란 말이 단순히 돼지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이익을 주고 금전적인 가치가 높아서만 붙여진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달으면서 돼지우리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