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에 목매인 조선족의 운명

<류연산 칼럼>

2007-03-27     동북아신문 기자

지난 해 말 조선족사회는 한국정부에서 실시한다는 방문취업제를 두고 무척 흥분에 들떠 있었다. 내척 8촌, 외척 4촌을 규준으로 혈연관계로 입국이 허가되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친척이 없는 사람들한테도 고국에 가서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지어진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시험을 치고 추첨을 통한다는 방문취업제의 구체적인 방법이 발표되면서 조선족사회에서는 흑운이 감돌고 있다. 감사하게 받아드려야 할지 아니면 치욕으로 삼아 거절해야 할지 오리무중에 빠진 심정들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의 수요에 의해 한국어시험을 치겠다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것도 시험은 형식이나 다름이 없이 쉬워서 초중을 졸업한 수준이면 누구나 통과된다고 한다. 그런데 합격자를 상대로 추첨을 하겠다는 데에 대해서는 모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10만 이상이 시험에 참가한다고 한다. 그중에서 3만 여명을 뽑아가고 나면 나머지 사람들은 기약도 없는 다음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추첨의 형식도 컴퓨터를 이용해서 한다고 한다. 아마 한국입국을 빌미로 한 브로커들의 부정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물론 컴퓨터가 인간이 아닌 이상 인정사정을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기계가 최상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싶어 자못 안타깝다.


  어렵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이 외면을 당해서 더욱 어렵고 더욱 버림받은 존재로 될까 걱정이다. 연변에만 해도 수천 명의 초청사기피해자들이 있고 시골 농촌에서 농토에 목을 걸고 희망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정부나 사회단체를 통해 얼마든지 신상파악을 할 수 있다. 그러한 계층들에게는 방문취업제는 진정한 복음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조선족사회의 안정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날 나는 연길시 우의로 노무시장을 지날 때면 할 일이 없나, 하면서 무리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좀 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팔리기를 기다리는 노예시장의 노예들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요즘엔 그 노예들을 방문취업제에 신청하고 허구한 세월을 조마조마한 심정을 안고 보내는 사람들과 나란히 세워본다. 방문취업제를 고대해온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주사위에 목매인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류연산(柳燃山)

필명:류일엽(柳一葉)
liuranshan@hanmail.net

1957년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 출생
1982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현재 연변인민출판사 사장 조리.
연변작가협회 리사,소설분과위원회 주임.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인대 교육,과학,문화,위생위원회 위원,인대 대표자격심사위원회 위원)

저서:
수필집《서울바람》
소설집《황야에 묻힌 사랑》외 다수.
장편기행문 《혈연의 강들》
장편실화 《세계속의 우리민족》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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