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비행기 안에서 와인 잔 들다

<장편기행문> 남경, 매화꽃이 손짓하다

2007-03-13     동북아신문 기자

28일 날 아침, 우리 일행은 신화보사 사장 조명권 단장의 승용차에 앉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깨끗하였다. 원래는 3월 1일 자 떠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으나 갑자기 비행기 디켓을 사지 못해 하루 앞당겨 비즈니스 항공권을 구매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인당 14만 5천 원을 더 주었다고 한다. 아무튼 비행기 디켓은 남경시 정부가 구입해주는 것이니, 이래서라도 특등실에 앉아보게 된 것 또한 행운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동방항공 소속 중형 항공기였다.

 

나는 좌석 첫머리, B자리에 앉게 되었다. 비행기는 상공에서 인차 평온을 잡았다. 일반석과는 다르게 스튜디어스들의 대우가 깍듯하였다. 먼저 젖은 손수건을 주고 음료수를 내왔다. 스무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중국인 스튜디어스 아가씨가 우리를 접대하였다. 영어를 모르는 나는 아가씨가 영어로 대화를 해 와서 민망할 때가 많았다.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의 몸매에서 세련된 미가 풍겼다. 가끔 매력적으로 웃어주는 웃음이 가만히  마음을 흔들어 주었다. 지금 우리는 중국 남경으로 날고 있다는 현실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나는 곁 좌석에 앉은 중한신문사 조호권 편집국장과 와인 잔을 잡았다. 연태 산 검붉은 색의 와인이었다.

“건배!”우리는 뒤에 앉은 대한뉴스 김녕복 편집국장과 재한신화보사 조명권사장, 장성성 여사와 함께 잔을 들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아오?”

나는 조호권 국장에게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28일이면 음력으로 11일, 나의 생일 날이다. 

“세상에, 비행기 안에서 생일을 쉬다니?”


설날에 길 떠나면 그해에 객지생활 많이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얼마 전 연길을 거쳐 위해로, 위해에서 다시 인천으로 비행기와 배를 엇갈아 타면서 서울로 돌아왔는데 금방 또 남경으로 날아가고 있지 않는가! 아마 금년 한해도 부지런히 뛰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이렇게 뛰고 가는 것이 나는 싫지는 않았다. 소설가라면 테블을 마주하고 앉아 흔들리지 않고 글을 써야 작품다운 작품이 나오겠는데, 이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기자생활에 젖어있게 되었고, 정신없이 취재하러 다니고 글 쓰고, 또 다니고 쓰고 하였다.


그냥 쉽게 쓰는 기사유형의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자기 생각이 담긴, 고급적인, 문학지향적인 글들은 나와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런 자책과 아픔들이 또 언제부터인가 내 가슴에 세월의 먼지처럼 은은히 자리 잡아오게 되었다. 마치 바위에 낀 이끼처럼! 나는 가끔 그런 이끼의 색깔과 냄새마저 느끼고 있었다.

 

스튜디어 아가씨가 대접에 물 세 컵을 받쳐 들고 왔다.

“물드세요.” 아가씨가 생끗 웃었다.


조호권 선생이 컵 한잔 들자 나머지가 두 잔, 나는 그 중 한 컵을 잡았다. 순간 대접이 기우뚱해지면서 다른 컵의 물이 나의 바지에 쏟아졌다. 나는 금방 아랫도리가 물벼락을 맞았다. 속옷까지 젖어든 것. 세상에, 이건 또 웬 벼락이란 말인가?…그런데 나는 스튜디어 아가씨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오히려 미안 해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쏘리…” 아가씨는 흰 수건을 갖고 와서 무릎을 꿇고 나의 아래옷을 닦아 주었다. 얼굴에 은은한 홍조가 물들어 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다고 하는데, 더구나 예쁜 아가씨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는데 성을 낼 수가 있는가? 그래서 영웅은 미인에 약하다고 했나보다. 물론 나 자신은 영웅이 아니지만, 그래도 사내가 아닌가! 허허, 어쩌면 이것도 생일선물인줄 모른다. 하느님이 특별이 챙겨준 어떤 이벤트!…    


남경 비행장에 내리자 나는 내가 앉아온 비행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두 시간 십분 만에 항공기가 우리를 인천공항에서부터 남경비행장으로 실어왔다는 사실이 정말 실감이 나지 않는다. 배타기도 어렵던 옛날을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글로벌시대라는 생각이 진하게 묻어왔다.   

 

 

꽤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서울보다 날씨가 조금 찬 것 같았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