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환용 꽃들의 비애

<신길우의 수필 27>

2007-03-13     동북아신문 기자

행사에 참가했던 아내가 꽃다발을 한 아름 가지고 들어왔다. 웬 꽃다발이냐는 내 말에 대꾸도 않고 식탁 위에 놓더니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꽃들이 너무 아까워서 화환에서 뽑아왔어요.”

 

아내는 행사장에 3단 화분 여러 개가 들어왔는데 끝나고 나면 모두 버리곤 해서, 참석자들에게 뽑아가라고 하였단다. 그래서 자기도 몇 송이를 가져온 것이라며 꽃병에다 꽂는다. 그 말에 나도 같은 생각을 하여왔기에, 공짜란 데서 오는 찜찜함을 그냥 덮어두었다.

 

그런데, 아내가 꽂아놓은 꽃병의 꽃들을 감상하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막 피어난 꽃들이라 모양도 빛깔도 예뻤는데 꽃마다 꽃술이 없는 것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꽃밥 부분을 가위로 잘라낸 것이다. 연분홍이며 노란색 개량 나팔꽃들도 한결같이 꽃술이 잘려나갔다. 나팔처럼 피어난 여섯 가닥의 꽃잎들은 중간 부분에 짙은 자주빛 반점이 뿌려진 듯 흐트러져 있어 더욱 멋졌는데, 송이 속 노란 꽃잎 사이로 돋아난 꽃술들이 뭉뚝 잘려버린 것이다. 순결을 상징하는 하얀 백합도 그랬다.

“아니, 꽃들이 왜 꽃술이 없어요?”

내 말에 아내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꽃술을 잘라야 꽃잎이 오래 간대요. 그래서 꽃술들을 다 잘라버린 거래요.”

나는 그 말에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하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꽃은 꽃술이 있어야지.”

 

나는 아쉬워하며 꽃송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한결같이 꽃술이 다 잘려 나갔다. 암수 꽃술이 없는 꽃잎만의 꽃, 그것도 꽃이랄 수 있을까? 꽃은 왜 피며 무엇 하러 피는가를 생각하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조화를 보는 것보다도 속이 더 메스꺼웠다. 인간의 이기주의, 잔인성이 이 지경에까지 왔는가 생각하니 부끄럽기가 한량없다. 가축을 거세시킨다는 말은 들었지만, 꽃마저 이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끓는 속을 억지로 누르며 막 피어나려는 꽃송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것은 꽃술이 남아 있겠지.”

 

그러면서 뾰족 하니 나온 꽃잎 앞 부분을 두 손으로 잡아 가만히 젖혀보았다. 꽃잎은 별 저항도 없이 두 가닥으로 펼쳐졌다. 또 가르니 다섯 가닥 꽃 이파리가 순순히 모두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의 암술을 둘러싸고 여섯 개의 수술이 둘러서 있었다. 꽃술 끝마다에는 1㎝도 더 되어 보이는 진홍색 꽃밥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렇지! 나는 내가 피워낸 그 순수한 꽃송이를 바라보며 한참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나비가 꽃을 찾아와 꿀을 빨고, 그 나비 몸에 꽃밥을 묻혀 다른 암술에 수정하게 하는 꽃들의 역할, 그 역할이 끝나면 꽃잎은 아름다움을 접고 시들어 떨어지고는 암술은 열매로 환생하는 것인데……. 그런데 그 암수 꽃술들을 잘라버린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당신네 사람들은 다만 꽃잎이 시듦을 막고 오래 보기를 위해서 꽃술들을 잘라버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한 평생의 삶의 의미가 잘려나가는 것이오.’

꽃병에 꽂힌 꽃들이 합창하여 외치는 듯한 소리가 느껴져서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이 꽃들을 치워요1

 

내가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아내는 어리둥절하였다. 나는 그러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더 말을 못하고 내 방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