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애가 조선족이고 싶다

[려호길 칼럼]

2007-01-24     려호길

결혼11년 만에 딸애가 태여나서 집안에 경사가 났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천사같은 딸애를 보노라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그러나 정작 딸애의 교육문제를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필이면 부모들이 자식의 교육문제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민족정체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는 이 때에 조선족가정에서 태어날 것이 뭐람?

벌써부터 우리 부부는 딸애의 교육문제를 놓고 신경이 팽배해 산다. 내가 조선말 동요테잎을 사오면 아내는 한어말 동요테잎을 사오고 조선말 방송을 틀어놓으면 한어말 방송으로 돌려 놓는다. 명색이 조선족중학교선생인 아내건만 티끌만한 양보도 없다. 자기도 학교에 학생이 없어 언제 정리실업 당할 지 모르는데 딸애를 조선족학교에 보냈다가 전도를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거냐고 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올해도 연길시는 800명 교직원이 남아 돌아 부득불 감원계획을 발표했다. 끝없는 인구유실과 갈라져 사는 부부가 많다보니 출생률이 낮은데다가 조선어를 배워봐야 전도가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이 늘어나 3000위안을 한족학교에 갖다 바치면서 아이를 한족학교에 입학시키기 때문이다. 어느 부모인들 자기 피 붙이를 비전없는 조선족교육과 비전없는 조선족사회에 바치려고 하겠는가.

돌이켜 보면 지난 150여년 동안 조선족사회가 민족군체를 이루고 이 땅에서 올곧이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조선족의 민족교육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서전서숙>과 <강습소>등을 세운 어르신들도 조선족의 미래를 타진하고 만반의 준비로 조선족교육을 창시하였을 것이다. 쓰기 편하고 읽기에 편하고 표현이 다양한 선진적인 조선어가 있었기에 조선족들은 다른 민족보다 빨리 배우고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며 흩어지지 않고 민족군체를 이루고 2세 3세 4세로 이어 내려올 수 있었다.

100여 년의 찬란하던 조선족교육이 오늘날 여지없이 무너지고 있다. 부림소를 팔아 자식한테 민족교육을 시키던 부모들이 이제는 소를 몰아 한족학교에 등록금으로 바친다. 조선족으로 태여나 조선어교육을 받고도 갈팡잘팡 하는 부모 슬하에서 한어교육을 받고 조선족임을 의식할 수 있겠는가. 상투를 자르고 이마팍을 밀고 외태머리를 하고 만족옷을 입고 청나라에 <치발역복>하는 모습이다. 옛날 어르신들은 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없이 상투를 자르고는 조상들에게 미안하여 애들처럼 엉엉 울기라도 했건만 이 시대 학부모들은 자식을 민족군체에서 빼돌리고도 큰일이나 해낸 듯 자랑스럽게 구구히 설명하며 다닌다.

세상이 원망스럽지만 나는 금지옥엽인 내 딸애를 조선족학교에 보내련다. 설상가상으로 시국이 더 나빠져 딸애가 조선족교실에 남은 마지막 수업생이 되더라도 나는 그럴 수 밖에 없다. 증조할아버지가 조선에서 이민을 와서 조선족으로 살았고 할아버지도 조선족으로 살았고 아버지인 나도 조선족으로 살고 있으니 딸애도 당연히 조선족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은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다. 민족교육도 선택이 아니라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외롭고 괴롭지만 나는 벌써부터 딸애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자기 민족의 소리<ㄱㄴㄷㄹ> <ㅏㅑㅓㅕ>를 외우는 모습을 보고 있다.    

                         (2007.1.24 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