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법을 개정하고 불법체류 사면하라!

下定決心 不?犧牲 排除万難 去爭取勝利!

2003-12-09     운영자
[예문연변통신]2003-12-7

“샤딩쥐에신 부파시셩 파이츄완난 취쩡취셩리!
(下定決心 不?犧牲 排除万難 去爭取勝利!)
동포법을 개정하고 불법체류 사면하라!”

오늘도 아침 가두투쟁 겸 운동을 다녀온 동포들이 외치는 씩씩하고 우렁찬 구호 소리가 서울 도심에 있는 백주년기념관 앞에서 찬공기를 가르고 울려퍼지며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그동안 동포들이 노래를 여러 곡 배우고 구호도 많이 배웠지만, 이것만큼 통일이 잘 되고 힘있게 들리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마오(毛)가 지었고, 문혁 시절에 많이 따라 불렀다는 이 구호는 이제 새로운 내용을 얻어 동포들이 자신들을 내쫓는 고국에서 비장한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외침이 된 것이다.

종로5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주변은 불법체류 신분으로서 강제추방될 처지에 있는 중국동포들에게는 지금 해방구와 다름없다. 한국교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이 구역은 한국에서 오갈 데 없는 동포들의 유일하고 안전한 도피처가 되고 있다.

어제는 70여명이 농성중인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에 법무부 직원들이 들이닥쳤지만 때마침 언론사 기자들이 현장에 있었던 탓에 그냥 물러났다는 소식, 그 동안 단속된 숫자가 800명을 넘었다는 소식이 농성장에 전해졌다. 농성 열흘을 넘기며 그 동안 너무 안전한 주변 분위기 때문에 긴장이 느슨해지는 기미가 있던 이곳 농성 참가자들의 표정에 아연 긴장의 기색이 감돌았다. 지금 전국적으로 수천명이 농성중이고, 동포법개정과 국적회복에 우호적인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지만, 쉽사리 물러서지 않겠다는 정부당국의 단속 의지를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사태전개인 것이다.

농성 일과는 비교적 단순한 틀에 짜여져 있다. 매일 아침과 점심 무렵, 두 차례 거리 시위에 나선다. 농성장 안에서는 노래와 구호 배우는 시간, 오락시간, 동포법개정특위 위원장인 임광빈목사의 강연이 식사 시간 사이에 배치되어 있고, 농성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주제로 한 조별토론과 발표를 끝으로 대개 11시 무렵에 잠자리에 든다. 농성장에는 방문객이 많이 찾아오는 편이다. 처음에는 교회 관계자들이 주로 많이 와서 지지와 격려의 의미로 기도회를 열곤 했지만, 차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온다. 방문객의 지지 발언을 듣는 시간도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농성이란 걸 해본 적이 없을 동포들로서는 열흘 넘게 콘크리트 바닥 위 좁은 공간에서 정해진 일과에 따라 단체 생활을 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농성 참가자들 가운데 젋은 사람은 오히려 드물고 대개 40대 이상이고, 50대도 적지 않으며 60대인 분도 몇 분 있다. 그럼에도 동포들은 지도부에 매우 협조적이고, 농성 대오는 굳건한 편이다. 오갈 데 없어 교회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동포들의 처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농성투쟁은 공식적으로 재외동포법개정특별위원회가 이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농성대오는 특위위원장인 임광빈목사가 꾸려온 조선족복지선교센터와 동포들의 자체 조직인 조선족연합회가 주축이 되어 꾸려가고 있다. 연합회 회원과 비회원 간의 애초의 거리감과 인식의 편차도 잘 극복해나가고 있는 편이다. 숫자는 적지만, 기간 조직이 튼튼한 덕분이다. 교회건물 내에서 이루어지는 농성이고, 위원장 본인이 목사이며, 지원하는 사람들이 KNCC를 비롯하여 주로 교회관계자인 탓에, 농성에 교회 분위기가 짙게 배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찬송가도 배우고, 처음엔 지원 단체와 방문자의 기도회가 자주 열리고, 매주 일요일에 예배가 진행된다. 사회주의 국가에 살다온 동포들로서는 이런 교회분위기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큰 갈등없이 잘 참아내는 편이다. 상황탓도 있겠지만,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서 동포들의 대단한 인내심과 착한 심성이 수시로 확인된다.

동포들은 지금 크게 두 깃발 아래 모여있다. 국적회복운동을 하는 서경석목사의 지휘를 따르는 쪽과 재외동포법 개정 운동에 동참하는 부류이다. 재외동포법 개정을 요구하는 동포들은 다시 동포법개정특위의 지휘 아래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농성중인 쪽과 기독교연합회관에서 농성중인 중국동포의집 소속 동포들로 다뉜다. 단식과 한국국적 회복을 요구하는 운동이 극단적인 투쟁방법과 그 과감한 요구주장으로 인해 언론의 주목과 함께 중국과 한국 정부의 중시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에 참여하는 거의 대부분의 동포들은 실제로는 한국국적을 얻기보다는 한국에 머물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계산임은 다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에 동포법개정운동에 동참하는 동포들은 동포법개정이 최종 목표이다. 이 운동에 동참한 동포들 가운데는 국내 체류 4년 미만으로서 이번에 합법화할 수 있었지만 합법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로지 동포법개정을 위해 젖먹던 힘까지 다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으며, 심지어 한국 체류 3년 미만인 사람들과 한국국적을 얻은 사람들도 있다.

동포들이 이렇게 두 운동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나뉨’은 결코 동포들 탓이 아니다. 동포들로서는 이번에 추방되지 않고 자유로운 출입국을 보장받기를 원하는 데서 모두 일치된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건 동포들 입장에서는 이런 ‘나뉨’이 불가항력적이었을 것이며, 두 흐름으로 운동을 나누어간 한국인 지도자들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 것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국동포가 어떤 길을 택하여 살아갈 것인가는 중국동포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물론 동포의 자격을 얻을 것인가도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중국과 같은 집단주의 요소가 강한 국가에서 국적선택은 그보다 훨씬 결정적인 문제다. 이번에 제기된 헌번소원에 대해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 결정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어떤 형태로건 동포사회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절차와 과정이 있어야 한다. 옆에서 도울 수는 있을지언정 한국인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국적회복’은 이번에 중국동포들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한계가 있으며, 이 운동의 실제 목표 달성과는 무관하게 이 소용돌이가 앞으로 미치게 될 부정적인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지금 중국에 있는 동포들의 처지는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 같다고 한다. 중국에서 볼 때 국적회복 ‘소동’을 일으킨 한국 체류 동포들에 대한 원망의 소리도 높다고 한다. 동포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가차없는 질타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이번에 국적회복 사태로까지 전개된 데는 중국 현지 동포사회가 구심점이 없는 탓도 크다. 자체 구심점이 없고, 한중간 교류가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한국에 기대어 혹은 한국에서 생활방편을 구하는 동포들이 많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큰 흐름을 외면하고 애향심만을 강조하는 것은 문혁이 끝난 뒤에도 ‘혁명’을 외치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

비록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따라 행동했다고 하지만, 이 두 운동에 참가한 동포들은, 심지어 중국정부의 곱지않은 눈길과 동포사회의 애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용감하게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딘 것이다. 그들을 모두 ‘한치보기’로 간주하는 것은 즉흥적인 비난이고, 단견이다. 그렇다면, 동포사회의 엘리트들이 얼마나 무기력한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며 새로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는 이들 ‘용감한’ 동포들은 앞으로 동포사회의 희망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비록 일부지만, 농성장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농성장을 단지 피난처가 아니라 투쟁의 장소로 인식해가며, 점점 자신들끼리 여유와 믿음을 키워가는 동포들의 생활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그런 가능성도 읽혀진다. 지식인이 임무를 방기하면 민중이 직접 나서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은 진리다. 그리고 그와 함께 7,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일선에 섰었고, 현재는 동포사회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일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역할도 주목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