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무엇보다 선비의 자존심 지켜나가야"

<조선족 소설가 장혜영을 만나다>

2007-01-08     이동렬

 내가 작가 장혜영씨를 두 번째로 만난 곳은 지난해 12월 말, 노량진 국립중앙박물관에서였다. 마침 그의 저서 ‘한국을 해부하다’가 그곳에 팔리고 있었다. 서점에 살 수 없던 책을 사게 되어 천만 다행, 이 책은 한국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2002년 한국국학자료원에서 출판하고 2005년에는 전자책으로 재출판 된 인문도서로서 한국대학교재 인문학계열에 선정된 터라 나는 오래전부터 한 번 읽고 싶었었다.

“정말 큰일을 해냈어요.”

나의 칭찬에 사인을 끝낸 장혜영씨는 겸손하게 웃어보였다.

 

현재 그는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조선족작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흑룡강에서 「하이네와 앵앵」으로 문단을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중·단편 70여 편을 발표하였으며 장편소설「희망탑」, 소설집「하늘과 땅과 바다」를 출간하고 장편소설「흉수와 악마」를 '송화강' 잡지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일본에서 일부 작품이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으며, 한국에서 장편소설「희망탑」,「여자의 문」(전2권), 장편소설「살아남은 전설"(전2권 실천문학사)」을 펴냈고 지난 11월 25일에는 한국 신성출판사에서 네 번째로 되는 장편소설「무지개 그림자」를 출간했다.

 

지난여름 첫 번째 만났을 때의 조금 경아(驚訝)했던 느낌이 이번에는 어딘가 존경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제 갓 지천명에 들어선 그는 완연 선비타입의 사내였다.

 

아무리 조선족 지식인이요 소설가라 해도, 한국 땅에 와서 단 하루도 일하지 않고 6년 동안 대한민국 서울 시내 도서관, 서점을 다 돌며 수천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골방에 들어앉아 글만 써왔다면 누가 믿겠는가? 아무리 사랑하는 아내가 벌어서 챙겨주고 밀어준다 해도, 조선족이라면 생각이 좀 그럴 것이다. 한국의 꽤 이름 있는 문인들조차 글만 써서는  살기 힘든, 세계에서 물가가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서울이 아닌가?

 

국립중앙박물관을 돌면서 그는 나에게 역사, 문화, 종교, 무속, 철학 등을 곁들며 설명을 해주었다. 사회학, 자연학까지 포함한 그의 박식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한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 결심했다고 한다. 물론 그러자면 다방면의 해박한 지식을 소유해서 한국작가들이 읽어도 흠잡지 못할 글을 써내야 했고 소설의 의식과 구성, 표현방식에 이르기까지 세련미를 갖춰야 했다. 그것은 자신과의 대결일 뿐만 아니라 조선족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는 싸움이기도 하였다.

 

그는 작품을 출판할 때에도 오직 작품으로 당당한 승부수를 띄웠다.

“장혜영…어디, 뉘시던가?”하고 출판 상이 물으면,

“별로 이름 없는, 그저 조선족 작가라 생각하면 됩니다.”하고 깍듯이 인사하고 나왔었다. 그래서 그는 원고료를 당당히 받으면서 책을 낼 수가 있었다.

 

이는 한국에 오면 이 사람 저 사람 찾아다니며, 오히려 제 돈을 쓰지 않으면 원고료 한 푼 받지 못하고  책 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 하는 조선족작가(또, 그런 한국작가)들과 선명한 대비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해 나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주제의 생신함과 뛰어난 문장 구사능력, 세련된 문필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비소설「한국을 해부하다」에서 작가는, 중국 조선족이라는 특수한 신분에서 해탈하여 민족 정체성의 시점에서 우리 민족의 과거에서 보이는 구조적약점을 진단하여 개선하려는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였고, 단순한 중국 조선족 입장에서 한국을 보는 그 어떤 편협한 시각이 아닌 학문이 고양하는 가치의 위계를 정립하는 고차원에서 한국, 나아가 국제화진로개척 중 우리 민족은 영원한 강자로 직립하여야 한다는 진지한 우환의식을 보여주어 너무 감명 깊었다.

 

우리 민족에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대성과 모방에 대해 비판을 가하고 과연 우리 것이라고 떳떳하게 자랑할 만한 고유사상과 문화란 무엇일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유방식도 대담하고 독특했었다.

 

작가는 화랑도에서부터 선비문화, 발달한 놀이문화, 실속 있는 한국의 대외의존경제, 범람하는 외래사상, 문학예술과 과학에서 보이는 모방사례들을 지적하고 정통성을 지닌 우리 고유문화로서의 무속과 민간신앙을 제시하면서, 한국의 역사를 정치, 경제, 문화, 사상, 풍속, 신앙 등 제반 영력에 거쳐 학술적 집도를 시도함으로써 굴절된 가치와 진리의 진면모를 원상 복귀시키려 시도했었다.

 

그날 저녁 술을 하면서 나는 이렇게 물었다.

“요즘은 또 무슨 대작을 구상하고 있지요?” 

“별말씀, 대작이라니? 허허, 아직은 비밀입니다.” 하고 그는 점잖게 웃었다.

그러나 작가는 또 다른 한 작품 창작을 위한 자료수집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 낼 수가 있었다.

 

장혜영 소설가는 자신의 경력으로 글로벌시대에서 우리 조선족작가들이 어떻게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하고 작가의 자존심을 지켜 나가야 하는 가를 몸소 보여주면서, 지식인들의 삶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하게 하고 있었다.    

                                                                        <끝>

이동렬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