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둥지(연재11)

2006-12-25     김석

그럭저럭 저녁 식사 준비가 되었습니다. 아가씨와 늙은 총각은 중간에 밥상을 놓고 마주앉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집 안간 숫처녀가 처음으로 외간 남자에게 해주는 밥이었고, 장가 못간 노총각이 난생 처음 먹어보는 정체 모를 처녀가 받쳐 올린 저녁상이었습니다. 밥맛이야 어떻든 기분이 문제입니다.
 

총각은 어딘가 묘한 기분이었고, 처녀도 역시 별난 기분이었습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이상야릇한 그 기분, 두 사람 모두 싫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저 총각에게도 처녀에게도 이런 일이 처음이었을 뿐입니다.
 

그런 이상야릇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한 저녁 식사입니다만, 조금 뒤 어색한 기분이 살아지고, 남자와 여자는 자연스럽게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기 시작합니다. 남자는 남자의 이야기를 했고, 여자는 여자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알고 보니 늙은 총각은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과거 시험을 봤는데, 매 번마다 운수가 사나워 미끄러지기만 했답니다. 그러다 나니 서방도 못 가게 되었는데, 이젠 아예 출세 생각을 단념하고 심심 산골에서 혼자 농사를 지으며 태평한 일생을 보내기로 결정한 거랍니다. 
 

들어보니 참 안타까운 사연이었습니다. 곁에서 우리가 봐도 참 안됐지요..^^

 

요즘 세상에도 사법 고시니, 영화감독이니, 드라마작가니 뭐니 하며 한판을 꿈꾸다가 늙어버린 총각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작가가 된다며 장가도 안 가고 다 늙어버린 까마귀도 참 불상한 놈입니다.

 

밤은 조용히 깊어갔고 두 사람의 얘기는 끝이 없습니다. 창밖의 수림 속에서 뻐꾸기 한 마리가 뻐꾹~ 뻐꾹~ 합니다.

 

다음은 까마귀의 추측입니다만..^^

 

노총각이 그만 욕망을 참지 못하고 호랑이로 변신해 아가씨를 잡아먹었는지, 아니면 아가씨가 굶주린 호랑이에 반해 몸을 맡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어서 닭이 울고 동이 트더니 새날이 밝아왔습니다.
 

그 다음의 일은 간단합니다.

 

총각에게 작별을 고하고 서울로 돌아간 부잣집 아가씨는 아빠의 반대도, 엄마의 반대도, 그리고 오빠들의 반대도 모두 물리치고 집에서 뛰쳐나와 늙은 총각이 사는 오막살이 집으로 시집갔답니다.
 

좋은 마누라를 얻은 시골 노총각은 마누라의 성원에 힘입어 재차 과거 시험에 도전합니다. 결과 총각은 장원 급제했고, 어느 지방의 군수로 부임되었습니다. 아가씨는 군수부인이 되어 남편과 손을 잡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 후 늙은 시골 총각과 서울 아가씨는 아들 딸을 많이 낳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

 

여러분, 이만 하면 어머니가 왜 아버지에게 시집갔는지 알만하시겠습니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서울 아가씨가 바로 까마귀의 어머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까마귀 어머니는 참 낭만적입니다. 시도 쓰고, 작곡도 하고, 안무도 하고 못 하는 것이 없습니다. 젊었을 때는 문학 소녀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에게 시집갔기에 늘그막에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어머니의 일과를 보시면, 아침에 무도장에 가서 운동 삼아 멋쟁이 할아버지들과 몇 바퀴 돌고는 돌아와서 낮잠 자고, 오후에는 시장이나 돌고, 저녁에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감동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까마귀의 로맨틱한 부분도 역시 유전인 것 같습니다. 너무 로맨틱하여 현실적인 부분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역시 장가 못간 이유의 하나라고 할까요..^^
 

하지만 처녀동무들, 절대 그 서울 아가씨를 따라 배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시대가 다릅니다. 로맨스를 찾아 북경 교외에 가서 아무 집이나 들어가 하루 밤을 잘못 자면 신세를 망칩니다.

 

잘못하다간 3000원에 산동(山東, 경제적으로 비교적 낙후함) 편벽한 시골의 늙은 홀아비들에게 팔려갈 수도 있습니다.

 

진짜 낭만적이고 안전한 곳이 하나 있는데, 제가 안내해 드릴까요..^^
 

북경대학 미명호의 호심에 작은 섬이 하나 있는데, 섬 위에는 썩은 버드나무가 한 그루 외롭게 서있습니다. 썩은 버드나무 위를 바라보시면 인테리어를 안한 초라한 둥지가 하나 보일 겁니다.

 

바로 까마귀님의 둥지입니다..^^ 

 

어서 오세요..^^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