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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남북문학인협회 결성식을 마친 다음 날인 지난 달 31일 금강산 삼일포 산책로에서 손을 마주 잡은 남북 시인들. 왼쪽부터 북측 김영남, 남측 서정원, 북측 김철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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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남북한 문인들이 금강산에 모여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다. 이번 행사는, 분단과 그로 인해 야기된 여러 현실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문학으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합의 길을 모색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다음은 이 행사에 다녀온 서정원 시인의 이야기를 옮긴 것이다.
10월 29일 오후 3시 40분. 일행은 강원도 고성군 남측 출입소에 휴대전화를 비롯한 개인 물품들을 맡겼다. 이어 차를 바꾸어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북측 출입소 앞에서 신원 조회가 있었다. 내 사진과 얼굴을 대조하던 북한 군인은 나를 딴 사람이라고 의심했다. 사진과 달리 흰 머리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업무가 바빠 5년 전에 찍은 사진을 발송했었는데 이런 결과를 낳고 말았다. 그 사유를 설명하며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였지만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일행의 뒤에 홀로 처지고 말았다. 다시 남쪽으로 돌아가야 하나? 우두망찰 서 있는데 "서정원 선생님, 흰 머리 염색할 생각은 없습네까?" 농담하며 그 자가 내 방북증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무사히 북쪽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맑았다. 왼편으로 빈 들판이 펼쳐지고 오른쪽으로 민둥산과 동해가 보였다. 그러나 남쪽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가 제한되고 곳곳에 경비병이 배치되어 있어 조금 삭막했다. 현대아산의 여성 안내원이 금강산 관광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특히 북쪽 사람을 대할 때 달고 있는 배지에 손가락질하거나 비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일행은 다소 굳은 표정들이었다. 오후 4시 10분쯤에 금강산호텔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여성 안내원이 남측 자전거와 북측 자전거의 차이점을 알아 오라는 재미있는 숙제를 내 주었다.
정해진 방에 짐을 풀고 온정각 주변을 산책했다.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답답했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라운지로 올라갔다. 그 곳의 주점에서 맥주를 마시며 '반갑습니다', '휘파람' 등의 북한 가요를 불렀다. 남한 가요는 입력되어 있지 않아 부를 수 없었다. 북한의 여성 안내원들이 상냥하게 술심부름을 해 주었다. 그 중의 한 명에게 북한 자전거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번호판이 부착되어 있다고 했다. 북한은 마을 간의 이동 거리가 멀어 자전거가 필수품이라고 덧붙였다. 나는 숙제를 해결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팁을 10달러 주었다.
이튿날 오전에 신계사 터를 둘러보고 옥류동을 거쳐 구룡폭포를 구경했다.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물이 이가 시린 옥빛이었다. 단풍은 볼 수 없었지만, 말로만 듣던 외금강의 비경을 부분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담배를 자유롭게 피울 수 없어 불편했다.
오후 2시 40분부터 호텔에서 공식적인 행사가 열렸다. 결성식과 '문학의 밤', 그리고 축하공연 및 만찬이 밤 9시 30분까지 이어졌다. 북측 문인들은 자신의 신변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꺼렸다. 나는 만찬 자리에서 북한산 가시오가피주를 8잔이나 마시고 대취했다.
사흘째 되는 날은 남북한의 작가들이 삼일포 주변을 걸으며 대화하기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버스를 타고 삼일포로 이동할 때 자전거를 탄 북한 주민들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일하던 주민들은 일행의 버스가 지나가자 낟가리 뒤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철둑 위를 걷던 사람들도 등을 돌려 앉아버리곤 했다. 아직도 낯설게 대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념의 간극이 느껴졌다. 나는 굴러가는 자전거의 두 바퀴처럼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나타난 삼일포가 마음을 시원하게 열어 주었다. 나는 북측의 김영남, 김철 두 시인과 정담을 나누며 천천히 물가를 걸었다. 시인·cassch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