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둥지(연재9)
아버지네 집도 원래부터 못 사는 건 아니었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살길을 찾아 홀홀 단신 두만강을 건너와 만주 땅에 자리를 잡아놓고, 할머니가 돌이 된 어린 아버지를 업고 할아버지를 찾아왔는데, 할머니가 와보니 할아버지는 땅도 몇 마지기 가지고 있었고, 밭갈이 황 소도 두 마리나 있었답니다.
그 정도면 중농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언젠가 우연히 독립투사들과 소주 몇 잔을 나눈 것이 루가 되어, 그만 왜놈들에게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온갖 시달림을 다 받고 일년 뒤 풀려나더니, 이번에는 안 놀던 도박 바람이 나 가지고 하루 밤 새에 땅도 황소 두 마리도 모두 잃었답니다.
결과야 뻔하지요 . 내가 왜 빈농이 되었을까..^^
그나마 부지런한 할머니가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공화국의 위대한 수령님
20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교감이란 대단한 벼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어머니가 고중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있는 학교로 선생으로 부임되어왔습니다 .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연애 사를 들춰 보니, 생각밖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먼저 따른 거였습니다. 아버지가 예술에 재간이 있어 손풍금도 잘 타고 노래도 잘 했는데, 역시 예술에 흥미가 많았던 어머니가 틈을 타서 배우러 다녔답니다. 덕분에 우리 3남매는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압니다.
그때, 아버지의 별명이 '메뚜기'였는데, 어머니가 지어준 거랍니다.
아버지는 지금과 달리 젊었을 때는 아주 약했었는데, 달리기 할 때 껑충껑충~ 하며 달리는 걸 보면 딱 메뚜기 같았답니다. 그래선지 우리 집 애들은 다른 거는 못하지만 달리기 하나만은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셋이 뛰면 3등하고, 넷이 뛰면 4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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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곡절이 많은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집을 뛰쳐나와 아버지에게 시집을 같습니다만, 저에게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아버지가 잘 생기고 멋지고 재간이 있는 건 알지만, 그리고 그 시대의 청년들이 과감히 집을 뛰쳐나오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 어머니는 왜 아버지에게 시집 갔을까.
세월은 흘러 흘러서 까마귀도 이젠 장가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일본 술집에서 만난 화장을 진하게 한 요염한 그녀를 생각하니, 어머니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문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맏며느리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미인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따르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선택했을까요?
나머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