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둥지(연재9)

2006-12-13     김석

아버지네 집도 원래부터 못 사는 건 아니었나 봅니다.
 

할아버지가 살길을 찾아 홀홀 단신 두만강을 건너와 만주 땅에 자리를 잡아놓고, 할머니가 돌이 된 어린 아버지를 업고 할아버지를 찾아왔는데, 할머니가 와보니 할아버지는 땅도 몇 마지기 가지고 있었고, 밭갈이 황 소도 두 마리나 있었답니다.

 

그 정도면 중농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언젠가 우연히 독립투사들과 소주 몇 잔을 나눈 것이 루가 되어, 그만 왜놈들에게 잡혀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온갖 시달림을 다 받고 일년 뒤 풀려나더니, 이번에는 안 놀던 도박 바람이 나 가지고 하루 밤 새에 땅도 황소 두 마리도 모두 잃었답니다.

결과야 뻔하지요 . 내가 왜 빈농이 되었을까..^^

 

그나마 부지런한 할머니가 있었으니 다행입니다. 할머니는 공화국의 위대한 수령님일성주석님과 동갑이었는데, 악착하게 벌어서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한 덕분에 아버지는 대학을 나왔고,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월급쟁이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20세의 한창 젊은 나이에 교감이란 대단한 벼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돼, 어머니가 고중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있는 학교로 선생으로 부임되어왔습니다 .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겨우 17세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연애 사를 들춰 보니, 생각밖에 어머니가 아버지를 먼저 따른 거였습니다. 아버지가 예술에 재간이 있어 손풍금도 잘 타고 노래도 잘 했는데, 역시 예술에 흥미가 많았던 어머니가 틈을 타서 배우러 다녔답니다. 덕분에 우리 3남매는 모두 악기를 다룰 줄 압니다.
 

그때, 아버지의 별명이 '메뚜기'였는데, 어머니가 지어준 거랍니다.

 

아버지는 지금과 달리 젊었을 때는 아주 약했었는데, 달리기 할 때 껑충껑충~ 하며 달리는 걸 보면 딱 메뚜기 같았답니다. 그래선지 우리 집 애들은 다른 거는 못하지만 달리기 하나만은 얼마나 잘 하는지 모릅니다..^^

 

셋이 뛰면 3등하고, 넷이 뛰면 4등입니다.

*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곡절이 많은 법입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는 모든 장애를 물리치고 집을 뛰쳐나와 아버지에게 시집을 같습니다만, 저에게는 궁금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아버지가 잘 생기고 멋지고 재간이 있는 건 알지만, 그리고 그 시대의 청년들이 과감히 집을 뛰쳐나오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해도, 그것 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 어머니는 왜 아버지에게 시집 갔을까.

세월은 흘러 흘러서 까마귀도 이젠 장가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언젠가 일본 술집에서 만난 화장을 진하게 한 요염한 그녀를 생각하니, 어머니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문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맏며느리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젊은 시절 미인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따르는 남자들도 적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선택했을까요?

 

나머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