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연꽃의 뿌리는 아픔이 숭숭하다

글/손예경

2020-03-03     [편집]본지 기자

[서울=동북아신문]벼락같이 날아드는 옷을 벗은 낮말들은 내몸 여기저기에 퍼렇게 멍자국을 안긴다. 피할 새도 방어할 틈도 없이 그것들은 느닷 없고 막무가내다. 나는 침묵의 끈에 가까스로 매달려 속수무책으로 허우적 거린다.

나의 고통이 즐거우면 웃어라! 맘껏 경축하라! 보라,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있다! 낮에는 일이 손에서 도망 다니고 한밤엔 마귀 같은 실면이 베갯잇을 물고 늘어진다.사람들은 외면하고 짐승들은 기웃거린다. 밥을 씹으면 모래 알이고 물을 삼키면 부피가 가득한 기포 덩어리다.

싫다! 더이상 나 다움을 잃기 싫다. 내가 무슨 꼬라지로 구겨지든 미친 허세군은 만족을 모를것이다. 나에게 지혜를 줄 누구 없는가? 머리맡에 놓인 성인의 경전에는 답이 있을까?

믹스커피 세 봉지를 잔에 털어 넣고 기포가 오글오글 달치는 물을 쏟아 붓는다. 가늘고 긴 쇠스푼을 골라 백팔회/일초로 회전을 시켜 날이 퍼렇게 선 채 혈관속을 질주하는 분노를 달래야만 할것 같다.그리고 차분하기를 거부하는 혀끝도 아마 다독여야만 할 것이다.

아파트 창문을 열고 내려다 보면 만여평 되는 도심 속 푸른 송림이 이쪽 끝에서 부터 시야를 확 터치며 넓다랗게 펼쳐져 있다. 보기에는 그냥 빼곡히 들어선 소나무 밭이지만 사실 공원이다. 안에는 인공 폭포도 있고 작은 연못도 있고 아이들의 놀이터도 있는데 나는 그것들을 품고 구불구불 뻗은 오솔길로 산책하기를 즐긴다. 그런데 산책을 즐기다 보면 길을 턱하니 가로막고 비스듬히 누워서 자란(아파트 창문으로 볼때는 전혀 티가 나지 않는) 나무 한그루와 맞닥드리게 된다.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엎드려 지나기도 여의치 않고 가로타고 넘어가기도 불편하다. 수림은 전 부터 있었고 블록으로 만든 길은 근래에 생긴것이니 아마도 길이 그 나무를 지나며 깔린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공원을 설계한 기사는 왜 하필 비뚜렁 하게 자란 나무가 막고 서있는 거기로 길을 냈을가? 조금 옆으로 돌아서 내거나 아니면 삐딱하게 자란 그 상처 많은 나무를 아예 없애 버릴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쭉 그렇게 못 마땅해 했었다. 길을 막는 나무는 없어야 맞지 않느냐고... 헌데 그 어이없는 일 때문에 마음 앓이를 몹시 하고 난 후의 어느날 갑자기 깨닳음 같은 것을 얻게 되였다. 혹시 에돌아 가는 법을 가르치려는것이 아니였을가?!

처음 상처를 받을 때는 그래도 내가 혹시 모를 실수가 있는 줄 알았다. 도의적으로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이 달갑지 않게 받아 드릴수도 있겠다는 조심성에서 였다. 허나 재차 가격을 당했 을 때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절대 고슴도치의 친구놀음이 아니였다. 아무리 시기 질투라 하여도 이건 도를 벗어났다. 대범한 척 소탈한 척 하면서 남의 약점은 집요하게 파고 들어 마구 으깨 놓는다. 거르지 않고 내뱉는 가시 돋친 말들에 한없이 초라해지고 볼품없이 구겨지는 자신이  견딜수 없다. 조심하고 신중 했음에도 이렇게 사정없이 부딛치는건 애초에 가까이 하지 말아야 될 상대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부딛쳤을 때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따져서 흑백을 갈랐더라면? 하는 후회도 든다. 딱히 사과할 필요성을 못 느꼈음에도 똑 같이 무례 함을 범할수 없었기에 한발 물러 섰던 것은 사실이다. 헌데 자중은 커녕 더욱 기고만장하여 얼토당토 않는 자기만의 주장을 들고 나와 공공연히 흘뜯고 비방하며 그것으로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하려 든다. ‘생트집’이라는 막돼먹은 자에게만 어울리는 단어가 꼭 들어 맞는 경우다. 자기는 본래 부터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기에 그것을 자기만의 개성이라고 떠들면서 자기가 무슨 특별한 자격이라도 있는 양 자기의 망상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들을 무차별 적으로 공격해서 기어이 굴복시키려 든다. 한가지 계략이 실패하면 또다시 다른 음모를 꾸며 땐다.

지긋지긋하다.
이런 것들이 혹여 무지에서 일어난 폐단일가?'봄에 나서 여름에 죽는 매미'였단 말인가? 잘 잘못을 따지려는 내가 그릇된것인가?

묵빈대처라는 말이 있긴 하다. 침묵으로써 물리 치라는 뜻이다.그럼 스스로 사라질 때가 온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마음을 옥죄면서 언제 까지고 눈귀와 입까지 닫고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것일가?
“나 요즘 많이 힘들어...”
여유롭게 생각할 줄 아는 친구 한테 도움을 청했다. 아닌 가을에 서리 맞아 후줄근 해 있는 나에게 친구가 손을 잡아주었다. 어려움 모르고 자라서 심신이 허약하기에 힘을 키우라고 시련을 주는거란다.다 전생의 업보이기에 갚을 때까지 아파야 한단다. 생소하긴 하지만 거기라도  기대고 싶어 진다.허나 수련이란 것이 말은 쉽지만 진심으로 받아 들이고 따른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처방속의 갖가지 약초들은 온전히 자기 힘만을 이용해서 그 절박한 씨앗을 청정하게 품고 지극정성으로 가꾸고 손끝 발끝이 닳아 헤여지도록 마음을 다하여 거두어 들인 것들이라야만 유효한 것이다. 마음이 다쳐도 보복심을 키우면 안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논쟁은 피해야 하며 헛소문일 지언정 해명하려 들지도 말란다. 한때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 동안의 근심을 면할수도 있고 한가지 일을 겪지 안으면 한가지 지혜가 자라지 못하며 모든 일에 관대해야만 복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쯤 하면 ‘나무 관세음보살’이 저절로 새어 나온다.

강한 사람은 자기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공부하자! 마음의 수련은 늘 필요하다.그리고 선인들의 가르침에는 절대로 간과할수 없는 지혜가 깃들어 있는 것이다. 지혜로 무장하여 슬기롭게 난국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연꽃은 밝게 웃고 있지만 그 미소속에는 처연한 빛이 어려있다. 아픔을 낭자하게 널어놓는 것이 아니라 뿌리 속의 비운 자리에 차곡차곡 간직하기 때문이리라. 아린 꽃잎이 한장씩 질 때마다 연자속에서 옹골차게 씨앗이 영글어 가는거겠지...처연한 꽃잎과 아픔 숭숭한 뿌리와 그럼에도 충실하게 영글어 가는 연실... 얼마 만큼 참고 견디면 이처럼 고통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차분하게 완성할수 있는 것을가?

총명한 사람은 남을 이기지만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에돌아 가자! 이런것도 어쩌면 인생 경험이리라. 경험이야말로 삶의 가장 큰 스승이라지 안는가. 후반생을 여유롭고 보람있게 사는데 좋은 자양분으로 남겠지... 잠간 스친 인연이 아까워 안개 속을 휘젓듯 허우적 거릴 필요 없이 다음 기로에선 차분히 안녕을 고하리라...그리고 새로운 선택을 할것이다. 길지도 않는 인생 긍정적인 인연을 만나 멋진 풍경을 즐기며 보다 활기찬 삶으로 살아야 하지 안겠는가.

이런 것들이 다 내가 미처 몰랐던 진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