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그거 있잖아요"
얼마 전 서울에서 조선족의 사무를 처리해주는 민간단체에 갈 기회가 있었다. 40대 초반 아주머니가 앉아 담당 한국인에게 신상얘기 하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였다.
요지는 이러하다. 남편과 자식을 두고 한국에 왔고, 지금 현재 한국남자가 새로 생겼단다. 그런데 남편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아 문제였다. 그래서 이혼을 아직까지는 못했고, 자식은 데려오고 싶고 착잡한 심정이라고 한다. 남편이 위협공갈을 계속 하다가도, 간혹 이혼수속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그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국제 통화할 때, 녹음까지 해두었다고 한다.
그 확실한 증거인 녹음기와 녹음테입을 그 민간단체 사무실에 그대로 당분간 보관해두고 나왔는데 그것을 찾으러 온 것이다. 담당 한국인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거 있잖아요...”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소리가 떨리더니 고달팠던 얘기가 끝없이 흘러나오고, 듣는 자도 감동할만한 분위기가 된다.
힘들게 중국에서 한국 왔는데, 외국인이니 중국 조선족이니 하는 차별시를 꼭 받아야 하는 서러움에 대해서 한국 토박이들은 어느 정도 아느냐의 문제로부터, 간혹 그래도 운이 좋아 착한 한국사람 만나서 잘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모순된 이야기, 그래서 그녀의 경우는 특별하지도 않다.
그러한 이야기를 듣는 자와 보는 자가 공감하여 “그래, 우리 잘살아야 되” 라는 정도의 분위기로 끝나버리고 나면 할 말이 따로 없다. 결국 가치관의 왜곡과 빈곤이다.
보편적 도덕부재, 사유부재 상태로 자신을 자리매김 해버리면 결국 했던 이야기를 수없이 반복하기만 한다. 그 이상의 가치를 보지 못하거나, 보지 않으려는 태도이다. 전에는 그렇게 사유하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훌륭했던 가치를 망각했을지도 모른다.
중국에서 한국에 오는 것이나, 그러다가 한국에 눌러앉아 아예 정착하는 것이나, 아니면 중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나 거기에 정답은 없다. 그러나 단순히 내 한 몸부터 잘 살고 보고자 할 때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러한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요...” 끊임없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구를 탓한다. 부부로서 인연을 맺었던 상대방에 대해서도 예외가 없다.
먼저 자신이 올바로 서야 할 것이다. 힘든 현실은 얼마든지 많다. 조선족 동포들은 보다 훌륭하게 살아보고자 만주로 건너갔고 지금은 다시 한국 땅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렇다고 하여 보다 훌륭한 가치들을 훼손시킬 수는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일한 생활을 위해 이혼을 한다는 자체에 문제가 있다. 물론 그녀가 이혼까지 생각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에 대해 솔직하면 외부세계에 모든 잘못을 부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혼을 하는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그거 있잖아요... 많이 힘들었어요... 다행히 지금 국적 취득하고자 하는데... 그러다가도 고향에 둔 자식 생각이 나고...”
이러한 사유와 정서에서 벗어나길 권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말에 정당성이 있는지도 한번쯤 둘러볼 필요가 있다. 떳떳해질 이유를 찾아내는 집요함, 근본을 지키는 소박함으로 “그거 있잖아요...” 정도를 대체시켜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그녀의, 그대의 멋있음이다.
한국생활에서 각자를 살찌우는 것, 이 또한 분명 좋은 일이다. 문제는, 떳떳하게 행하는가에 있다.
조선족의 해체나 응집을 거창하게 논하기에 앞서서 올바른 위치에 스스로를 정립시킬 때, 역동적인 집합의 힘이 어느 순간 핵의 위력처럼 번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조선족은 더 멋있어질 수 있다. 본분부터 지키는 것, 너무 사치한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거 있잖아요... 우리는 멋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