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흑장미
서가인
[서울=동북아신문] 장미꽃은 아름답다. 빨간 장미, 노란 장미, 흰 장미는 하나같이 아름답고 향기롭다. 꽃의 향기는 다가가지 않아도 멀리서도 그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그녀의 별명은 흑장미다. 누구도 흑 장미꽃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녀를 흑장미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그저 모두 그녀를 흑장미라고 부르니 부른다.
상해의 남경서로 끝에 가면 왼쪽으로 꽤 큰 이 층 건물이 보인다. 30년대에 지은 건물 이어서 얼핏 보면 좀 허술해 보인다. 그러나 길 건너편에서 천천히 뜯어보면 당시에는 엄청 호화롭고 웅장했을 흔적이 남아 있다.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은 층계를 두 번 밟고 올라가서 다섯 발자국 더 가야 문에 도달할 수 있다.
자단 나무로 제작한 문은 몇 십 년이 지났 어도 변함이 없다. 기름 칠을 하지 않았는데도 반드레하다. 양쪽으로 문이 열게 돼 있는데 동시에 두서너 사람이 들어오고 나갈 수 있다. 특별 제작한 유리는 오색 찬연하다. 29cm의 정방형 유리는 문 하나에 가로 두 개 세로 여덟 개가 자단 나무 사이에 꼭 끼여 있다. 문우로는 반 타원형의 유리가 오색찬란하다. 유럽풍으로 지은 건물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위풍당당 하다.
문 옆에는 모모 회관이라는 사각형의 작은 문패가 걸려 있다.
흑장미는 이곳에 출근한다.
그리 크지 않은 프런트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자와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총 지배인님 오늘도 일찍 나오십니다.” 남자 두 명이 일제히 경례를 하며 반긴다. 여자도 밝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숙인다. 흑장미는 답례를 하며 곧장 이 층 사무실로 향했다.
일 층에는 둥근 식탁에다 고급 소파를 겸비한 단칸방이 열한 개나 있다. 방마다 옛날 시구에서 따온 이름이 있다. 이곳은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방 하나는 항상 기동으로 비여 두는데 이것도 오후 다섯 시까지다. 하루에 저녁 한 끼만 장사를 한다.
이층은 작은 무도장이고, 둘레로 사람 둘 셋이 앉을 작은 방들이 몇 십 개 있다. 방마다 반쯤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낮 이어서 등불이 환하다. 서너 명의 청소 공들이 각기 떨어져서 열심히 청소하는 것이 보였다.
흑장미는 이 층 계단 오른쪽에 있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일 층 식당은 오후 여섯 시, 이 층은 저녁 일곱 시에 매일 문을 연다. 일 년 365일 무 휴식이다. 오늘은 사장의 친한 친구가 먼 동북에서 온다고 사장한테서 통보가 왔다. 기동 방을 써야 할 것 같다.
일 층과 이 층에 각각 매니저가 있지만 흑장미는 항상 두 시간 전에 출근한다. 이 층에는 무희가 30명 정도 된다. 절반 이상이 조선족이다. 일 층의 매니저는 똑똑해서 매일 문제없이 지나간다. 이 층 매니저는 조선족이다. 한어 발음이 좀 약해 웃길 때도 있지만 그런대로 문제가 발생하면 금방 해결하니 그런대로 마음에 들었다.
하루는 어디서 술을 잔뜩 먹고 취한, 조선족 남자 세 명이 들어왔다. 아직 여덟 시가 되지 않아 일 층은 끝나지 않은 때여서 소리소리 지르는 취객 때문에 직원들은 신경을 곤두세웠다. 몇 년이 가도 이런 일은 처음이다. 소식을 들은 흑장미는 뛰다시피 부랴부랴 일층으로 내려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정말이네. 여기 오면 조선족이 있다더니…, 하하하”
그중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 남자가 흑장미를 쳐다보며 지껄인다.
“여기 아가씨 있는가?”
“죄송한데 이곳은 아가씨는 없고 무희는 있습니다.”
“무슨 허튼수작이야……”
중년의 남자는 서슴지 않고 반말을 한다. 같이 온 두 남자는 무엇이 그리 웃어 운지 낄낄거린다.
취객을 밖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앞문으로 내보낸다는 것은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포하는 것과 같다. 흑장미는 프런트여 직원과 보안 몇 명과 함께 얼리고 떠밀어서 뒤 골목으로 문이 나 있는 빈방으로 그들을 겨우 데려갔다. 평시 직원들이 식사하고 휴식하는 곳이다. 그리고 여직원 한테 주방에 가서 실과 한 접시를 가져 다가 주라고 하였다. 보안 대장한테는 술이 좀 깨면 뒷문으로 내보내라고 하였다. 남경 서로를 지나가다 혹간 멋모르고 들어오는 여행객들도 있지만 프런트에 씌어 있는 가격표와 예약이 필수라는 표지를 보고는 모두 되돌아간다. 이 사람들은 혹시 모르고 들어왔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같은 동족이라는 마음에 잘 넘어갔으면 했다.
사장은 몹시 까다로웠다.
“너네 조선족 남자들은 왜 그러니?”
“글쎄요. 제가 보기에는 다 동방인 이어서 별 차별이 없는 거 같은데요.”
흑장미는 조용히 사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흑장미는 직업인으로서 일에 충실해야 하지만 가끔 이 층의 조선족 무희들이 무시를 당하지 않을까, 암탉이 병아리를 돌보듯 마음이 그곳으로 쏠린다. 흑장미는 똑똑하지만 마음이 너무 착해서 탈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내부 직원들 중에 꼭 첩자가 있다. 사장은 매일 흑장미한테서 회보를 듣지만 일거 일 투족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러나 한 달에 한 번씩 수익의 20%가 다음 달 초, 회계감사가 끝나면 꼭 통장으로 들어오니 그만하면 할 수 있다고 흑장미는 생각했다.
사장은 농담하는척하며 흑장미의 정곡을 찌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느 연말 회식 때 흑장미에게 모범 부녀자(3.8红旗手) 칭호를 주는 게 어떤 가고 농담 삼아 제의하였다. 무희들을 너무 싸고돈다는 내부 보고를 또 받은 모양이다.
이곳의 무희들은 수시로 바뀐다. 그래서 무희를 철로 만든 병영에 흐르는 병사<铁打的营盘, 流水的兵>라고들 한다. 어느 날 조선족 무희가 한 명 들어왔다. 이 층 매니저가 데리고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흑장미도 깜짝 놀랐다. 백옥 같은 피부에 아름다운 얼굴은 절세미인이 따로 없다. 그런데 성격까지 온화하고 부드러웠다. 때가 묻지 않은 처자였다고 생각했다. 나이는 스물한 살, 또한 전문대를 나왔다.
이곳의 무희는 보통 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 나온 아이는 별로 없었다. 흑장미는 이 아이가 너무 측은해 보였다. 그러나 내색을 할 수가 없다. 이 층 매니저는 좋아서 입이 함박만 해져 있었다. 이달도 며칠 안 남았는데 아직 계획 지표를 완성 못해 애타던 중 판매 실적을 올릴 공주가 나타난 것이다.
흑장미는 이 층 매니저를 먼저 내보내고 처자와 마주 앉았다. 부모는 한국에 돈 벌려 떠난 지가 십 년이 넘었는데 갑자기 교통사고 때문에 하루아침에 고아가 돼었다고 한다.
“그동안 누구하고 어디서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흑룡강 오상에서 살았습니다. 상해 대학에 갓 입학한 남동생이 있어요.”
흑장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동생 때문에 이곳에 왔어요.”그녀는 혼자 중얼거린다.
“동생이 어련히 알아서 공부할 텐데요.”
“네. 저도… 그러네요.”
흑장미는 앞뒤가 안 맞는 처자와의 담화를 끝내려던 중, 마침 이 층의 매니저가 와서 문을 두드린다. 빨리 데려가려고 조급한 모양이다. 지난달에도 예쁜 처자가 한 명 왔는데 면접을 본 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이 층 매니저는 흑장미가 돌려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보안 대장이 뒤를 따라 들어온다. "큰일 났습니다.”
직원 사무실에 있던 조선족 취객이 물의를 일으킨 모양이다. 프런트 여 직원이 실과를 들고 들어가니 손목을 덥석 잡으며 얼마면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여 직원은 깜짝 놀라 실과 접시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다음은 얼마를 주면 바지를 벗겠냐고 했다고 한다. 같이 들어왔던 남자 직원이 깜짝 놀라 뛰쳐나가 보안 대장에게 알렸다.
보안 대장은 부하들을 시켜 셋을 의자에 묶어 놓았다. 아무리 달래여도 고래고래 돼지 멱따는 소리를 연속해서 부르 짓는다. 그들은 급해서 입을 테이프로 봉해 버렸다.
어찌할 바를 몰라 보안 대장은 흑장미 앞에서 뒤통수만 긁는다. 흑장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 처리를 잘하였다고 칭찬하고 술이 깨면 돌려보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직원을 올려 보내라고 하였다. 여 직원은 처음 이런 일을 당했는지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흑장미는 한참이나 여직원을 다독였다. 흑장미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눈물은 걷 잡을 수 없이 두볼을 따라 흘러 내렸다.
동족이라는 점에서 흑장미는 형제들이 잘못을 저질은 것처럼 부끄러웠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몹시 부아가 났다. 그동안 이곳에 다녀간 조선족 손님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두 점잖았다. 식사하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좀 젊은 사람들은 이 층에 올라가 무희들과 춤을 추다가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면 모두 돌아갔다.
이번에 온 취객은 작당하고 온 것 같았다. 다음 날 오후 취객을 새벽 세시에 돌려보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것으로 일이 마무리 지은 줄 알았다. 며칠이 지난 오후 관할 파출소에서 경관 두 명이 찾아왔다. 취객이 고소하였다. 잘못은 저들이 해놓고 불법 구류라고 법에 고소하겠다고 난리라고 한다. 상세한 내용을 들은 경관은 돌아가서 상급에 회보한 후 다시 연계하겠다고 하였다.
며칠 후 파출소에 출두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흑장미는 일층 매니저와 같이 가까운 곳에 있는 파출소에 걸어서 갔다. 온다고 하던 세 사람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경관이 몇 번이고 연계하였으나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경관은 미안하다고 하면서 다시 시간을 내자고 하였다. 있었던 일은 깨끗이 처리하지 않으면 어느 땐가는 꼭 돌아온다. 아직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데 핸드폰 소리가 요란히 울린다. 꿈인지 생시인지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찾아서 들었다.
“총 지배인님, 큰일 났습니다.”
흑장미는 후닥닥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대문 유리가 몽땅 깨졌습니다. 열여섯 장이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다친 사람은 없나요.”
“네... 새벽에 누가 야구 방망이로 깼습니다. 신고했어요. 문앞에 던지고 간 야구 방망이는 파출소에서 가져갔습니다.”
다행히 유리만 깨지고 자단 나무로 만든 문은 끄떡없다고 한다.
흑장미는 이미 일어났으나 가봐야 기분만 더러워질 것 같아서 가지 않았다. 마침 당번이 보안 대장 이어서 이러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직감으로는 이 일이 취객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장에게 회보할 때는 범인을 조사 중에 있다고 하였다.
유리는 특별 제작 이어서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일층 매니저에게 전화하여 문 제작회사와 연계하라고 하였다. 기성 문들이 있을 테니 오후 다섯 시 전까지 설치하라고 하였다. 아무리 기성 문이라도 유리가 없는 문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은 후 흑장미는 파출소에 갔다. 어제 만났던 경관은 들어오는 흑장미를 보더니 반긴다. 늘씬한 키에 지적 미모를 가진 흑장미를 보고 말을 걸고 싶지 않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범인을 잡으려면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야 하니 저의 사장님께서 더 이상 심려를 끼치지 않겠답니다.”
“야구 방망이에 지문을 남겼을 수도 있는데 한번 해보시지요.”
경관은 아쉬운 듯 흑장미를 빤히 쳐다본다.
“저는 그러고 싶은데 사장님께서 그만두라니 할 수 없네요.”
흑장미는 사장 때문에 금방 잡을 수 있는 범인을 놓친 것처럼 경관과 말을 끝내고 파출소 문을 나왔다. 그는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았다.
회관에 도착하니 흉물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던 문은 안 보이고 프런트가 훤히 보이는 문틀만 보였다. 흉물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일 층 매니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장사에 차질이 생길까 주방장을 만나보고 일층 부 매니저도 만나서 준비 정황을 물었다. 이 층 사무실에 올라가니 사장은 언제 왔는지 소파에 앉아 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
흑 장미는 갔던 일을 요약해서 회보했다.
“문제를 잘 처리하였으면 돼었소. 파출소와 엮이면 오래가니 이쯤해서 잊어 버리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문 유리를 다시 제작하려면 돈 깨나 들겠군”
흑장미는 처음으로 사장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이 책임이 모두 자신 때문인 것 같았다.
일이 터지면 한꺼번에 이런 일 저런 일이 생긴다. 어제 저녁에는 조선족 무희 한 명이 손님께 화를 냈는데 이 층 매니저도 해결하지 못했다. 조선족은 다혈질 이어서 무슨 일에 부닥치면 참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사람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매일같이 각양각색의 손님들과 만난다. 일 이층의 매니저들이 잘 알아서 하니 흑장미는 웬만한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회관 이미지 때문에 대외적으로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
매일 오는 손님은 달라도 하는 일은 똑같은 연속이다. 하루도 긴장을 풀면 안 된다. 밤 열한 시가 가까워 오면 이 층도 마지막 손님을 내보낸다. 그때면 흑장미도 맥이 풀린다. 오늘도 무사히 지나갔구나…하고.
사장은 흑장미가 조선족들을 감싸고 돈다고 오다 가다 한마디씩 한다. “흑장미는 정부에 가서 부녀 사업을 하면 엄청 잘 할 거요.”
사장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농담을 걸어온다. 흑장미는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걔들은 여기에 돈 벌려온 거요. 걔들의 행동은 본인들이 책임져야 하오.”
사장은 흑장미가 무희들을 감싸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흑장미는 무희들과 회식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면서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준 것이 생각났다. 무희도 사람이다. 어쩌다가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는 모르지만 선택한 이유는 각자가 무슨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 후 어느 날 직원들과 같이 저녁을 먹는데 보안 대장과 마주 앉게 되였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보안 대장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흑장미에게 말을 걸어왔다. 세 취객 일을 아느냐고 물었다. 흑장미는 모른다는 눈빛으로 보안 대장을 바라보았다.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다가 별 큰 시비도 아닌데 한 명에 서너 명씩 붙어서 죽도록 때렸다고 한다. 그리고 셋을 병원 앞에 갔다 버렸는데 불구가 됐을 거라고 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사장을 건드렸다.
흑장미는 갑자기 숨이 막혀 왔다. 사장이 개입된 것을 단번에 느꼈다. 조폭이 따로 없다. 사장은 손해를 보고는 못 참는 성격이다.
일 년도 다 지나가는 12월에 흑장미는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사장은 어데 가서 이런 큰돈을 버느냐고 극구 흑장미를 말렸다.
흑장미는 이 직업이 싫어졌다. 이 도시를 멀리 떠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