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김규현] '옛 친구야' 외 8수
옛친구야
하루를 모아보니
시계 모시점 3백 65 터널
빨간 립스틱 같은 하루
누가 잘라버린 손톱길이 만큼 짧다
하루를 진맥해 보니
아침이란 심장처럼
툭툭 뛰고
점심이란 혈관인 듯
혈액순환 유유하고
저녁이란 아무도 흔들지
못하는 뼈다
이런 하루는 기쁨
어디 있으랴
하루 살더라도
아침 같은 심장
점심 같은 혈관
저녁 같은 뼈로 사는 순간
뉘엿뉘엿 사랑 싣고
별빛에 기댄 가을 밤 탄다
종추 녘 뭐니뭐니 해도
사랑도 먹고 모든 걸 먹어야하니깐
땅이 말 한다
지심이 보따리 속으로
들어갔다
풀어보니 헬수 없는 땅 입
여기에서 나무와 소곤소곤
저기에서 터밭과 조잘조잘
우리 아버지 푸른 포전
논고물
신바람 나게 이야기 주고받는 모습
파란장년
벼모판에 물 모자랄 때
어르신 목말라 물 많이
주십사요,
물 많을 때를 알고
적을 때를 알아 말 한다
황혼나무 사랑도 치정에
불해이오니 사려고 서두를
것 없소이
게간장 빼듯 탐문과 대답
역시 명수다
다른 건 다 버려도
무엇보다 자신을 버리면
일신을 그르칠 거고
앞길 막막 후회하리우
땅의 정겹고 화끈한
감천에 지성어린 말에
풀도 하늘도 고운 눈썹
드리우고 귀 연다
초입동 땅 입술에 묻는
바람 두 볼을 간지럽힌다
대여한 바람
하늘 끝에 살고 있는
바람을 대여했다
얼굴을 빌려 쓰고
하나뿐인 생을 팔고
새로운 것 사기 위해서다
밭이랑 같은 삶을 추격하어
한창을 넘어 선 나무 잎
소롯길에서라도 닭살 돋는
외로움과 지난날 아팠던
상처 잡아 단풍으로 태워
맨 서리도 발가벗고 등
받쳐주고
산새와 조잘대는 옥계수도
고운 눈섭 갈라주는
한폼 좋다
바람의 시작은
너의 얼굴이고
끝은 향긋한 미소다
홍시
해를 작은 낭보에 꿍져지고
해오름 나뭇가지에 터진다
동 켠을 버리고
아버지
담배연기만 콕 찔러 세웠다
너 때문에 밤잠 편히
쉬지 못하고
새벽을 밥처럼 저녁을
담배처럼 일 적셨다
어느 겨울에도
달처럼 둥글게 함께 가고
노을처럼 모두같이 붉게 타는 열광적 갈망의
미소를 한품에 안고
꽝 터질 듯한 니 얼굴 마주한다
한웅큼 아버지 담배연기
거기서 꾸물꾸물 타 오른다
턱 있다면 입 있다면
킁 소리 없이 익고 익는
홍시
아버지 임종이여서 보지 못한 세상이었다
가지마다 기껏 웃는 웃음보따리 풀어보자
가을은 울고있다
어미 거미 같은 가을
슬하에 도토리나무
그리고 사과와 배
잘 자란 벼 자식 있어
온 몸통 준다
늦나무잎에 빨간 피 줘
단풍 어리고
푸른 사과 향에는 익은
심장 대주고
들녘 핑크 빛 벼에는 머리 빻아 먹여
출렁이는 바다다
기대가 먼 기러기
다시 집 찾아 떠나는
쌍 깃 제자리 못 뜬다
오곡백화 향기에 취해
한생 약속 없건만
인생 돌다가 낙화처럼
두터운 삶을 담는 추풍
고막의 청정
벌거벗은 옹벽 아닌
피부질에 걸려 이슬 같은 것
생살에 소금뿌리 듯 아우성
진동하고
뼈 깎는 이 밤
예리한 검은 빛 고막 찔러
나무 귀다
밖에서는
강변 물고기 물난리에
파다닥 죽겠다고 생을 지키고
생존에 활발하던 나무 잎 가을바람 질질 끌려가는 여운
귀 열고 듣지 못하겠다
찬비 흩어지듯 굼뜨다
가끔은 찬공기 들락거릴 때
최악에 모면하는 귀
때론 모기소리도 놓지 않아 냉정하다
나를 신축하는 고개고개
마루에서
나를 꺼내어 남에게
빌려주는 것 아름다움
아닌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사랑이다
내일이 오늘아침 올 때까지
아니면 내가 떠날 때까지
무난하고 아늑하게
살았으면 한다
그런데 어두운 귀 고막 가지고는
자칫하면 사랑의 갈림길에서
날벼락 못면할 것 같고
여하 불문하고 비참한
운명도 올 것 같다
친구 좋은일 때면 길 건너가는 귀
이웃 슬픈일 때면 눈초리까지 담아 온기를
보태주는 귀
저 가을 외기러기 기댈 곳 없고
삶에 지쳐 사랑 지쳐
움추렸는데
그냥 마주보는 것보다
손뻗어 주는 것 좋을 것 같다
가장 빠르고 맑고 우아한 빚 속도로
빨간 심장
푸른 피 끓는 가슴깊이 귀 고막
수십억 점 있다면
가증스러운 청산에
나서는 것도 좋을상 싶다
하늘은 가을
마파람 일구며 높게 높게
들어서
낮게 드리운 얼굴은
언제였느냐 싶이
추가포옹
나의 어머니 일솜씨
꼼꼼하고 날렵했다
꽃손이다
꽃 낳고 꽃 살고
어머니의 꽃손 걷고 걸었다
오무려 쥐면 내일이 솔솔
봄바람처럼 들어오고
톡 튀어나면 꽃몽오리
우리자식 소꿉놀이 집
구석구석 엉망진창 웃으며
거둔 일 깔끔 눈시어
뒤 돌아보니
어머니 재치 손에 번개 맞아죽고
어머니가 죽어날 때에
손 뻗어
오늘과 행복 쥐려했고
오늘과 행복을 쥐기란
눈으로 구름 보기처럼
쉽지 않는 행상이었다
마치도 물위에 뜬 기름이어서
굴곡심해 세상 비뚤
비뚤가고 있는 것도 주어보려 시도했지만
어머니의 온 손보다
떠나가는 손 더 아름답다
정말이지 세상살이를 손끝에 달고 만복 불러
키우고 봄 미소처럼
무성했다
게으름을 팔아 복을 사고
꽃나이를 팔아 살림사고
억만 갑부보다 더 진한
심장 안에 살던 어머니의
재치손과 나뭇잎에 들뛰던 가슴
떠나가는 길 따랐기에
재치 손 그리고 식은 나무 잎
쌍 레루였다
가을 변곡점
가을이 푸른 물결 쫓고
추적하더니
황금물결 익고 노란 얼굴이다
행복과 사랑 낳아 주는
가을
사랑에 젖고 젖은 들국화
얼굴
젖은 빛 사랑주고
당신을 만나는 것
인연이라면 이마를 숙인
들국화처럼
해라는 벌레를 얼굴에
쌓고 쌓아 뜨는 달
비켜 서란다
해림 같은 속에서
나를 나른하게 얼근하게
잡는 너의 손
마음에 호선도가 끓어 번지고
두 눈에 정파 발산하어
나는 묶였다
요런
아름다운 시절을
장식하리
엄마 없는 빈자리에서
황혼 노을이
온 하늘을 들락거리더니
노을 빛 발발이 희였다
파뿌리를 연상케 해 눈시다
나의 어머니 아닐까
바람 잘 날 없는 시절
노을이 섬기는 징검다리
오가며
발에는 헌 고무신 의거하고
젖무덤에는 누더기 무명 저고리 걸치고
숙면에 쫓기고 모기 등에
피 받이 되면서도
벌거벗은 땀이 빨간 지렁이처럼 땅 파고 든다
온몸 꽃잎 한 잎 두 잎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오로지 어린것들 먹을 것
입을 것 에 자신의 생사도
모르는 옹녀
달뜨는 서천 울면서
안아 준다 어머니를
사랑의 에피소드라면 황혼노을 아닐까
구워진 길이 우두커니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