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대학생이 왜 한국어학부에 입학했을까?

-이상규 시인의 나눔에 대한 이야기

2006-11-28     이동렬

 이상규(서울)시인은 오래전부터 연변 조선족사회와 끈끈한 인연을 맺어 왔었다. 9년 간 중국조선족문화계를 도와주고 수많은 후원 사업을 왔음에도 시인은 언제나 겸손했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갖고 가서 그 곳의 순결과 지조, 존엄, 순결성 같은 것을 한 짐 씩 지고 오지요.”

아래는, 조선족이 아닌 한족학생의 이야기이다.

줄곧 조선족 학생을 후원해 오다가 2003년 5월에 이 시인은 형평성을 고려해 한족 학생의 후원도 맡게 되었다. 시인이 본 한족학생들의 가정 형편이 너무 딱했던 것이다. 듣고만 지날수 없는 사연에 이 시인은 갖고 갔던 나머지 돈마저 털어놓게 되었다. 그 중 한 학생의 이름은 초성뢰(焦成磊)였다. 연변2중(한족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머니는 병환으로 운신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그들 가족은 물론, 누구 하나 조선(한국)말 할 줄을 몰랐다. 그렇게 극히 일상으로 끝날 것 같은 행사가 있은 지 두 달 후에, 이 시인은 뜻밖에 한국으로 날아온 편지 한통을 받게 되었다. 초성뢰 학생이 보내온 것이었다. 물론 한문으로 보낸 것이기에 이 시인은 번역을 의탁해서야 읽을 수 있었다. 참고로, 시인의 수필집 '개개비 둥지 속의 새끼 뻐꾸기'에 수록된 원문을 간추려 싣는다.

  

   존경하는 이사장님:

   

  안녕하세요? 건강은 어떠신지요? 하시는 일은 바쁘신지요? 제가 가장 힘든 때 저를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공부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 주셔서 저는 정말 사장님께 감격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성적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이 성적은 제가 목표하는 바와 아직 너무 먼 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뒤떨어진 과목을 보충할 생각입니다. 저는 제가 꼭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사장님의 기대를 절대로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 외에 저의 마(馬) 이모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이모 역시 저의 공부와 생활을 매우 관심해 주십니다. 늘 저에게 이사장님의 열심히 일하시고 공부하는 정신과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하시는 고상한 마음씨를 얘기해 주시곤 합니다.

 

  사장님이 주신 1500원은 이미 받았습니다. 이 돈은 저의 엄마와 아빠의 가장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감동하여 눈물을 글썽이셨고, 저에게 공부를 더 열심히 하여 이사장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엄마와 아빠도 잘 계십니다. 부모님들은 비록 매일 힘드시고 수입도 적지만 더욱 열심히 일하셔서 빨리 가정 형편이 나아지게 하여 이사장님의 부담을 감소시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현재 시간만 있으면 한국어를 배웁니다. 빨리 한국어를 배워서 이사장님과 한국어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습니다.

 

  이사장님, 사장님은 제가 가장 힘들 때 저를 도와주셨고, 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저의 학교생활이 위기에서 전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저는 이 도움을 소중히 여기고 더욱 노력하여 품성과 성적이 모두 우수하고 훌륭한 학생이 되고자 합니다.

 

              경례를 드립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은 학생  焦成磊

                2003년 7월 27일


   

다음은 초성뢰 학생이 두 번째 보낸 편지(부분 삭제)이다.  


존경하는 이사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이사장님을 뵌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라는 것이 흘러갔군요. 사장님의 모든 사항에 대해 궁금하군요. 신체는 건강하신지요. 하시는 일들은 모두 순조로우신지요.

 

 날씨가 추워져 어느덧 겨울이 찾아 왔군요. 저는 아침 5시에 일어나면 밤 8시에 잡니다.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때에만 잠간 휴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것이 헛수고는 아님을 확신합니다. 오늘날의 고달픔은 내일의 행복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라는 신념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생 동안 기회라고는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이 들어집니다. 기회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것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공부할 수 있는 시간들을 더없이 아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사장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되겠지요. 저를 꼭 믿어 주세요.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선 후 우리는 반을 문과 반과 이과 반으로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과 반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학생들의 추천으로 단 지부 (중국공산당청년단) 단지부의 선전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전주의 우수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에서 반급의 간부로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저는 더 없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번의 기회를 자신을 더욱 엄격히 단속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모범을 보일 수 있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사장님, 사장님의 풍부한 인생 경험을 저에게 전수해 주십시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께서 지난번에 연길에 오셨을 때 저희들에게 기증하신 돈은 어머님께서 모두 은행에 저축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이 돈을 제가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 쓰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장님을 알게 된 이후로부터 어머님의 병세는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어머님은 시간이 나는 대로 나가서 돈벌이를 하곤 합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 어머님은 이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도 날마다 일 다니시고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늘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사장님께서는 저희들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정신상에도 많은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손으로 열심히 일하여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 나갈 것을 다짐하곤 하십니다. 힘이 들 때마다 사장님을 그리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미래를 생각하곤 한답니다.

 

  어머님은 사장님이 다음 기회에 연길에 오시면 꼭 집으로 한번 모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사장님, 우리는 비록 민족도 다르지만 사장님의 경제적 정신적 배려로 인해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얻었고, 우리는 밝은 미래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 편지를 빌어 저는 진심으로 사장님께 “할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부르는 “할아버지” - 받아 주십시오.

 

  그리고 할아버지,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군요. 메리크리스마스!


                                -초성뢰 올림


물론 위의 편지도 한문으로 쓴 것이다. 두 편지에는 초성뢰 학생이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 기간의 학습과 생활, 심리변화, 그들 가족 삶의 정경이 생생히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감사한 것은 오히려 이 시인이었다. 어려운 사정 보기가 딱해 자그마한 도움 주었을 뿐이었는데 저토록 감동하다니?

 

   언젠가 이 시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밥통에서 한술 밥을 떠내 주는 것은 선심을 갖고 동냥 주는 것으로 볼 수 있자만, 한 공기 밥에서 절반을 갈라 주는 것은 진심을 나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선심을 베푸는 따위는 안 할 겁니다. 서로 조건 없이 진정한 마음을 나누고 싶고,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이 시인은, 나눔의 진정을 초성뢰 학생이 깨닫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초성뢰 학생의 인생관뿐만 아니라 그이들 가족 삶의 기반을 바꿔놓고 있었다. 생활에 신심을 갖고 온 가족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었다.

그동안 이 시인의 '나눔'은 줄곧 이어졌었다.


올해, '연변작가협회창립 50돌' 기념행사에 초대되어 갔다가 이 시인은 초성뢰 학생의 세 번째 편지를 받고 깜작 놀라게 되었다. 한문이 아닌, 한글로 씌어진 것이었다! 글 솜씨가 조금 서툴러도 인정이 물씬 풍기는 글이었다.  


존경하는 리사장님:


안녕하세요. 요즘 잘 지내십니까? 사업은 어떻습니까? 가족은 모두 무사하세요?

오래 동안 사장님께 편지를 쓰지 못했네요. 며칠이 안 되면 한가위입니다. 이 명절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명절입니다. 하여 저는 사장님이 더욱 보고 싶어집니다.

 

고중 3년 동안 사장님의 관심과 방조 하에 저는 작년에 원만히 대학에 붙었습니다. 저는 장춘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웁니다. 1학년 생활은 끝났습니다. 일 년 간의 학습을 통해 저는 많이 성숙하여졌어요. 지금 학교에서 반장직무를 담임하고 학교 교내 방송지도도 맡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은 모두 사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장님께서 저에 대한 정신상의 고무와 경제상의 지지는 매우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저는 언제나 사장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꼭 당신의 은정을 학습의 동력으로 삼고 우수한 성적으로 당신에게 보담(보답)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이번 국경절 휴식 기간에 집에 돌아가 마선생님께도 이사장님이 저를 매우 관심한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사장님을 더욱 생각하게 됩니다.

개학한 후 저는 영어4급 시험을 신청하였습니다. 사장님 시름을 놓으세요. 저는 더욱더 노력을 하여 우수한 학습 성적으로 대학학업을 완성하겠어요.

 

끝으로 사장님께서 만수무강하기를 축원합니다.

한가위 즐겁게 보내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필을 놓겠습니다.

                                               焦成磊  올림  

                                                     2006.10.2

                                          

아, 초성뢰 학생이 장춘대학에 가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지 않는가! 한글이 비록 아직까지는 미끈하지 못해도 학생의 마음과 혼이 깃들어 있음을 이 시인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시인이 놀란 것은 그 일만 아니었다. 행사기간에 초성뢰의 어머니가 찾아왔었는데, 병색 완연하던 그녀의 얼굴이 이제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시인의 손을 잡은 여인의 손은 떨려났었다.간신히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세상에?…순수한, 한국말을 하다니? 예전에는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도, 한마디 할줄도 모르던 여인이었는데?…알고 보니 그녀는 이 시인과 대화하고 한국이란 나라를 알기 위해 4년 동안 꼬박 한국 TV를 보면서 한국 말을 배웠다고 한다.

 

나눔은 이렇듯 정으로 통하고, 정은 그토록 끈끈한 인연을 맺어주고, 그렇듯 좋은 인연은 다시 인생 전체를 바꾸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작게 베푸는 은혜에도 감사해하고 힘을 내서 사람냄새 나는 세상 만들어갈 줄 아는 민족이었다!

 

이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에게 감사해 하는 것보다 사회에 감사하고, 그 것이 힘이 되어 훌륭한 인재로 자라서 장차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초성뢰와 그의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 시인과 얽힌 자잔한 스토리 같지만 누구나 듣고 깊이 감동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0월에 있은 연변행사를 마치고 귀국한 이 시인은 초성뢰학생네 가족에 감동되어 위안(인민폐) 1만1천여 원을 그들에게 부쳐주면서 한국에 올 수 있으면 그 돈으로 비행기표를 사고, 아니면 애 학자금에 보태 쓰라고 당부하였다.   

   

오늘도 이상규 시인은, '나눔의 세계'에서 우리의 세계에서 고갈된 인정의 샘을 찾아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고 있다.

 

 이동렬 편집국장

   

               <나눔의 세계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