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반도의 핵 이야기
조선반도, 중국, 미국을 중심으로
북핵문제는 몇 단계로 가름한다. 먼저는 북에 대한 이해를 선행한다. 그 다음으로는 핵에 대한 고찰이다. 그러고 나서 북핵을 마저 살펴본다.
북의 기본상황은 체제유지이다. 바꿔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투쟁이다. 선군정치가 강조되고, 핵능력 확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생존은 범주를 좁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백성은 볼모로 잡혔다. 소수의 위정자가 다수의 민초를 전면에 내세워 체제지탱에 전념한다. 결국은 소수의 생존이 다수의 생존파괴를 대가로 요구하는 구조이다. 민주나 법적 구속력은 자국 내 인권을 근간으로 한 것이 아니다. 전제정치는 “조선민주주의공화국式 사회주의”라는 특정 개념으로 표상된다. 슬로건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본질적 측면에서 그러하다는 의미다.
북의 뚜렷한 적은 미국으로 표방된다. 부시정부는 “악의 축”으로 북을 비난하고, 북은 “최악의 폭력국가"로 미국을 지목한다. 6.25이후 지금까지 정전협정이 맺어지지 않은 자체가 복합적 주변상황과 내부적 현실에 의해 좌우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무력적 힘의 분출, 즉 전쟁을 통해 對 소련, 對 중국 위협 제어 완충지대를 세우겠다는 의도와, 전쟁 중 중국의 개입이 있었던 역설적 상황이었다. 중국은 6.25로 말미암아 대만 수복도 뒤로 잠시 접었다. 급박한 그때 상황이 중국입장에서의 조선반도 전략적 가치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북미 서로의 대의명분은 대략 이러하다. 북의 기본논리는 통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사회주의, 통일당위성으로서의 민족 대통합이다. 미국의 대외 천명 기본논리는 민주화의 세계 범주 내에서의 수출과 인권강화이다.한 꺼풀 벗겨보면 사뭇 다른 내용물이다. 북은 소수가 살기위해 모든 것을 활용한다. 세습체제도 그대로 적용하고, 이데올로기로서의 “우리식”도 더없이 강조된다. 국가적 개념으로서 사회주의이고, 민족적 개념으로서 통일론이다. 그 전부를 “총 끝에서 정권이 나온다”는 한마디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있다.
치명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민중을 위한 정권이 아니라 집권자가 백성을 볼모로 한 정권이라는 데서 모든 오류가 비롯된다. 그래서 제1원리로서의 정권보장 수요에 의해 민족통일 주장이나 자주성 확보 논조 등등이 모두 변조, 왜곡되어 애매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좀 다른 양상이다. 자국 이익의 극대화가 그 목적이다. 그 어떤 국가나 자국이익 우선을 최우선 순위에 놓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의 그것은 좀 특이하다. 세계적 범주 내에서의 개입을 정당화할만한 논리를 적극 개발한다.
치명적으로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자신이 진리라는 착각이다. 자국이익 극대화에 기점을 두고, 이를 빙자한 민주화와 인권을 들먹인다. 그 이상은 없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이 자신의 이익영토와 한참 떨어진 활용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고, 제 강대국 저지선으로의 역할로 충분하다고 전략적으로 판단한다.
이러한 미국의 판단에 대해 북 역시 충분히 감지하고 있다. 북의 자주적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요체를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의 자주성이 아무리 강조되어도, 백성들의 기본 생존 자체마저 보장하지 못한데 대한 책임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핵은 소수 강대국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1967년 이후, 그 전까지 미리 핵을 보유한 특정 국가들은 그 이후의 후발주자들에게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핵 비확산조약”이다. 이것만큼 역설적인 논리도 따로 없다. 67년이 그 어떤 척도가 될 수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IAEA의 성명이 UN의 틀을 빙자하여 생산되고 확산되고 정당화된다. 어쩔 수 없이 힘의 논리다.미국 때문에 옛 소련도 개발하고, 중국도 개발하고, 좀 지나 프랑스나 영국도 개발하고, 인도와 파키스탄도 개발했다고 한다. 핵연쇄반응과 똑같은 패턴으로 국가 대 국가의 범주 내에서 핵 억지력 효용성이 부각되면서 지구를 수백번 잘게 부셔낼 만큼 충분히도 핵이 깔렸다. 북도 이제 개발했다. 그 전에 이스라엘 역시 개발은 완료하고 애매하게 잠자코 있는듯하다. 아주 복잡하고 미묘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핵을 개발했던 국가 중, 핵을 “검증 가능하고도 완전하게” 폐기한 선례가 없다는 점이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고 파국이 수없이 일어나도 핵을 보유했던 자가 핵을 버리지는 않는다.
북핵을 논할 차례인 듯 싶다. 그 北이 그 核을 보유하면서 北核사태가 되었다. 지정학적으로 북은 미국이 선뜻 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결정으로 남아있다. 6.25의 전개양상과 똑같은 맥락으로 지금도 전쟁을 위한 작동원리가 적용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유엔군이 개입했고, 중국이 개입했고, 그러다가 남과 북이 갈라져있는 구체적 현재 상황을 통시적으로 조망하면서 북핵을 바라보는 슬기쯤은 가져야 할 것이다. 집안싸움에 동네 구경꾼들이 들어와 왈가불가한 꼴이 된 것이다. 할 일없이 개입한 것이 아니라 다들 자국이익에 충실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반도에 모여들었다. 그만큼 조선반도는 力學적으로 빈약한 지역이었다.
힘의 균형이 깨어진 지대에는 언제나 다른 세력들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균형의 회복으로 가야 원인제공의 근원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힘을 길러야한다. 힘을 기르는 주체로서의 규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정체성으로서의 국가의 논리가 우위에 있기 전에 통합성으로서의 민족을 바라보는 당위를 먼저 논할 필요는 없다.
역사를 근거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000년을 같이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누구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이쯤은 분명하게 알고 있다. 50년 분단은 정말로 별 것 아닌 세월이다. 조선반도가 어쩌다 “불 난 집”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도둑이 드는 것”이라도 막아야 하는 것, “절은 타서 없어져도 터는 남아”있음으로 재건이 필요하다. 세우겠다는 의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
그래서 남이나 북이나 중요하다. 북핵은 말 그대로 버튼을 누르는 자에 의해 좌우되는 물리적 장치일 뿐이다. 손끝이 버튼에 가야하느냐 마느냐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미국의 버튼, 중국의 버튼, 러시아의 버튼은 없는 듯이 착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위기의 균형감으로 시간은 또 한동안 흐를 것이다. 지엽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대통합이 기다리고 있고 이를 위해 힘을 길러야 할 시간이다. 정치력 공백을 대비한 특정 땅을 어떻게 위기관리 할 것인가가 오히려 급선무다. 이러한 계획에 정력을 쏟아 붓지 않는 실수가 있다면 조선반도는 큰 비애로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북핵이 제거되든 제거되지 않든 부차적인 문제일수밖에 없다고 인정하지 못한다면, 조선반도에 기거한 모든 역사적 흐름은 과거를 반복할 것이다. 6.25가 그렇고, 한일합병이 그렇고 병자호란이 그렇고 임진왜란이 그렇다. 결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을 21세기에 와서 다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 땅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갈 슬픔이다.
통합의 원리로 가야한다. 북핵은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 힘의 대비를 위해 경제력, 군사력을 길러가야 할 큰 의무를 특수한 시대에 한국이 지닌 것에 큰 역점을 두기도, 두지 말기도 해야 할 것이다. 집안문제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은 이 점에 있어서 뚜렷한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햇볕이나 포용이나 그것은 정책이 아니다. 당위를 넘어 자연스러움이다.
자생력을 잃어 절반이상을 중국에 기대는 북의 처지를 직시하면서 남측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대신, 방법론에 있어서는 민간의 루트를 활용하면서 생필품과 기반확충 쪽으로 가닥을 잡는 현명함을 보다 보강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중국보다 열성적일 필요가 있다. 비상사태가 터져, 난민이 강을 건너 자국의 안보와 발전저해를 초래하기에 중국은 북과의 공조가 필수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그 이상으로, 북의 공백이 만약 생긴다면 그때 그 땅에서 누구의 힘이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는 남과 북에서 그 무엇보다도 직시하고 합의하고 협력을 넘어 통합을 이룰 사항일 것이다. 정부 대 정부로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민간과 민간, 이 땅의 모든 자가 해야 할 일이다. 아무리 외쳐도 지나치지 않을 단 하나의 핵심, 조선반도는 자생력을 근간으로 외부와 협동하는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치인만 있고 정치가가 없는 사태가 생긴다면 정말로 우울하다. 확대된 이익집단이 아니라 조선반도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라는 인식부터 통일해야한다. 원론적으로가 아니라 뼈에 각인된 인식이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뭇 강대국들이 반드시 조선반도의 强點에 의해 따라올 수 밖에 없는 여건을 끊임없이 만들고 찾아내며 전략적으로 잘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强點으로 제반 국가와 거래를 해야 한다. 빌붙는 것을 외교라고 생각하는 자가당착은 금물이다. 그 슬기를 이 땅의 사람들이 빛내지 않으면 누구도 할 수 없고, 또 하지도 않는다.
北과 核, 그리고 北核을 넘어 조선반도가 있다. 조선반도에서 살고 있는 자는 조선반도에 충실하면 된다. 그리고 6.25는 한번으로 이미 충분하다.
전쟁 없이 하나로 가야 한다.
2006.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