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태산이니 어쩌야 한담?’ 그래도 힘내라 짱!…
언제부터인가 나의 메신져 온라인에 이상한 주소와 문구가 떴다. 이를테면 ‘날 속여? 죄 받아 마땅해!’ 아니면 ‘갈수록 태산이니 어쩌야 한담?’ 등등이다. 대체 누구일까? 무슨 속 탄 일이 생겨 저럴까? 더구나 우리 동북아신문 사이트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와 나는 은근히 놀랐다. 전문은 이러했다.
-기계소리 팡팡 난다. 현장에선 유유한 음악소리와 혼잡한 미싱소리가 오늘은 그렇게도 듣기 싫어진다.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200명 직원들, 핑크색 유니폼이 오늘따라 유달리 지겹게만 여겨진다. 같은 직종 인들이 부러워하는 공간이었건만 짜증만 난다. 그저 내가 하는 일들이 하루살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답답하고 힘든 사정이 있으련만 기업을 가지고 있는 기업인들의 하루살이 마음, 얼마나 힘든 건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 그저 기업가라고 부러워만 할 것이다. 한마디로 성공의 명예와 직원들에 대한 책임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는 기업인들의 사정을 누가 알아줄 것인가?
고향 떠나 먼 땅에서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사회와의 약속을 지켜나가기 위해 나는 끝없이 헤매고 있다. 분명 나 혼자만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서 자란 고장, 흙냄새 풍기는 시골, 먼지투성이의 길…그래도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지고 부러워지고 친근해 진다. 내 고향, 그 곳에서 나는 여유를 가졌고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꼈으며 삶의 기초를 닦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물론, 여기는 예로부터 천당이라고 일컬은 중국의 소주!- 우리는 번화한 거리에 아파트를,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두 개 세 개씩 가지고 있고, 자가용도 있고, 부러움이 없이 산다. 아니, 남들이 눈에는 그렇게 보이겠지! 그게 성공이라고? 믿음이 안 간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가 하루살이로 생각이 되었다. 먼지 풀썩풀썩 피어오르는, 흙냄새 나는 시골생각만 자꾸 난다. 아, 책임을 지기 위해 손에 든 일들! 그걸 지키려고 허둥대고 있는 기업인들의 생활은 참으로 힘들어진다. 단지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기 때문일까?…나는 오늘도 내 하루살이 인생을 살아간다. 하루살이, 흐흐흐…그래, 나는 하루살이다 !
풀려나가지 않는 일들에 맘 풀어보려고 짬 내서 이 글 쓴 것 같다. 혹 오늘은 하루살이 생활이란 개념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다 나는 우연히 ‘갈수록 태산이니 어쩌야 한담?’과 메신져를 하게 되었다.
“왜 갈수록 태산이라니, 힘든 일이라도?…누구신데?”
“저요? ㅎㅎㅎ…공장이 너무 힘들어요. 인간의 진정을 돈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현실도 그렇고, 믿음은 깨지고…”
“공장해요?…인형하청공장이라, 그런 것도 있나? ㅎㅎㅎ…”
“이번 오다준 것 돈을 못 받게 되어서, 서울 넘(놈)이 떼먹고 달아나서 공장이 힘든 상태에요. 여자로서, 바깥세상에 산다는 게 얼마나 힘 드는지 모르겠네요.”
아,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저런, 그런 일이구나!
“난 장사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다 같이 먹고 사는 일이라고 열심히 뛰어왔는데, 종업원들 노임 못줘 어떻게 해요?”
“큰일이구먼, 기업하다 보면 사기 당할 때도 있지,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는데, 공장장이 손 놓으면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요?”
“그게 사람 죽인다구요. 책임감 때문에 200명이 나만 쳐다보고 있으니, 목멜 수도 없구요”
“뭐, 200명? 꽤 크네요…생산액은?”
“한 해에 인민폐 600만 원(한폐 7억 5천만 원)정도…”
“중국에서는 정말 간단치 않은 데요…”
“인건비는 올라가고, 그런데도 사람이 없어 허둥거려요. 7년 전 공장할 때와는 비교도 못해요. 그때는 적어도 마진이 절반은 되었는데, 지금은 10~20으로 보면 되요. 한 달 동안 정신없이 밤새며 일했는데 결과가 이래서…그래도 혹시나 해서 접지 않고 버텨보는 겁니다. 자금만 팡팡 돌아가면 이 고생 안 하겠는데, 미안해요, 제 어려운 점만 털어놔서.”
“글쎄요, 괜찮아요. 그런데 절 알아요?”
“ㅎㅎ, 죄송해요, 선생님, 얼마만이에요? ㅎㅎㅎ…”
“누구? ㅎㅎ…”
“아, 16년? 17년 됐나?…저 짱밍쑨(장명순)이에요…”
“뭐야, 장명순?…”
나의 눈에는 인차 얼굴이 갸름하고 감실감실하며 배구 잘 치고 달래기 잘하던 열여덟, 열아홉 살 처녀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글 문장도 괜찮게 지었다는 생각이 났다.
흙냄새 풍기는 고향땅, 사위는 논벌이고, 학교 운동장을 둘러 싼 소소리 높은 백양나무와 세월의 연륜을 아로새기고 있는 느티나무, 그리고 맑고 푸른 하늘…글소리가 들린다!
아, 나는 그 곳에서 10여년 교편을 잡고 가장 아름다운 청춘시절을 보냈었다. 나의 서란시조선족제1중학교-그때 나는 고3 문과반 담임을 맡고, 문과반과 이공과반 어문(한글)을 가르쳤었다. 아마 89년으로 생각되는데? 90년도?…장명순은 그때의 나의 학생이었다.
(세상에!?…그렇구나! 이제는 저렇게 커서 저렇듯 힘든 일을 해나가고 있구나!)
나는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리고 힘내라고 소리쳤다.
“짱밍쑨(장명순), 힘내!…”
“감사해요…너무 시달려 미칠라 하는데…”
“… …?”
나는 제자의 눈에 가랑가랑 맺힌 눈물을 보는 것 같았다.
가슴이 저려났다. 어쩌면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