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토론] 중국의 고구려史 왜곡 막으려면

2003-12-04     운영자
[중앙일보] 2003-12-3

*** 참석자▶崔 光 植고려대 교수.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장▶安 秉 佑한신대 교수.교과서 운동본부 교과서 위원장▶尹 輝 鐸동아대 연구교수.한.중.일 역사교재위원▶林 起 煥한신대 연구원.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 사회:김창호 논설위원.학술전문기자 중국이 고구려(BC 37~AD 668)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이른바 "동북 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자 국내 사학계가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한국고대사학회는 지난달 2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위원회(위원장 최광식)를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고, 시민단체 연합체인 일본교과서 바로잡기운동본부도 긴급 토론회를 여는 등 국민과 정부 당국의 관심과 대응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대형 프로젝트 "동북공정"이 역사학계에서 중요한 현안이 되고 있습니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때도 그랬습니다만, 옛 역사를 가지고 싸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崔=역사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고 우리의 현재와 미래가 얽혀 있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이런 점에서 일본 역사교과서나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은 현재 우리의 정체성과 미래의 가능성을 왜곡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만약 고구려사가 중국사에 편입되면 발해는 물론 고조선까지 넘어가는 셈이고, 고대사는 한국사에서 제외됩니다.

시간상으로는 5천년 한민족사가 2천년으로 졸아들고, 공간으로는 한강 이남으로 한정됩니다.

만약 일본이 임나(任那)를 뺏어가면 한민족은 겨우 한강지역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미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니 만큼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당연히 문제 삼아야지요. 중국은 지금 상대방 역사를 침해하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尹=중국의 국가주의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가 내부에서 확산되면서 체제 유지와 안정을 위해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중입니다.

아울러 이 같은 국가주의에는 애국주의와 사회주의를 결합, 이들을 중심축으로 국가적 정체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동북공정"도 그것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중국과 한국의 관계, 나아가 동아시아 전반의 상황을 규정하는 일입니다.

▶安="동북공정"은 역사를 빙자한 현실정치적 개입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동북공정"은 역사학의 본령에서 보면 심각한 문제이고 학문이 아니게 될 위험이 큽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마련된 "동북 공정"은 학문이 정치 권력에 예속되는 걸 의미하며, 이는 나아가 학문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나아가 인류사에 대한 위협으로 볼 수 있죠. ▶사회=중국은 비단 고구려뿐 아니라 동북지역의 고대사 전반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 같은 시도를 하려는 배경이 무엇입니다.

특히 고구려사 왜곡의 구체적 내용은 어떤 것입니까. ▶林=역사 왜곡 문제가 왜 고대사에 집중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고대사는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다양한 국가 관계가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이를 두고 중국은 1980년대 중반부터 대체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으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봐서도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은 일찌감치 시작된 셈입니다.

고구려사의 영역 자체가 한반도와 만주이기 때문에 일부는 중국사로, 일부는 조선사로 이원화해 해석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보려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목적에 맞춰 사실을 왜곡하려 하고 있습니다.

▶尹=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북한 주민의 대규모 탈북 현상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중국의 여타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경험한 중국이 동북지역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한민족이 한반도와 중국 국경을 사이에 두고 계속 이동할 경우, 다민족 통일 국가인 중국 내에서 소수민족 문제를 자극해 중국이 심대한 악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중국 내에 높은 것이 사실입니다.

탈북자의 만주 유입을 막고 조선족의 한반도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중국 입장을 고려하면 "동북공정"은 역사나 문화 차원을 넘어 만주 지역에 대한 중국의 전략이란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또 하나, "동북공정" 논리를 들이대 동북아 한.중.일, 특히 한국과 중국 사이에 파열음을 불러 동아시아 평화나 공동체에 악영향을 주겠다는 뜻도 보입니다.

▶林=역사적 사실 왜곡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간주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중국은 고구려 족속 자체를 주나라 민족 이동의 결과로 치부하려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중국과 고구려의 조공제도를 강조하면서 조공제도가 국가 간에 이뤄진 관계가 아니라 국내 지방정부 간에 일어난 관계로 설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중국에 조공을 바친 신라나 백제는 왜 중국의 지방정부가 아니냐는 반론에 부닥치게 되는 맹점을 지닐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중국의 한(漢)과 고조선의 경계인 패수(浿水)가 어디냐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중국은 이 패수를 압록강이 아니라 대동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천도(AD 427) 이후의 고구려까지도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구려가 천도한 평양을 중국 내 지안(輯安) 근처라고 주장해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 하는 것은 정말 유치하고 우스울 정도입니다.

▶사회=일본의 교과서 왜곡의 경우도 있었습니다만,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우리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고, 할 예정입니까. ▶崔=지난달 2일 한국고대사학회에서 왜곡대책위를 발족했습니다.

여기에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의 내용을 정리해 12월 9일 발표할 예정입니다.

17개 공동대책위가 이날 오후 1시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공대위를 구성, 성명서를 발표한 뒤 2시부터 9개 주제로 학술대회를 엽니다.

학문적 대응 형태의 중간발표인 셈이죠. 이후 중국의 주장을 정리해 이를 반박할 수 있는 역사적.실증적 논리를 갖춰나가는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安=시민 위치에서는 2001년 일본 교과서 사건 때 대응했던 방법을 생각해 극단적.국수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동아시아 평화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갈 것인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시적 대응 말고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도 명심하고 있죠. 결국 학계와 시민 두 축이 함께 하는 국민적 운동으로 펼쳐가야 하고, 정부와 민간도 한마음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일본 교과서 때는 일본 내 양심적 지식인과 연대해 성공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중국에서 가능할까 의문입니다.

▶崔=제일 시급한 것이 내년 6월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릴 북한 고구려 고분벽화의 유네스코 세계문화 지정 심사입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 고분벽화만 지정되면 큰 일이죠. 이렇게 되면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이 유네스코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내년 3월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라는 주제로 국제 학술대회를 열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북한 것이 중국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지원할 작정입니다.

이런 점에서 정부의 종합적 대책이 무엇보다 시급한데, 정작 정부부처는 뒷짐만 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말이 나온 김에 정부에 대해 요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安=정부 각 부처에서 심도있는 협의가 필요한데 장기적 국가 전략도 없는 현실에서 이 부서, 저 부서로 미루는 형국입니다.

정부의 관계 부처를 다 모아 22, 23세기에 어떻게 동북아 질서를 구축할 것인가 하는 장기 비전을 마련하는 데에 이번 사건을 좋은 계기로 삼아야지요. 중국이 사회과학원이란 연구단체를 내세웠기에 외교 문제를 삼기엔 좀 어렵지만, 이 사안이 단순히 학술적 문제가 아니라 중국의 현실 타개를 위한 동북아 국가 사업이기에 외교부도 대응책을 세워 공식 입장을 밝혀야지요. 한민족의 유산인 벽화 문제는 특히 남한 정부가 모른 척 할 수 없다고 봅니다.

관리의 상당 부분을 남한 정부가 맡는 긴밀한 협조가 필요합니다.

교육부 차원에서는 우리나라 학문정책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고구려사 박사학위 받은 이가 12명뿐이라는 암담한 현실에서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우리 학계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겠습니까. 장기적인 인문학 육성 대책을 마련하도록 정부에 요구해야죠. ▶林=중국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우리 쪽도 비판해야죠. 우리 대중이 고구려사를 매개로 만주 영토에 대한 우리 영토 의식만 주장하는 편견이 적지 않게 있어요. 중국 여행하며 우리가 저들에게 보인 행태도 반성감이죠. 우리 거다, 아니다를 따지는 생각 자체도 심각한 왜곡이고요. 고구려사의 귀속 문제뿐 아니라 동북아에서 고구려사가 보여주는 독특한 역사적 위상과 그 접점, 미래의 평화를 보여주는 비전을 우리가 찾아야 합니다.

▶사회=긴 시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정리=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