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탕

조성래의 시인마을소묘 <19>

2006-11-05     동북아신문 기자
바빌론 포수(捕囚)를 계기로 팔레스티나를 떠나서 온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있다. 이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도 고유 신앙인 유대교를 믿고 전래의 생활 습관을 지킨다고 한다.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 '디아스포라(Diaspora)'이다. 그리스어로 '흩어 뿌림'의 뜻인데, 굳이 우리말에 대응시킨다면 '이산(離散)' 정도가 될 것 같다.

당연히 이 말은 우리 한민족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는 개념이다. 오랜 식민지와 분단 세월을 거치는 동안, 민족의 구성원 중에는 이 땅에서 삶의 터전을 옮겨간 이들이 많다. 그들을 '한민족 디아스포라'로 규정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제9회 요산문학제에서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재중 민족문학 심포지엄'이 개최되어 관심을 끌었다. 지난 10월 28일 부산일보사 대강당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재중동포 작가들 가운데 석화 시인, 우광훈 소설가, 김호웅 평론가, 오상순 중앙민족대학 교수 등이 초청되어, 중국의 조선족 문학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전개했다.

국적은 중국이면서 핏줄은 우리 민족인 조선족 문학은 이중성을 띨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격을 가리켜 사회자 김재용 교수는 '잡종'이라고 명명했다. 그만큼 중국 조선족 문학이 정체성의 갈등과 더불어 포용력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중국 조선족'이라는 말 속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중국'은 국적을, '조선'은 핏줄을, '족'은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를 가리킵니다." 김호웅 평론가의 이 말은 재중 동포와 그들의 문학적 성격을 단적으로 지적해 주는 것이었다.

행사 다음날 광안리의 콩나물국밥집에서 아침식사를 대접했더니 다들 무척 좋아했다. 곁들여 나온 부산의 막걸리 '생탁'이 입맛에 맞아 연방 잔들을 비워냈다. 일정이 끝난 그들은 이제 돌아갈 일만 남은 셈이었다. 오상순 교수는 곧바로 공항으로 가서 배이징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 했다. 김호웅 평론가도 서울로 가서 서울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딸을 만나겠다고 했다.

끝까지 남은 사람은 석화 시인과 우광훈 · 리동렬 소설가 셋이었다. 필자는 그들을 해운대로 안내했다. 모처럼 부산을 찾은 형제들에게 쪽빛 바다를 안겨주고 싶어서였다.

먼저 동백섬의 누리마루에 들렀다. 산책로 주변으로 해송들이 늘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바다의 은물결이 마음을 환히 열어 놓고 일행을 반겼다. "야, 멋지다." 리동렬 소설가가 탄성을 연발했다. 석화 시인은 좋은 풍경을 만날 때마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재촉했다. 뒤에 처진 우광훈 소설가는 휴대전화로 통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걸으면서 통화해도 될 텐데, 그는 번번이 걸음을 멈추곤 했다. 단체 관관객들 틈에 섞여 여유롭게 누리마루를 한 바퀴 돌고는 나왔다.

이어 미포로 가서 유람선을 탔다. 쾌청한 가을 날씨 덕분에 바다는 한껏 푸르러 있었다. 유람선이 미끄러지며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바람결에 실어 보내자, 물결 위로 번지는 음률이 조금 전에 들렀던 동백섬을 손에 잡힐 듯이 끌어당겼다. 그 안쪽, 광안대교의 가로곡선과 고층빌딩들의 세로축이 교차하며 항구도시의 신선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야, 갈매기다!" 리동렬 소설가가 갈매기를 처음 보는 아이처럼 환호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우광훈 소설가는 해안의 절경을 완상하며 바닷바람에 취해 있었고, 석화 시인은 아예 뱃전에 턱을 괴고 바다에 넋을 뺏긴 모습이었다.

다시 미포의 선착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정오가 지나 있었다. 일행은 근처의 해물탕집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석화 시인은 이곳에서도 술잔을 사양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우리도 해물탕처럼 따뜻한 인정으로 어우러져 살았으면 좋겠다며 연거푸 술잔을 기울였다.

멀리 오륙도가 끝까지 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