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고구려와 ‘神舟’

2003-12-02     운영자
[속보, 사설/칼럼] 2003-12-1

‘고구려’하면 우리 가슴에 메아리가 일어난다. 심장이 뛰는 것 같은 울림이다. 고구려는 드넓은 만주벌판을 말달리던 씩씩한 기상과 분출하는 에너지로 다가온다. 천제(天帝)의 후손이며 세계의 중심으로 자부했던 고구려는 수·당과 자웅을 결한 동북아의 강국이었다. 고구려는 우리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한강의 기적’과 월드컵 4강의 신바람은 고대 고구려인들의 역동적인 생명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고구려사는 한국사인가, 중국사인가. 우리에게 너무도 자명한 이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중국 사이에 검은 구름이 일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동북 변방의 역사를 연구하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중국의 기본입장은 고구려는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이며, 중원정부를 대신해 그 지역을 위임통치한 할거정권이라는 것이다. 중국학계는 고구려의 건국지역과 영토가 중국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고, 중원 왕조의 책봉을 받아 종속관계를 유지했으며, 멸망후 주민이 대부분 한족(漢族)으로 편입되었다고 주장한다.


=고구려가 中 일부라고?=


이같은 해석은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해 있다. 중국학자들은 “중국은 예로부터 다민족국가이므로 현재 중국의 소수민족 역사와 중국 영토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입장이다. 그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르는 현 체제가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강력한 의지와 한국·북한·중국 조선족 등 정세변화를 감안했을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움직임은 마냥 감정적으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단번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중국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소수민족 정책과 연계되어 있고, 중국측의 학문적 연구도 병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체계적이고 냉정한 접근이 요구된다. 정부는 우리의 입장과 원칙을 명확하게 표명하면서 다각도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계는 중국학자들의 연구동향과 결과를 분석하는 동시에 설득력 강한 학문적 대응을 해야 한다. 한국사 바로알리기를 위한 시민·민간단체의 역할도 소중하다.


당면과제는 내년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산하 세계유산위원회 제28차 총회이다. 이 자리에서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물·유적의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유적만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면, 고구려는 ‘중국 소수민족의 고대국가’라는 중국측 주장이 공인되는 상황을 낳을지 모른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도록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협력해야 할 이유다.


중국의 자의적 역사해석은 새삼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게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규정하는 기본틀의 하나였다. 특히 중국의 자장(磁場)은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 대체로 책봉과 조공이란 관계 속에서 민족의 생존을 유지해 왔다. 일본은 임진왜란, 한일합방 등 칼날을 겨누어 왔다. 동북아정세가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출렁일 때 우리민족의 삶의 둥지는 찢겼고, 백성들은 큰 고통과 상처를 겪어야만 했다.


=감정보다 학문적 대응을=


중국은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5호’의 발사에 성공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으로 시동이 걸린 중국경제는 도약하고 있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파장도 더 강해질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으로 고심하던 일본은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면서 ‘메이드 인 재팬’의 부활을 선언했다. 지구촌 시대 동북아의 물결은 출렁일 것이고 언제 거친 풍랑으로 변할지 모른다. 우리민족의 역사적 부침을 생각할 때 나라의 ‘안정과 번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세계속에서 강하고 존중받는 한국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중국은 ‘신의 배’를 쏘아 올리고 일본은 다시 ‘메이드 인 재팬’을 다짐하고 있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연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