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어디에 있고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 동포여인의 피눈물어린 원성을 들어본다
<기자는 얼마 전, 현재 대구지방법원(2005 고단 6460 이○○ 판사) 형사사건 관련, 한국에 체류 중인 최미화씨가 보내온 이메일을 받았다. 최미화 여인의 글은 사기범죄자조차 제대로 구속 못하는 한국법률의 병폐를 신랄히 꼬집으면서 ‘법은 반드시 죄인을 징벌해야 하고 죄인은 반드시 죄 값을 받아야 한다’는 극히 상식적이나 엄연한 주장을 자신의 피눈물 얼룩진 글에 담아 강력히 호소하였다! --편집자 >
안녕하세요?
…피고인 최○○(57세)는 합법으로 위장시킨 밀입국자를 모집하게 되면 쉽게 큰돈을 벌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1996-2002년 6월까지, 조선족을 무려 1000여 명 밀입국시켜 한화 100억 원을 넘게 갈취해 타인명의로 위장 분산시켜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모자라 밀입국 하려고 하는 조선족 20여 명의 예약금, 경비, 차용한 돈 1억 2천만 원 상당을 떼어먹고 뻔뻔스레 제일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면서 에쿠스, 영남전자, 단자회사 명의를 내걸고 밀입국을 통해 번 돈으로 ‘해림 주유소’를 차려놓았고, 집도 여러 채 사놓고 호화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중국에 있는 현지처 안○○(30세)와 7세나는 아들에게 까지 자가용과 집 몇 채를 사주었습니다. 저는 1998년 7월에 저의 남편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그자의 심부름을 하였기에 내막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02년 5월 25일부터 6월 15일까지 제가 ‘월드컵 관람’ 안내 명의로 20억을 벌어주니 최씨는 결산도 해주지 않고 남의 돈까지 돌돌 말아 한국으로 가버렸습니다. 4개월이 넘도록 애걸복걸 울며 빌고 빌었지만 중국 현지처 안씨와 함께 최○○는 “돈은 안 준다, 중국이든 한국이든 신고하려면 해라” 하고 지껄였습니다.
사실 제 잘못이라면 그자가 저의 몸을 달라는 것을 주지 않은 것뿐입니다. 이리하여 수십 명의 피해자가 생겼고 저에게 4년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원고인 저는 2002년 12월 부산에 있는 대리인 강○○씨를 통해 신고(부산검찰청, 죄명 출입국관리법 위반)해서 피고를 구속시켰습니다.
최씨는 구속되자 저에게 몇 년간 알고 지낸 정을 봐서라도 고소를 취하해달라고 애원하기에 나오면 돈 주겠지, 생각하고 해달라는 데로 해주었습니다.
피고 최씨는 법관 인사이동을 기다려 갓 퇴임한 부산지방법원장 출신인 김○○변호사를 통해 4350만원을 들여 조건부로 선임해서 공판기간을 20여일 앞당겨(증거물인 밀입국자 명단 1,000여 명을 보내주었는데 57명으로 축소 조작) 1-2년 집행유예로 풀려났습니다.
월드컵 당시 최씨는 공범 이○○를 시켜 저의 남편 강원선의 통장과 인감도장까지 빼앗아 피땀으로 번 돈 400만원을 갈취해 갔으며 지금까지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통장 빼앗긴 죄로 공범누명을 쓰고 저의 남편은 교도소 생활 4개 월을 하고 중국으로 강제퇴거 당한 채 지금까지도 종무소식입니다.
‘월드컵관람’ 명의로 한국에 입국한 저의 친구 송해월은 1200만원을 주고 불법으로 나온 죄로 잡혀 교도소생활 3개월을 하고 강제퇴거 당해 병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대검찰청, 대구지방 검찰청으로 수없이 탄원을 하여 대구 검찰청의 초청으로 2003년 9월 20일에 한국에 입국하였고, 밀입국심부름 한 죄로 부산지검을 찾아가서 죄를 승인하고 1주일 간 구치소생활을 하였습니다.
사기죄로 저는 피고 최○○를 다시 고소하였습니다. 대구지방검찰청에서는 2년 넘게 수사하여 최○○의 모든 범죄 사실, 혐의물증(한국 외교부를 거쳐 중화인민공화국 공증서 원본)이 명백하고 저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밝혀져 최씨는 다시 구속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고 최○○는 공탁금 5000만 원을 걸고 보석금 5000만 원을 내고 불구속으로 풀려났습니다. 최○○는 재판장에게 공탁도 걸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면서,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강홍식 이름으로 된 공탁금을 본인 허락도 없이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몽땅 찾아 갔습니다.
최씨는 그 죄를 모면하려고 공탁금을 걸고 피해자 최미화와 꼭 합의를 보겠다는 등 거짓말을 일관하며 3년이 넘도록 검찰과 재판장님까지 제 마음대로 우롱하고 기만하였고, 불구속상태에서 한국과 중국을 마음대로 오가면서 데리고 오지 못하는 증인들을 신청하고 밥도 사주고 돈도 찔러주면서 거짓서류만 제출하고 있습니다.
2006년 6월 30일, 검찰에서는 최씨에게 2년을 구형하였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 자는 다시 재판을 신청하고 지금까지 나오지 않는 증인 신청만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재판장님이 어째서 피고인이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가 중국인이 되어 그러시는지요, 아니면 다른 원인이라도?…
비록 저는 중국 조선족여인이지만 갖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입국해서 대한민국의 법 기관을 찾아 재판장님의 앞에서 진실과 억울함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감옥살이마저 두려워하지 않은 채 혈혈단신으로 건너 왔습니다. 온갖 차별과 멸시, 그리고 무시 속에서도 경찰, 검찰, 법원의 조사에 조금도 변함없이 꿋꿋이 응하면서 3년 넘게 진실만을 지켜 왔습니다. 영하 35-40도의 엄동설한에 빚쟁이들의 등살에도 꿋꿋이 견뎌내면서 약을 먹고 죽겠다는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애원과 원성 때문에 본인은 차마 죽지 못하고 중국 대륙을 휘젓다가 여기까지 천방지축 달려온 것입니다. 이는 20여 명의 명줄이 달린 중대한 문제인 만큼 저는 피 한 방울 남을 때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뛸 것입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마음은 억울함과 막연함에 지쳐가고 눈앞에는 빛이 보이지 않고 캄캄할 뿐입니다! 그동안 결과가 없는 3년 간의 피눈물 어린 이 사연 어디에 하소연할 곳조차 없습니다. 묻노니 법은 어디에 있고 정의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이시여, 불쌍한 어린양을 보살펴 주소서!” 하고 소리쳐 왜치고 싶습니다!
2006년 10월
최미화 (절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