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변, 야생 키니네 꽃-1

2006-10-23     동북아신문 기자

남미 페루의 옛 잉카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그 강변, 야생 키니네 꽃’을 2회에 걸쳐 나누어 싣습니다.

한 여자 이야기를 이제 털어놓으려 한다.
이름 홍 태연, 나이 30대 초반, 민속학(民俗學)에 대한 취향, 취미로 오일 페인팅 작업.
마지막 만난 것이 3년 전 남미 페루에서였고, 처음 본 것은 그 보다 2년 전. 현재로는 그 여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안데스 산기슭 잉카 원주민 후예들 속에 섞여 있다가 6월 24일, 태양의 축제가 열리는 날, 잉카 왕녀로 분장, 잉카의 칼, ‘투미’로 라마의 심장을 꺼내 태양을 향해 ‘인티 라이미’를 외치는 퍼포먼스에 끼워 있을지, 한국의 작은 화실에 돌아와 나이프에 흰색 오일물감을 듬뿍 묻혀 화폭을 덧칠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 크고 검게 일렁이는 눈이 가끔 나를 지켜보는 듯한 지난 3년이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쏟아 내버리면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공중에서 본 마추픽추

여자는 그림 앞에서 ‘덮는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여자는 나를 그녀 작은 화실에 데려 갔고, 거기서 40호 남짓의 흰 색 화폭 한 개를 보았다. 그때 여자는 맥주 컵에 위스키를 따라 내게 주고, 자기 잔을 홀짝거리면서 흰 물감으로 그 화폭 위쪽 부분을 덧칠하기 시작했다.
“눈이 계속 내려 덮는다고 생각해요. 덮고, 또 덮어가고...그럼 다 묻히고....삶이란 게 늘 그렇지 않나요?”
캔버스는 흰색을 수없이 덧칠해서 전등 불빛에 미세한 음영을 드러냈다.
나이프를 내려놓고 잔을 내 잔에 부딪친 여자는 위스키를 한 입에 털어 넣어 버렸다.
“볼래요? 덮인 눈을 걷어내면.....”
작은 나이프로 이번에는 두껍게 덧칠된 흰색을 위에서 아래로 몇 번 거칠게 긁어내렸다. 마른 물감 조각들이 떨어져 내리면서 화폭 군데군데 얼룩이 드러났다. 너무 힘을 많이 준 부분 한 곳은 작은 구멍이 생겼다.
“다른 세계로 통로가 생겼네.....카오스와 코스모스가 교차하는...이승과 저승이 교차하는 관문....”
깔깔거리고 나서 그녀는 위스키를 제 잔에 다시 따랐다.

그녀와의 첫 대면은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여자는 불쑥 ‘천도제(薦度祭)’를 아느냐고 했다.
들어본 적은 있지만 내용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간단한 부탁 하나 하려구요.”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자기 어머니도 세상을 떴다고 했다. 며칠 후 49제때 작은 암자에서 망자를 위한 ‘천도제’를 지낼 생각이라 했다. 민속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49일째 날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는데, 영혼이 저승으로 가는 관문이어서 자식들이 그때 사자(死者)를 위해 올리는 의식이 ‘천도제’라는 설명이었다.
“이승 얽힌 한(限)이 있으면 좋은 곳으로 못 가고 구천을 떠돌 수 있거든요.”
“그런데요?”
“그래서 부탁을 하나 하려구요.”
“‘천도제’와 내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직접 관계는 없어요.”
나는 그 무렵 신경이 꽤 날카로워 있을 때였다.
“밥을 한 그릇.....그래요. 그냥 밥 한 그릇 더 우리 어머니 밥 그릇 곁에 나란히 올려놓고 싶어서요.”
여자는 조금 뜸을 들였다가 더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두 젊은 남녀가 있었다. 깊이 사랑했는지, 속된 말로 진도가 얼마나 나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둘은 각각 다른 사람하고 결혼을 했다. 그런데 여자는 일찍 청상이 되었고, 오랜 세월 그 첫 남자를 잊지 못해 가슴에 안고 살았다. 둘 다 80이 넘어 남자가 세상을 곧 뜰 것 같다는 풍문을 들은 여자는 죽기 전 한번이라도 얼굴을 보겠노라고 남자가 사는 동네를 찾았다고 했다. 그러나 남자네 집 주위를 맴돌다가 외간 남자 집안에 들어갈 수 없어 그대로 집에 돌아와 누워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부음을 듣고 여자는 정한수 한 그릇을 방 윗목에 떠놓고, 머리를 풀어 산발한 채 소리 죽여 곡을 하더니, 며칠 후에 세상을 떴다.
“허락하실 거지요?”
“그럼 댁의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를?”
“내 혼자 상상해본 일일지도 모르지요.”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를 머리 속에서 지워갈 무렵 민속관계 세미나에 대한 안내장 한 장이 우편으로 배달되었다.
안내장에서 ‘홍 태연’이라는 이름을 발견했고,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여인네와 나란히 앉아 있는 내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참 실소를 했다.
그것이 두 번째의 만남이었다.

강의실 뒤쪽 청중 들 사이에 끼워 앉아 그 날 오후, 나는 평소 관심도 두지 않았던 무속세계며, 이승과 저승, 사람들 영혼에 관한 이야기들을 귓가로 흘려 들었다.

.......‘천도제(薦度祭)’는 죽음의 부정(不淨)을 풀고 사자의 넋을 위로하여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한 의식인데 가족 단위가 일반적이지만 집단희생자들의 혼을 위로하는 천도제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진오기굿’(서울·경기도), ‘시왕굿’(평안도·황해도), ‘망무기굿’(함경도), ‘씻김굿’(전라도·충청도), ‘오구굿’(동해안), ‘시왕맞이’(제주도) 등, 무당이 주관하는 이 의식의 내용은 비슷합니다.

.......충족된 삶을 살고 적당한 나이에 집에서 죽는 경우, 호상(好喪)이라 해서 ‘천도제’를 지내지 않아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영혼은 저승으로 들어가 조상신(祖上神)이 되는데, 요절이나, 횡사, 객사, 미혼사, 자살이나 타살로 인한 죽음, 교통사고, 해상사고의 혼령들은 쉽게 저승에 들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원귀가 된다. 자식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 물에 빠져 죽고 불에 타죽고, 배고파 죽은 수귀(水鬼), 화귀(火鬼), 아귀(餓鬼), 손말명이라고 불리는 처녀귀신, 몽달귀신이라고도 불리는 총각귀신 등, 원귀가 된 사령은 ‘천도제’를 해주어야 저승에 들 수 있다. 따라서 ‘천도제’는 죽은 사람보다 자손들이 재해를 막고 복을 받기 위한 의식의 의미도 포함된다.

.....영가(靈駕)가 돌아가신 날로부터 7일마다 재를 올리게 되는데 그것을 일곱 번에 걸쳐 올립니다. 그 일곱 번째가 사십구재입니다. 7일마다 올리는 재는 간소하게 치르지만 49일이 되는 마지막 일곱 번째는 영가가 재물을 흠향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장만합니다.
7일 만에 한 번씩 재를 올리는 것은 49일간 중음신(中陰神)으로 영혼이 떠도는 동안, 생전의 업에 따라 매 7일째마다 심판을 받고, 그때마다 불공을 드려 망자를 대신해 선근공덕을 지어주면 그 공덕으로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49재를 중요시 여기는 것은 명부(冥府)의 염라대왕이 49일째 되는 날은 직접 심판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 2년 여, 나는 여자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그런데 남미 여행 중 내가 페루 일정을 확정하고 나서 그녀가 페루에 체류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페루 현지 한국인 여행사에 그녀가 관계하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었지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꽤 당혹스러웠다.
.....남미까지 가서 잉카를 안 보고 올 수 있나? ....박 민구라고 기억 안나나?...나는 친구의 후배라던 태권도 사범 출신의 페루 교민을 떠 올렸다. ....내가 팩스 넣어 놓을 기니 한 이틀 전에 전화만 한 번만 그 쪽으로 하그라. 그래도 갸, 신의 하나는 있는 놈이다.....
한 사흘 시간 여유도 있었고, 잉카 유적을 훑어 볼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다 싶어 박이라는 사람을 만나 한국 중고 자동차 수출 가능성에 대한 시장 조사 자료를 받아 오는 것을 친구에게 동의를 하고 난 다음이었다.
친구는 늦은 시간 나를 바래다주고 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가 내게로 다시 걸어 왔던 것이다.
“늬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그 홍 태연이라는 여자, 박 사장 여행사에 관계하고 있는 거를 확인했다.”
“그 여자가 거기 왜?”
나는 마셨던 술이 확 깨어 버렸다.
“자세한 거는 나도 모른다. 통화 하다가 알았다. 아마 페루에서는 그 미스 홍이 널 에스코트 해줄끼다.”


쿠스코에서 만난 잉카 가족들과 라마

해발 3300m. 쿠스코(Cuzco)에서는 자칫 고산병 증세가 온다고 해서 천천히 몸을 움직였지만 공항 청사를 빠져 나오자 스페인 풍 건물들이 물 속 풍경들처럼 흔들리면서 구토감이 왔다. 그러나 홍 태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추픽추로 가는 관문이 여기 쿠스코인기라요. ‘케추아’말로 배꼽입니더. 세계의 배꼽이 여기다, 중심이다, 한 거 아니겠십니꺼? 스페인한테 멸망해 부렀지만도 한때 잉카 제국 수도였던 쿠스코에 선생님들이 발을 들어 놓으신거라예...."
박이라는 작달막한 키의 여행사 사장은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입을 크게 벌리고 너스레를 떨었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사장은 ‘코리칸차(Qoricancha)’의 모습을 직접 보기라도 한 듯 입담 좋게 떠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스페인 군인들 정신이 하나도 없었실 깁니다. 군인들 앞에 ‘코리칸차’가 딱 버티고 선거라, 예....금으로 만든 샘에서 맑은 물은 흐르지, 예...금 돌 깔린 밭에는 금으로 만든 옥수수나무에 금으로 된 옥수수들이 달려 있는 거라, 예... 옆에 금으로 만든 라마가 풀을 뜯는 시늉을 하고 예...정신이 하나도 없었실 겝니다.... 금으로 만든 재단 위에 금으로 만든 큰 태양상(太陽像)이 햇빛에 번쩍번쩍 하는 기라예....."
버스는 ‘비라코차’ 신전 위에 100년을 걸려 세웠다는 아르마스 광장을 지났고, 아르마스 광장에서 라콤파냐 교회 옆으로 난 좁은 로레토 거리에서 잠시 멈추어 섰다. 돌과 돌이 맞물린 잉카시대의 석벽이 200m 정도나 계속되는 로레토 골목으로 어깨에 비스듬히 판초를 두르고 모자를 쓴 원주민들이 오가고 있었다.
“안 되겠십니다. 다들 좀 쉬어야겠십니다.”
버스 뒤쪽에서 일행 하나가 갑자기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바람에 우리는 일단 호텔로 옮겨가기로 했다.
두통과 구토, 호흡 곤란 등의 고산병 증세는 이곳을 찾는 외지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통이라고 했다. 나도 가벼운 불쾌감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스패인풍의 호텔 로비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코카차(Mate de Coca)를 두어 잔씩 마시고 나서야 일행은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이게 코카인 차인게라요. 서울서 마싯다하문 구속되는기라 예. ”

이 친구가 계속 느물거리는 바람에 나는 결국 점심을 마치고 쿠스코 동쪽 ‘사크사이와만(Sacsayhuaman)’요새에 갈 때까지 그녀 홍 태연에 대해 물어 볼 염두를 내지 못했다.


사크사이와만 성벽 앞에서
“리마에서 비 오는 것을 보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십니다. 운이 엄청 좋으신기라 예.”

홍 태연이 자취를 감추기 며칠 전 초겨울 새벽, 내 숙소의 방문을 두드렸던 그녀 발이 맨발이었음을 나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기억해 냈었다.
첫 대면 때의 그녀 두 눈이 일렁이는 느낌이었던 것도 세상의 인연들과 삶과 죽음, 특히 그녀 어머니에 향하는 애증의 깊이였음을 한참 후에야 나는 짐작으로 받아 들였다.

페루에 입국하던 리마 국제공항의 마중도 미스 최라는 가이드였다. 황 사장은 개인적인 볼일로 쿠스코 공항에서 만날 것이라고 했고, 홍 태연에 대한 언급은 그녀 역시 하지 않았다.

리마에서는 박물관에서 여러 구의 미라들을 만났고, 뇌수술 흔적이 있는 잘 보존된 미라 앞에서, 나는 뇌수술을 받은 후 돌아가신 내 아버지 생각을 잠시 했다.
적어도 400년이라는 시간 저편에서 두 개골 뼈를 잘라내고 시술을 한 다음 구멍 뚫린 두개골을 엷게 편 금박(金箔)으로 봉합한 미라의 주인공은 누구였을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을까.
브라질에서 동행이 된 일행 여섯 명은 리마 국립박물관을 나와 15분쯤 거리에 있는 라파엘 ‘라르코 에레라 박물관(Museo Arqueologico Rafael Larco Herrera)’을 찾았다.
‘라파엘 라르고’ 개인 수집품인 모치카(Mochica), 치무(Chimu), 나스카(Nazca)의 토기들과 의류, 별도로 마련된 황금의 방을 나와 별동에 전시된 성(性)과 관련된 토기와 도자기의 엄청난 양과 그 에로틱함에 일행은 완전히 질려 있던 시간,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리마에 비가 내렸다.


잉카가족과 함께

정교하게 만든 남자의 성기(性器)가 도자기, 주전자, 찻잔에 달라붙은 채 500여 년 세월을 건너 유리관 안에 늘어 놓이고, 성행위를 표현한 수십 점 토기와 도기들이 도전적으로 관람객 들 앞에 드러나 있던 시간이었다.
“조금 전 우리는 안데스의 개막시대에서부터 차빈, 파카스, 나스카, 모티카의 프레 잉카, 그리고 잉카 시대의 유물들을 개략적이나마 확인 하셨습니다..... 엄청난 황금 유물들에 놀라셨을 거예요. 쿠스코에 있는 ‘코리칸차(太陽神殿)’의 황금으로 된 내벽이나 등신대의 황금 라마들을 모두 녹여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스페인 본국으로 가져가고, 1532년 당시 잉카 황제 ‘아타와르파’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황제가 유폐되었던 방을 가득 황금으로 채워 그 모두를 가져갔다는데도 여기 남아 있는 황금 유물의 양이 우리를 질리게 합니다. 당시 직물과 염색 기술, 이미 보신대도 두 개골 절개의 뇌수술을 받은 미라나, 이빨 하나, 하나를 수정으로 깎아 끼울 만큼 놀라운 의술은 그러나 불행히도 문자가 없어서 결과만으로 모든 것을 짐작해야하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지금 이 전시실에서 또 하나 놀라운 잉카의 얼굴을 보고 계십니다. 설명이 필요 없이 잉카인들의 성에 대한 찬미와 열정은 생산을 기원하는 다른 지역의 일반적인 성에 대한 인식과는 다르다는 느낌이 오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어요.”
가이드는 시선을 전시물 쪽에 고정하고 입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 약간 흩어진 머리칼 뒤로 커다란 남자의 성기들이 놓여 있어서 언뜻 그 성기 주변에 무성하게 음모가 돋아나고 있는 착각이 왔다.
창백한 얼굴빛 때문이었는지 그녀 나풀거리는 머리칼과 그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남자 성기의 조화에서도 외설적인 느낌은 전해지지 않았다.
“비가 와요. 세상에 리마에 비가......”
가이드도, 설명을 듣던 관람객들도 순간 창문 쪽으로 몰려 가 버렸다. 후드득거리며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와 매캐한 흙먼지 냄새가 창 틈으로 기어들었다.
“참말 비가 오네요.”
가이드의 얼굴이 활짝 밝은 색으로 변했다..... 5년 만에 처음 보네요. 5년 되었거든요. 리마에 온지 5년인데 한 번도 리마에 비 오는 걸 못 보았어요.....그녀 목소리가 조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밝아졌다.
“리마에도 비가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