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 현대시 개척자 한춘 시인 대구 강연

2006-10-11     동북아신문 기자

 
"한국말 잃어가는 조선족 詩통해 아름다운 우리말 알리는 것이 제 사명이죠"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한국에 '홀로서기'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고 하지요. 중국에서 조선족이 시를 쓴다는 것이 바로 홀로서기와 같습니다."

10일 오후 7시 달성군 현풍면 달성문화원에서 열리는 달성시인대학 가을문학특강을 위해 대구를 방문한 조선족 시인 한춘씨(65·필명·본명 임국웅)는 중국에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이렇게 표현했다.

한씨가 삶의 근거지로 삼고 있는 헤이룽장성의 인구는 3천만명. 그 중 500명 정도가 시를 읽을 줄 아는 문학의 불모지에서 조선족 시인으로서의 고단함은 대충 예측이 가능하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살고 있는 그는 이에 대해 말하던 중 안중근 의사가 문득 떠올랐는지 자신의 작업을 독립투사와 비교했다. 자신은 물론 타인과의 외롭고 끝없는 싸움이라는 설명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토목관련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시인으로서의 기량을 인정받아 헤이룽장성 신문사로 스카우트돼 20년 넘게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한씨는 중국에서 조선족 현대시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공산주의 국가에 있는 것을 무시할 수 없었던 만큼, 무슨무슨 주의에 부응하는 시를 썼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삶은 아니다 싶더군요. 그래서 한때는현대시라는 이름으로 나를 위한 시를 적었고 지금은 민족을 위한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시인으로서의 내가 갈 길 아니겠습니까."

현대시를 애매모호하고 알쏭달쏭한 시라 하여 '몽롱시'라 칭하는 그는 몸은 어쩔 수 없이 중국에 있지만 시를 통해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신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시를 적는 것이 결국 언어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을 이어가는 작업이라는 설명이다. 조국인 한국을 사랑한 나머지 필명도 한춘(韓春), 즉 '한국의 봄'이라 지었다. 본명은 임국웅이다. 중국에서는 본명보다 필명이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저는 한국말을 하지만 아내도 조선족인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릅니다. 가끔 답답하지요. 이런 것을 보면 조선족이 모여있는 농촌에서 도시로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은 점점 한국말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지요. 이런 점에서 요즘 더욱 조선족 시인으로서 사명감을 강하게 느낍니다. 시를 통해 우리말을 알리는 것이 제 마지막 일이니까요."

줄담배를 피우던 그의 얼굴에 잠시 근심어린 웃음이 지나갔다. 먼 타국땅에서 시를 통해 우리말을 지키려는 한춘 시인의 외로운 투쟁은 그래서 더욱 듣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영남일보/ 시인 서지월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