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뜨는 달 서울에서 보다
동생과 함께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지난 시각이었다. 달은 밝고 주위는 고요하여 이상하게도 서울 한 자락 같지가 않았다.
인천에서 리무진에 앉아오는 동안, 동생이 가끔은 상기된 얼굴로 나와 많은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고, 가끔은 아무 소리도 없이 창밖만 바라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놀랍게 알아둔 사실이기는 하지만, 동생이 지금까지 한주 이상 고향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내 동생은 이미 나이 서른의 노총각이다.
집에 들어서니 매일 보는 내 아내가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었다. 결혼식에서 처음 보았고, 몇 년 후 다시 한번 만나는 내 아내가 내 동생에게 있어서는 친형수가 된다. 도회지 여인에게 있어서는 서울이 오히려 친근할지도 모르지만, 내 동생에게 있어서 서울은 한동안 낯설고 복잡한 고을로 여겨질 것만 같았다.
고향에서부터 큰 짐 보따리를 지니고 동생이 여기까지 왔다.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서마저 흐릿했던, 그러나 보자마자 감회와 함께 통통 머릿속에서 튀어 오를법한 여러 말린 것들이 짐 속에 많이 들어있었다.
된장, 고춧가루, 고추장, 고추 떡, 말린 더덕, 말린 미꾸라지, 고사리, 해바라기 씨, 절인 깻잎, 무말랭이, 잣, 개암..
- 이런걸 아버지가 다 해서 보낸거야?
- 어..아버지가 했지..어떤 것은 시장에서 사왔어..미꾸라지는 내가 잡아서 말린거구..
아버님을 만나 뵙지 못하지도 10여년이다. 어머님의 영정 앞에서 꺼이꺼이 눈물을 쏟던 아버님을 본 것이 최근의 모습이었다. 아버님은 평생 고향마을을 떠나지 않으셨고, 지금도 거기에 계신다. 농사를 짓고 계신다.
식사 후, 자연스럽게 고향마을 얘기가 흘러나왔다. 아내는 우리의 이야기가 신기한 듯 그냥 듣기만 했다.
마을에서 별로 할 일이 없어 동네 닭이나 잡아놓고 술추렴을 하던 얘기로부터 시작하여 추석이나 구정이 되어 마을에 어쩌다 같이 자랐던 처녀들이 오면 제법 기운이 나서 무리를 지어 총각들이 처녀 집을 쏘다니던 이야기며, 어느날 문득 손을 꼽아 헤아려보니 장가 못간 노총각이 마흔부터 스물다섯 사이에 무려 마흔 명이 넘었다는 것이나, 어떤 친구는 그래도 속궁리가 빨라 북조선 처녀를 인민폐 3000원에 사서 이제는 자식까지 보았다는 감동적인 얘기라던가, 하여간 내가 한동안 망각했을법한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 쌀값은 괜찮나?
- 쌀농사 갖고는 자식 공부시키는 것도 힘들어..나도 농사를 계속 지어 알지만 별로 남는게 없다..처녀들은 우리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을에 처녀들은 하나도 없다.. 어쩌다 마을에 왔다가 우리랑 만나 하는 소리가 참.. 돈 있는 한족이 더 좋다고 하는 것들 보면 내 그냥..
동생은 할 일없이 분한 표정이었다. 이런 얘기가 나오다나니 동생은 시무룩해졌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동생이 짐 속에서 수첩을 꺼내 건네줬다. 20여년 전 내가 써두었던 일기책이었다. 나는 짐짓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동생도 건네주기만 했지 따로 말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래도 말을 했다.
- 형님 니는 아직도 공부를 하니까, 이전에 써두었던 것도 필요할가 싶어서 내가..
피곤하니 일찍 자라고 했다. 동생이 진짜로 피곤해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이불을 펴두고 나는 다른 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많은 얘기는 서울에서 같이 지내면서 두고두고 하면 될 것이다.
자리에 누워 창밖에 흐르는 구름과 밝은 달을 보노라니 덧없는 구름은 덧없는 시간과 같이 투명하기만 했다. 동생의 코고는 소리가 가끔 들려왔고, 아내는 평온한 모습으로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옷을 대충 걸치고 서울의 어느 모퉁이 거리에 나섰다. 고개를 들어 달을 보았다. 창밖으로 보던 모습과 같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휘영청 밝으려면 아직 며칠 걸려야 할 것 같았다.
바람은 차고 기분은 숙연하여 내 차마 다른 말도 혼자 중얼거리지 못하였다. 윗 층 개가 달을 보고 울고 있었다. 귀뚜라미도 울고 있었다.
아버님도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 것이다. 이제 곧 돌아올 추석에 할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가실 것이다. 아버님 혼자 가실 것이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러시아 해삼위에 뼈를 묻으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술을 한잔 하시면 꼭 해삼위, 러시아말로 블라디보스톡1)이라 불리는 그곳 이야기를 하셨다고 아버님이 나에게 말씀을 해주셨다. 그것마저도 내가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밖을 돌아다니기 썩 전, 내가 아버님의 이야기를 마냥 즐겁게 들을 무렵쯤에 들어둔 것이라 20여년도 지난일이기는 하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남아있던 족보 책도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불태워버렸다. 나는 이제 그 잃어버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신화와 전설에 맡겨둔바 되었다.
나는 10여년동안 왜 내 고향에 가지 않았는지 놀랍기만 했다. 어쩌다 문득 놀랍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내가 또 한번 놀라웠다. 혹시 이제라도 내 그냥 아버님이 계시는 고향에 돌아가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어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차를 타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뼈를 묻은 곳으로 찾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는 서울이다. 오늘, 고향에서 뜨는 달 서울에서 본다.
- 2006년 추석을 미리 기념하여
9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