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에서의 나의 대학생활

이순희

2006-09-15     동북아신문 기자


오늘은 금요일이다. 비록 오전에 수업은 없으나 일찍 깨여났다. 늦잠을 자려했는데 나에게는 한 치의 게으름도 허용 안 되는가 보다. 문밖을 나서니 한창 구질구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경에는 늘 비가 내린다. 우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빗방울이 머리를 때리는 느낌은 별로 좋지 않다. 속으로 비를 내리쏟는 하늘을 욕하면서 머리를 숙이고 조용히 걸었다. 가을이라는 사실을 설명 해 주려는 듯 어디선가 계화꽃 향이 싱그럽다. 굽인돌이를 돌아 자습실에 이르렀다.


뭔가 써야 가슴이 내려갈 것 같다. 마침 비 오기에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처음 남경에 왔을 때 나의 기분도 비 내리는 흐린 날이었다. 기억으로는 철이 들기 시작한 때부터 나는 모순 많은 나의 자그마한 세계에 반항했다.

반항해야만 불공평한 것을 뒤엎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직접적인 대상은 우선 신변에 가장 가까운 아버지에게 향했다. 유전이란 신기하다. 나는 아버지의 고집 세고 집착이 강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다. 아버지가 남경에까지 바래주고 머물러있는 며칠간에도 나는 그이와 신경전을 벌렸다. 나의 철없는 행동은 아버지를 너무 슬프게 했다. 속으로 아버지가 가여우면서도 용서가 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만큼 나는 냉정했다, 아낌없이 모든 것을 해주는 아버지에게!


대학에 온 1년간 내 몸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라면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것이다. 잠재의식 속에서 외계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차츰 약화 되었다.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에 부합되기 위한 노력에서 비롯 된 것이다. 환경이 바뀐 것도 그렇겠지만 문화차이라는 건 무섭다. 두 가지 부동한 문화가 만났을 경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찰하며 불꽃을 튕긴다. 조선족 애들의 따뜻한 관심과 선선한 마음 씀씀이와는 달리 한족 애들은 그만큼 감정상에서나 물질 상에서 너무 인색함을 보인다.

 

사람은 앓고 난 다음에야 저항력이 생긴다. 모지름을 쓰던 끝에 나는 드디어 같은 방식으로 주위 사람을 대하면 서로가 편해진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렇듯 간단한 도리를 머리 쓰기 싫어하는 나는 1년이라는 체험을 거쳐서 얻어냈다. 세상살이는 쉽다. 자신이 스스로 장애를 설치하지만 않는다면! 지금의 나는 자연스럽게 머나먼 곳의 고향을 그리워하고 친인들을 그리워하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무엇보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고마움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 와서야 정말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다. '대학에 와서는 무엇을 배우려는 것보다 학습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참말이다. 수업은 들으나 선생님은 그냥 길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는 사람일 뿐이고 길은 자기절로 걸어야 한다. 현재 매 학기마다 열 몇 개 과목이 있고 과목마다 중요한 정도가 부동하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유효 적으로 시간을 배치하여 효과적으로 학업을 완성한다. 또 나름대로 목표에 따라 과외로 여러 가지를 배워 증서를 따내기도 한다. 따분한 일이나 게으름부려서는 안 된다. 대학은 자유자재로 공부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이다. 장래에 대한 사고와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학교에는 조선족이 꾸린 '한국어협회'라는 동아리가 있다. 회원들은 여러 조로 나뉘어 각자의 책임에 충실 한다. 목적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우리글에 흥취를 갖고 있는 한족 대학생들에게 더 많은 요해를 주기 위해서이다. 학습반(대부분이 한족임. 회원 가입 시 입회비용만 받고 강의청취는 무료임.)을 조직해서 학생들에게 한 주일에 두 번 한국어강의도 하고 가끔 한국영화도 보여주고 한국음식을 맛보게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벌린다. 또 일 년에 몇 번씩 남경의 조선족대학생 모임도 있다. 원래 활동에 참가하기를 꺼려하는 성격이라 입회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공간이 너무 좁은 것 같아 활동범위를 넓히기 위해 나는 이 협회에 가입하기로 했다. 회장은 두말없이 나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너무 쉽게 받아줘 고마웠다. 앞으로의 생활은 더 풍부하고 재미있을 것이다.


남경은 6조고도(六朝古都)로 역사가 현재와 더불어 숨 쉬는 곳이다. 길 옆에는 오동나무가 가쯘하게 늘어섰는데 듣는 말에 의하면 장개석이 프랑스에서 들여온 것이라 한다. 옛 성벽과 옛 성문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버스를 타고 가다가도 볼 수 있다.  명조 주원장의 명효릉, 손중산의 중산릉, 우화대(雨花台)열사기념관, 남경대학살기념관…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승고적들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의 룸메이트 말로는 남경은 묘지가 너무 많아 산 사람이 더 많은지 죽은 시체가 더 많은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일리 있는 말이다. 그래도 방학이나 명절 때면 유람객들이 많다. 우리 반에서도 가끔씩 이런 곳에 놀러 가기도 한다.


밖에 비가 그친듯하다. 나는 지금 대학교 2학년이다. 이제 남은 대학생활은 더 이상 허송세월하고 싶지 않다. 번잡한 이 도시 속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좀 더 힘을 키우고 강해져야겠다.

 

이순희: 남경농업대학 경제관리학원 회계사전업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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