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워리 워리"(1)
<이동렬 단편소설>
가깝고도 먼 옛집, 초가삼간 문고리를 잡는다. 엷은 담요 펴둔 따뜻한 아래 목, 토장국 냄새 구수한 밥상, 은근한 화토 불에 익은 호두가 입을 벌린다. 노란 장판에 베인 추억이 아련히 피어난다.
아내는 무엇이든 소중히 간직했다. 생일선물로 받은 안기인형, 결혼 전에 받아둔 사랑편지, 초등학교 때부터 써온 일기책, 지어 중학시절에 말다툼질하던 친구가 건네 준 사과의 쪽지까지! 재미있잖아요? 이걸 보면 친구의 어색해 하고 미안 해 하는 얼굴 보는 듯 하구, 창 너머 하늘 쳐다보며, 나한테도 그런 시절 있었구나, 하구 그리움 같은 것 만들 수 있으니까요! 색실로 뜬 장갑이나 길에서 주어온 예쁜 단추, 지어 내에서 건진 수석까지 방 구석구석 채워 놓는다.
나는 슬며시 꾸짖는다. 그러니 사는 게 얼마나 고달프겠소? 버리라구, 때 되면 버릴 것 다 버리는 게 인생을 사는 지혜요! 아내는 웃을 듯 말듯 한다. 성질이 그런 걸 어째요?
고집스런 만큼 아내는 단순했다. 집의 누렁이 늘 꼬리에 달고 다녔다. 내가로 데려가 목욕시키고 털 빗어주고 산이며 계곡을 같이 떠돌았다.
-워리, 워리,
마당에 나선 아내가 이마에 손을 얹는다. 빛의 잔 비늘이 냇물 우에 하얗게 반짝인다. 단풍 든 잔목과 풀 사이로 한줄기 누런 기운이 솟았다 내리 꼰진다. 주위를 누비며 삽시에 달려온다. 멀리 보이는 워리에 나는 많이 매혹 되었다.
마음이 달라진 것은 결혼 후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내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신발 끄신고 푸접 없이 쏘다니는 촌 아줌마의 풍경이 곱지 않다. 뒤에 덜렁 수캐까지 어슬렁이며 따른다. 별것 다 신경 쓰네, 그녀의 표정은 그랬다. 일 년 삼백육십오일 농사일에 묻혀 사는 년이 멋은 무슨? 적막강산에서 고적만은 못 참겠다. 추억거리 남기는 것도 그래서고, 가슴 답답하고 까닭 없이 심란해질 때엔 워리와 한바탕 동네 바람 쏘이고 오면 속이 쑥 내려간다. 왜 그렇게 봐요, 나란 여자 이제야 알겠는 감, 매력이 없죠?
아내의 살은 희고 찼다. 풍만한 흰 것에 매혹되어 막상 다가 보면 깊은 곳의 샘물은 좀처럼 뜨겁게 길어 올리기 힘들다. 밧줄 늘이며 아득히 헤집고 들어간다. 거친 바람벽과 원시적인 턴 널은 아뜩한 세월이 남긴 흔적이다. 땡볕에 모내기 하는 아내가 보인다. 철따라 논밭 다루면서도 아내는 나보고 어찌해 달라 손 내민 적이 없다.
여보, 농사해서 얼마 남는다고? 논은 남한테 맡기고 집에서 애나 키우며 편히 놀구려. 내 장사 해서 돈 벌면 우리 시내로 이사 갑시다. 글쎄, 아내는 시틋해 한다. 전 그래도 농사짓는 게 좋아요. 복잡한데선 못살아요. 당신도 알다시피 땅이야 진투죠. 뿌린 만큼 수확 거두고 배짱 편하고, 점 좋아요? 나는 혀를 찬다. 당신은 정말 고루한 촌 아낙네요. 우리 조상들을 똑 떼 닮았네그려.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 그래 농사로 생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아내가 그럼요, 했다. 아내의 숨결이 거칠어갔다. 나는, 뿌리 끝에 뜨거워나는 미묘한 기운을 감각한다. 찬기가 물러나고 먼 곳 어디선가 강렬한 햇볕이 쬐여오는 것 같은, 순간의 경지는 말 못한다. 아내는 두 팔로 등을 껴안아왔다. 둔부의 놀림도 격렬해져 간다. 시작이다. 나도 열망에 부푼다. 일 년 가야 서너 번 꼴로, 아내는 그랬다. 평소엔 곤기에 노그라져 별로 응부도 하지 않고 무감각하다. 좀 어쩌자면 아이, 힘들어요. 신경질을 낸다. 한 밤중이면, 간혹 나의 어머니도 그런 것 같다. 안방에서 느닷없이 성을 내군 했다. 이제 알고 보니,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다. 똑같은 몸놀림과 비슷한 감각 속에서 인생은 말릴 수 없이 저물어 간다.
아내가 동작을 멈추었다. 왜 그러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개겠지, 나는 언짢아했다. 눈 주위가 까만, 그놈의 워리는 개굴에서 머리 밖을 내놓고 잔다. 까닥 자취만 나도 고개 번쩍 쳐든다. 산짐승이나 다람쥐의 바시락거림 일수도 있다. 낯 섬에 무척 예민하나 익숙함엔 항시 방심한 워리가 주인 안방의 동정엔 왜 그리 민감할까? 김이 빠진다. 막판에 그놈은 참말 주인 놀래기로 작심한 것 같다. 느닷없이 창문에 매달려 왔다. 발톱으로 유리창을 박박 긁으면서 음산한 신음을 뱉었다. 살이 찌고 등이 늘씬한 놈이 앞발 쳐드니 두억시니 같았다. 나는 참지 못하고 일어났다. 꽥 소리쳤다. 귀신 났네, 저리 못 가겐?
후에 미움난 개는 늘 발길질을 당했다. 급살 맞은 워리는 나만 보면 피했다. 왜, 왜, 차요? 아내의 목소리는 반드시 앙칼졌다. 시끄럽잖어? 싱거운 놈 새끼! 나는 마치 질투하듯 내 쏘았다. 사람이 어찌 그리 미욱해요? 아내의 눈매가 고울 리 없다. 나는 곤혹스럽다. 그녀와 자리 나누면 은연중 워리의 동정에 신경이 간다. 비릿한 워리의 냄새, 아내의 원시적인 턴 널 속을 아뜩히 찔러오며 앙칼지게 울부짖는 여음이 파김치처럼 기분 죽여준다. 아내는 개띠이다. 하필이면?
아무튼 여자와 개, 피카소의 그림처럼 난 이해 못한다. 혹 아내의 끼 정 못 말리면 애완견이라도 한 마리 사줘야겠다. 아내는 웃었다. 내가 뭐, 귀부인감? 난 간지러워 그런 것 못 길러요. 개탄이 나온다. 당신은 몰라 그러오, 얼마나 귀여운데? 보아하니 당신의 생각도 바꿀 데 됐구려, 개 문화 말이요! 아내는 그 말 알아듣지 못한다. 알아들을 수도 없다.
산굽이 유연한 국도, 산자락 냇가에 붙어 앉은 듬성한 인가가 긴 그림 폭처럼 출렁이었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 내가로 갔다. 물이 깨끗하고 찼다. 흐름이 굴곡 이루며 하얀 불꽃 수없이 피워 올렸다. 바지 걷어 올린 처녀가 머리 감고 있다. 물은 백설 같은 다리 부드럽게 휘감으며 흘러간다. 드리운 검은머리 폭포 같다. 낯선 개의 소리가 났다. 나는 그녀 뒤 자갈밭에 엎드려있던 누렁이가 주둥이 쳐들고 하늘 따먹는 것 보았다. 어릴 때 개를 좋아한 적이 있다. 손을 내밀고 꼬독, 꼬독, 했다. 누렁이가 해를 따먹자 한다. 그녀가 곧 워리, 워리, 했다. 개는 이내 주둥이를 땅에 문대며 괴상한 신음을 뱉었다. 꼬리 흔든다. 집의 개요? 나는 수작을 건넸다. 네, 우리 집 워리에요. 목소리가 밝았다. 워리? 이상한 호칭이다. 개이면 개이지, 워리가 뭔가? 부를 때는 워리, 워리, 해도 남한테 알릴 때는 개라 한다. 우리 집 워리라 호칭하는 사람은 그녀뿐일 것이다. 이윽고 그녀가 워리와 함께 사라졌다. 텅 빈 계곡에 그녀 웃음자취가 야생화로 피어난 듯 이상한 밝음이 나를 한껏 취하게 만들었다.
반년 후 우리는 결혼했다. 그녀네 초가집에 살림을 꾸렸다. 부모형제가 없는 아내는 일가친척도 많지가 않다. 간촐 하고 단순해서 외려 마음이 평온했다. 미안해요. 아내는 주눅 들어있다. 괜찮소, 우리 집도 마찬가지요. 너른 뜰에서 보이는 내 물과 국도, 고요와 해 빛 속에서 워리가 뛰논다. 아내와 함께 맑은 공기 마시고 푸른 잎을 본다.
아버지는 반평생 인민의 적으로 살았다. 우파분자요, 특무요, 이다. 붉은 완장 두른 애들이 집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를 끌어낸다. 승표 친 간판에 헌신짝 걸고 고깔모자를 썼다. 얻어맞고 저주받았다. 나도 새끼특무이다. 영화에서 특무는 교활한 나쁜 놈이다. 간첩노릇하며 우리 편을 팔아먹는다. 우리 집은 늘 불안하고 전전긍긍했다. 어느 날 메케한 흙 먼지가 해 빛 속에 타올랐다. 좁은 뜰에서 웬 절름발이 암캐를 만났다. 시내 공용변소 치러 나간 부모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먹다 남은 반쪽 옥수수떡을 던져주었다. 병신 앞다리 발 뼘 내밀며 암캐는 땅에 주둥이를 박고 나를 힐끔거렸다. 눈곱이 두둑한 오목눈에 허기와 겁기가 허우적인다. 비겁한 놈! 그놈을 향해 나는 느닷없이 발길을 날렸다. 아내의 눈이 못 말릴 만큼 커졌다. 당신 지독하네!
굴뚝 곁에 개굴을 만들었다. 워리한테 예쁜 이름 지어주려 했다. 촌스럽다니요, 이곳에선 다 그리 부르는데? 꾸밈없이 워리, 워리, 한다. 그런 아내가 사랑스럽다. 워리도 좋아해야할 것 같다. 병신 개한테 진 빚 늘 마음에 걸렸다.
아내는 농사를 지었고 나는 장사하러 다녔다. 어쩌다 만나면 온밤을 헤맸다. 솜 같던 아내의 살이 탱탱해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껏 열린 자궁 속을 파고드노라면 그녀가 곧 계곡의 풀과 냇물과 바람과 워리가 된다. 그토록 평화일 수가 없다. 나의 지친 몸과 넋은 안식을 찾는다. 오래간 만에 돌아와 제욕심만 차리고 자기만 하네. 아내가 쫑알거렸다. 미안해, 당신 품이 너무 따뜻해서 그래. 나는 잠꼬대를 한다. 꿈에 가끔 병신 개를 본다. 발길을 날린다. 잔뜩 꼬부라뜨리는 것 보면 우리 집 워리 같았다.
워리가 미워날 데가 많다. 죽통 긁고 땅을 파며 불안스레 끙끙거린다. 나는 아내의 몸에서 굴러 내린다. 저눔의 개! 하고 소리치면 워리는 더 날친다. 워리, 워리, 아내가 낮게 부른다. 이상해난다. 고놈이 인차 쥐죽은 듯 한다. 저눔은 아마 총각귀신인가 봐! 나는 실실거렸다.
바쁜 농사철이면 나는 아내의 일손을 도왔다. 모심기, 벼 가을 외에는 아내의 몫이 된다. 내가 돌아와도 아내는 늘 밖을 나돈다. 논이 아니면 밭을, 나물 뜯는다며 사처 산을 헤맸다. 어디에 어떤 버섯이 나고 어떤 산나물이 나며 어느 철에 무얼 뜯어야 하는가, 너무 잘 안다. 딸애 둘을 낳고도 그 성정에는 변함이 없다. 작은 것 업고 큰 것 손목 잡고, 뒤에는 항시 워리가 따랐다. 어슬렁이는 워리는 눈에 눈곱이 끼기 시작했다. 이젠 보기에도 늙었다.
비실거리는 저눔 잡아치울까? 나는 농을 했다. 돌았어요? 아내는 날카롭다. 우리 워리만한 게 어디 있다구? 하고 눈을 흘긴다. 워리의 이마 쓰다듬는다. 워리는 시커먼 주둥이를 올려 받쳐 들고 아내의 손등을 핥았다. 끙끙거리는 것이 징그러웠다. 차버리고 싶은 불을 겨우 참는다. 전생에 나와 워리는 원수로 만난 것 같다.
내가 보지 못한 장인과 장모는 며칠 사이를 두고 세상을 떴다. 묘지는 마을 뒤 동산에 나란히 썼다. 워리는 한 달 꼬박 그 무덤을 찾아갔다. 두 묘지 앞 가운데에 턱을 박고 뒷발 쭈크리고 까닥 않고 엎드려있다. 보다 못해 아내가 귀를 잡아끌고 데려오면 또 산으로 올리 뛰었다. 워리의 목에 사슬을 매두었다. 워리는 아예 단식을 했다. 워리, 워리, 네가 좋아하는 소뼈다귀이다. 제발, 어서 먹어봐 응? 해도 워리는 눈만 말똥거리며 꼼작 안는다. 꼬박 사흘을 굶었다. 아내는 워리를 끌고 방법 없이 묘지를 찾아갔다. 줄 끊어진 눈물이 워리의 이마 우에 하염없이 떨어졌다. 쨍한 해 빛 속에 슬픔의 고요만이 잠자리날개를 투명하게 반작인다. 아내는 문득 두 볼이 간지러워났다. 훈훈해 났다. 워리가 혀로 눈물을 핥고 있었다. 워리야, 워리! 아내는 흐느끼며 워리를 부등 켜 안았다.
그 후, 워리는 무조건 아내를 따랐다.
감상적인 아내가 걱정스러웠다. 한마디로 일축을 했다. 개란, 다 그런 거야! 아내가 항변해 왔다. 우리 워리는 달라요, 다르다구요! 허, 별일이지? 좀 말려야 한다. 동서고금 엽기적인 이야기는 많고도 많다. 개가 그러는 건 천성이구 말릴 수 없는 본성 때문이라고. 며칠 전에 TV 같이 본 기억 있지? 주인 대신 총을 맞은 개 말이오. 주인은 죽은 줄 알고 산 속에 묻었더니 그 놈이 사흘 후에 이백 키로나 떨어진 집으로 되찾아온 것 보라구. 영리하구 완강하기도 하지! 한 애완견을 유리문 곁에 매두었다나? 그런데 하루에 3만 차 이상 쉴 새 없이 올리 뛴다는 거요. 개 병원에 가 검사했더니 심장에 문제 생겼데요. 그런데 개가 왜 뛰겠소? 결론은 주인아줌마 보고 싶어 그랬다는 거요. 그러니 개한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는 거지. 무작정 주인을 믿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가리지 않고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것! 개는 사나워 보여도 선천적으로 제일 두려움이 많은 놈이기도 할 거요. 모른 긴해도 주인을 배반한 개란 말 들어봤소? 그러니 우리 워리도 당신을 등에 업고 으시대는 게 아니겠소? 웃긴? 개와의 추억을 그만 가지라구, 개는 개일 뿐이지! 생각해 보오, 사람들이 왜서 개를 키워 팔아버리든가 잡아먹지? 개가 단지 개이기 때문이지! 인간은 개의 그런 충성이나 정 같은 것,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구!
나는 아내의 그런 집착과 교감이 싫었다. 너무 아련해 있다 보면 어느 날엔 필연코 쓸모 없는 슬픔만 자초하게 될 것이다. 한편 나는 왜서 이곳에 들어서면 냇가이며 산등성이며 계곡에 온통 누런빛이 번득이고 흰 빛 같은 나래가 날파람 일구는가를 알게 되었다. 워리와 나의 갈등은 아마 끝까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시내에 가면 아내를 부러 개장 집으로 끌었다. 인간은 인간의 짓을 알고 인간의 울안에서 놀아야 한다. 그쯤은 상식이다. 아내가 먹을 리 없다. 맛이 다오, 보신탕이요, 오뉴월에 먹으면 인삼 먹기보다 낫소, 얼려도 막무가내이다! 싫어요, 아이 구역질이 나네. 아내는 항상 밖에서 나를 기다린다. 생콩 씹었을 때의 비린내! 아내한테서는 그런 내가 났다.
부근 마을에 광견(狂犬) 병이 돈 것은 이듬 해 봄. 마을 청년들이 사냥총을 들고 개 잡이에 나섰다. 성한 놈이 건 병든 놈이 건 보는 족족 쏴 눕혔다. 아내는 워리를 끌고 산 속에다 움막을 지어 놓고 가둬 놓았다. 용케 석 달을 버텼다. 지아비 보다 소중하네! 나는 시금털털해 났다. 짐승이잖아요? 아내의 변명이다. 짐승이니 돌봐줘야 한다는 것, 더 골치 아픈 것은 애들도 워리와 죽자 살자 하는 것이다. 죽여치울 놈, 언제 때려잡지 안나봐라! 나는 자주 이를 갈았다. 워리의 가죽은 빛깔이 곱다. 벗겨 말렸다 깔면 습기를 막아 줄 것이다! 껍질 벗긴 워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데롱 달린 꼴을 생각하면 나는 즐겁다. 그런데 워리가 참말 죽어버렸다. 늙고 병들어 죽은 것이다! 워리의 무덤에 가보겠어요? 장사 다녀오니 아내는 우울해서 물었다. 거긴 왜? 부아가 났다.
워리의 무덤은 소나무 밑에 썼다. 아내 부모님의 묘지 아래 한참 떨어진 곳, 뻐꾸기 울음소리가 났다. 잔디 우에 앉은 아내는 하염없이 앉아있다. 사람들 눈을 피해 워리의 시신을 산에 까지 옮겨갔다고 한다. 누가 봤으면 미친년 취급했을 것이다.
아내는 한 밤중이면 자주 깨어났다. 워리가 왔어요. 빨리 문 열고 나가봐요. 나는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등에 땀이 흥근하다. 진정하라구, 악몽을 꾼 거야! 그런가 보네, 난 왜 이럴까? 기가 약해서이다고 했다. 마음이 너무 연연한 것도 탈이고, 아마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이 그리 만들었을 것이다. 결혼하고서도 밖에만 떠돌았으니 할 말이 없다. 아내는 워리의 그늘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했다.
이듬해에 우리는 S현소재지로 이사를 갔다. 애들을 유치원에 보내야 했다. 나는 점박이로 강아지 한 마리 얻어왔다. 아내의 얼굴이 밝아졌다. 예전처럼 그 놈을 워리라 불렀다. 나와 애들도 워리, 워리, 했다.
세집을 잡고 쌀이며 채소 사먹고 소비하는 시내 생활은 항시 빠듯했다. 손재간 있는 아내는 바느질 같은 것 맡아하면서 살림을 살았다. 좁은 집안은 늘 지저분하고 어수선 했다.
나는 장사하다 당하고 말았다. 호떡인줄 알고 삼키려 했더니 사기극에 말려든 것이다. 조선명태 사주겠다고 해서 대부금까지 냈더니 친구가 챙겨서 잠적을 했었다. 모금사기요, 초청사기요, 연변에 그런 세월이 있었다. 아내한테 말 할 수 없었다. 위병까지 도져 몇 달은 집에서 보냈다. 아내한테 미안했다. 다음 달에는 장사 나가겠소. 아내가 눈을 흘겼다. 누가 쫓아내요? 그 몸을 해서 어딜 간다고요? 애들은 꿈 나락에 빠져있다. 우리는 자정을 군밤 굽기로 즐겨갔다. 아내는 전에 없이 집요했다. 매번 그일 끝난 녘에는 땀이 등에 흥건하다. 아무리 어찌해도 닿지 않고 잡히지 않는 무엇이 우리를 허탈에 빠뜨렸다. 안간힘을 쓰지만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촌에서 살아온 아내가 더 그러는 것 같았다.
여보, 너무 그러면 몸 상한다구.
미안해요…이번에 한번만 더, 응?
아내의 어깨뼈가 하나하나 만져 졌다. 많이 여위어 있다. 계곡의 냇물과 늙어 죽은 워리 생각이 난다. 꽃과 풀과 바람의 섭리 같은 것, 거기엔 외로움만 실려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정신적인 아쉬움이 연치의 투명한 날개 짓을 한다, 워리의 무엇과 함께! 좀 못 살면 어떻고 고생스러우면 어떤가? 아내가 옛 모습 잃어가니 마음이 아프다. 잠시야, 우리의 이 고생도! 나는 그 말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거듭 진을 뺐다.
여름부터 아내는 남새장사를 시작했다. 시장 근처에 집이 있어 편리하다. 푼돈이나마 생활에 보탬이 된다. 잔돈 버는 재미가 아내를 매혹시킨다. 애들도 어리긴 하나, 서로 손을 잡고 어른스레 절로 나다녔다. 시가지로 활개 짓 하며 워리를 꼬리에 달고 다니는 아내가 볼만하다. 언제 중개가 된 워리는 앞을 섰다 뒤를 따랐다, 늘 재롱 질을 부렸다. 성가시면 저리 못가 겐? 하고 발질도 하련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워리는 영물이다. 워리야, 얘들 유치원까지 데려다 주고오렴! 하면 워리는 애들 앞에 서서 유치원에 다녀온다. 아내가 쌓아가는 추억 속에 워리는 해 빛 같은 자유와 인정보다 진한 몸짓과 소통, 그것이다!
저녁이면 아내는 바느질감을 맡아 했다. 곯아떨어진 몸체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가만히 잠입을 한다. 워리야, 저리 못가 겐? 하고 잠꼬대이다. 가끔 아내의 몸속에서 나는 어떤 욕망의 까만 미꾸라지 같은 자기와 만난다. 이상하지, 이럴 때면 당신은 누나 같고 엄마 같거든! 하고 핑크빛 젖꼭지를 입에 문다. 그녀가 말없이 콧바람을 뺀다.
아내는 말을 잃어갔다. 그럼 갈게요, 아침 나갈 적의 그 한 마디마저 빼먹는다. 가정에 돌아와서는 일손 놓지 않는다. 일이 말이고 고집스런 심성이다. 우리의 밤 생활도 줄어들었다. 요행 어쩌자면 나를 곱지 않게 밀쳐 냈다. 정말 왜 이래요, 당신 병이야! 하고 돌아눕는다. 무감각해가는 그녀도 아마 병일 것이다. 인간에게는 숙명이란 게 있다. 궁극적 성의 만남 같은 것! 서로의 몸속에서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 그런데 아내의 냉담 증은 말릴 수 없다.
아내가 일어나 벽에 등을 기댔다.
미안해. 나는 허여멀건 아래 도리 드러낸 채 아내의 허벅을 만졌다.
아니, 제가 미안-하죠.
나도 왜 이런지 모르겠어, 우리 촌에 돌아가 살까?
대답이 없다. 어두움 속에서 여윈 얼굴이 흐느끼듯 하다.
갑자기 밖에서 워리가 앙증맞게 짖어댔다. 나는 본다. 소마차들이 삐꺽거리는 흙탕물 고인 네거리, 두억시니 같이 줄레줄레 들어앉은 남새 장사치들 속의 아내를, 느닷없이 워리로 둔갑하는 아내의 얼굴을! 생활은 지겹고 질긴 것이다.
나는 걸핏하면 워리한테 발길질해 댔다. 아버지, 그러지마! 애들이 울먹인다. 왜 저러지? 원망스러워 하는 아내를 보면 묘한 쾌감이 일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똥개 달고 활보하는 여자, 워리의 광환을 쓰고 다니는 것은 결코 순진이 아니다, 깨지 못한!
나의 신경질이 잦아지자 오히려 그녀의 냉담이 좀씩 풀려갔다. 그날 아내가 살이 좀 붙은 돼지갈비 몇 근을 사왔다. 내 몸 많이 축갔노라, 생활개선하자고 한다! 코 구멍만한 세집 안에 고소한 고기냄새가 위장을 뒤집었다. 워리가 아내 발 주위를 뱅글거렸다.
저녁에 아내가 말했다. 어릴 에 소갈비 먹던 어두운 기억을! 설을 쉰다고 생산대에서 소를 잡았다. 장모 되는 사람이 고기 좀 달라니 살점 싹싹 오려낸 갈비뼈 몇 근만 주었다. 노인은 바닥을 치며 세상을 원망했다. 어린 아내는 제 엄마가 왜 우는지 몰랐다. 갈비뼈 만 정신없이 뜯고 핥았다. 핥을 수 없을 만큼 핥은 뼈다귀를 이웃집 워리가 물고 달아났다. 쫓아가 보니 워리는 창고 안, 아빠고깔모자 놓아둔 구석에 숨어 흉물스레 뜯고 있었다. 그 고깔은 이 세상이 다 알고 있는 당시 문화대혁명의 작품이었다. 길이가 한 미터 넘었다. 고깔 회충약 같이 생긴 원추형에는 무슨 타도하자는 글이 씌어져 있다. 반도 남쪽에 친척이 있으니 남조선특무란다. 아내의 아빠, 그러니 나의 장인 되는 사람은 그것을 쓰고 거리로 끌려 다녔다. 후에 처가 집은 그 계곡 마을로 쫓겨났다. 빌어먹을, 특무라니? 우리 둘은 묘하게 만난 것이다. 한족 속담에 한 덩굴의 쓴 참외란 말이 있다. 그녀와 나는 역사의 어쩔 수 없는 쓴 참외였다.
그래 어쨌소, 그 개 말이요?
어쩌긴요?
나 같으면 몽둥이로 실컷 패줄 텐데, 주둥이를 박살내구 말구!
아내가 나의 등을 꼬집었다.
식곤을 못 이겨 아내는 눈에 눈물꼬치를 단채 아래 목에 누웠다. 곱던 손이 거칠었다. 기운 양말 벗기니 발에 떼가 가득 꼈다. 더운 물로 살살 씻어 주었다. 두 발을 가슴에 품었다. 속이 뭉클해 난다. 여보, 미안해, 나 만나 고생 많았지? 아내의 속은 깊다. 미상불 과거에 얽혀 살고 있다. 어제 날에 주은 능마 같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계곡의 냇물 박차고 산 기슭을 치닫는 워리가 눈앞에 선해 났다. 아내의 마음일 것이다. 나는 못난 남편이다.
두 달 후, 예상치 못했던 사고가 났다. 운명의 한 판이었다. 점박이가 어디서 물고 왔는지 웬 뼈다귀를 뜯었다. 지저분하고 그늘진 창고 귀퉁이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를 냈다. 순간 눈에 불이 달리였다. 저 눔의 개, 썩 못 꺼지게? 워리가 날카로운 이발을 드러냈다. 한입 물어버릴 듯이. 저 빌어먹을!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곁에 있던 몽둥이를 잡았다. 이름 못할 저주가 휙 소리를 내면서 워리의 다리갱이로 날아갔다. 속에서 얽히고 맺혀있던 불 뭉치가 쑥 빠져나가는가 싶다. 급살 맞은 워리가 처참한 비명을 지르면서 달아났다. 정신이 후딱 들었다. 후회막급이었다. 내가 무슨 못된 일을 저질렀는가?! 워리는 영원히 다리 병신이 되었다. 아내는 나를 보는 척도 안 했다. 나는 장사하러 떠나야 했다.
워리를 잡느라 나는 꼬박 5년을 꿈속에서 헤맸다. 목을 매 나무 가지에 단다. 몽둥이로 대가리를 후려친다. 숨통에 예리한 칼을 박는다. 껍질 벗긴 놈은 발버둥질을 한다. 피하 근육과 드러난 내장은 상쾌할 만큼 비릿하다. 끓는 솥에 집어넣으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보신탕이 된다. 제밀헐, 개는 반드시 잡아먹게 되어있다. 우리 민족은 조상 때부터 그렇게 해왔다!
두만 강변의 쌀이나 부식품 장사는 괜찮았다. 몇 년 후에는 대부금마저 갚았다. 또 욕심 쓴 것이 문제이다. 북한 차 밀수를 하다가 덜미를 잡혀 3년 판결이 났었다.
봄에 아내가 찾아 왔다. 몸이 부(富)티 나 보였다. 옷도 잘 입었고 정신 상태도 좋아 보였고, 애 둘 씩 데리고 얼굴이 새까매서 헤맬 줄 알았는데 속 썩인 자기가 바보였다. 아내는 별 말이 없다. 나도 묻지 않았다. 이 세상의 여자들이란 아마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 있나 보다.
집 걱정 말구 버릇 고치고 돌아오세요!
아내의 몸에서 요상한 냄새가 났다.
저, 우리 워린 잘 있소, 점박이 말이오? (2)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