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사랑하게 될줄은 정말 몰랐다!
나는 올해 가을을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가을을 마중하고 가을을 배웅할 때면 꼭 비가 오는 가을, 비 때문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슬프던 짙어가는 가을의 그리움과 그 짙음속에서 피부로 성큼성큼 다가서군 했던 가을의 丹楓을 想像하군 한다. 아직은 끝없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빗줄기속에서 가을이라는 이 계절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계절이 含蓄하고 있는 淅淅沥沥,凄凄惨惨한 가을 자체의 二律背反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이 二律背反속의 結實과 落葉을 생갈할 때, 가을 이슬도 맞아보고 싶으며, 맑은 햇빛으로 알록달록 물들으며 가볍게 가을을 날으고 있는 나뭇잎 사이로 너무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가을의 밤 하늘에서 빛나고 있는 달의 哀切하고 또 哀切한 그 맛도 함께 想像한다.어쩌면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일것처럼 미치도록 사랑하게 될것 같은 올해 가을은 丹楓이 絶頂을 이룰것으로 想像하니 특히 이번 가을만큼은 벅찬 마음으로 기다리지 않을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想像의 丹楓이 하늘을 가리고, 노랗고 빨갛게 물들고, 수북이 쌓인 丹楓을 밟으며 그동안 슬프도록, 먼지나도록 찌들었던 생활 속의 스트레스를 말끔히 씻어내고 싶다. 겸하여 등산길에 산새가 울고 다람쥐가 재롱을 부리며 어디서 시원한 물 소리까지도 울려오는 가을을 보낸다면 나의 기쁨은 더 말할 것 없다. 그리하여 丹楓과 함께 가을의 그 기쁨을 想像하며 오늘의 가을 장마비를 넘기고 있는 것이다. 장마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 앞에서 간사 스럽게 몸을 움츠리면서도 눈에는 웃음을 담는 것은, 내일은 반드시 먹장도 가시고 하늘은 맑아지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때문에 아직 丹楓 뒤의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毒婦와 같이 쌀쌀맞고 앙증맞은 바람은 감히 想像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웃음과 함께 뜨거웠던 여름의 아픈 추억들을 모조리 기억 뒤편에 묻을 따름이다. 그러므로써 기억과 함께 하늘을 찌를 듯하였던 여름 더위의 맹렬함을 차근하게 잠재우는 자연의 가슴으로 벌써 노오란 銀杏잎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떨어진 銀杏잎이 제법 차가와가는 아침 가을 바람에 나부끼는 想像은 해본다. 아, 그렇구나! 가을의 노랑은 봄 빛의 노랑과는 차이를 두는구나. 유난히 차분한 땅 빛이 눈에 들어오는 가을, 銀杏은 결국 그 가을 빛을 닮은 것이고, 가을 빛은 그 전체가 가을을 담은 땅의 가슴에 거울마냥 그대로 비쳐있는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런 가을을 기대하고, 이런 가을의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다. 모든 榮華富貴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 같은 가을이지마는, 애인을 잃고 쫓겨남을 당한 공주같은 마음으로 여왕의 가을 한 몸 속으로 슬며시 비비고 들어서고 싶은 것이다. 여왕의 영화부귀로 넘치는 풍만한 가슴과 아름다운 몸은 탐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나 버림을 받은 공주의 아픈 마음은 그만큼 슬프고 외로울 것이다. 그렇다고 결코 客窓寒燈의 외로운 그림자 밑에 얼굴을 묻고 정든 님 그리워 흐느끼는 아낙마냥, 모두가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 머리를 풀어뜨리는 靑孀과 같이 살지않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많이 丹楓을 想像하며 가을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같은 상상속에서 가을을 힘겨워하고, 사랑앓이를 하고 있는 세계속의 모든 인류의 여성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면 그들이 울지않고 웃을수 있을가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쩜 이 모든 것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가을답지 않은 混濁스런 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있어보이는 것이다. 비로소 이 모든 감정이야말로 二律背反의 극치인 것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나뿐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한 모두의 가슴은 그 二律背反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가 바로 이와같은 二律背反속에서 사랑앓이도 해본다.
나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굵은 실타래만큼 풀어낼 이야기가 있다. 젊은 날의 사랑에 대해서는 물론, 젊음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꿈꾸고 있는 불륜의 사랑에 대해서까지. 사랑은 삶의 원동력 같은 것이고, 그만큼 우리 삶을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무치도록 사랑하고, 그 사랑의 깊이만큼 아파하는 것도 마냥 부질없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느낌과, 한편으로는 왜서인지 휑 바람이 부는 것 같은 쓸쓸함이 뒤섞인 이 가을의 장엄한 시작을 비속에서 맞고 있다. 마치도 가을이 짧은 애달픈 마음을 핑계 삼아서런듯, 하늘에서는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지만, 내일은 반드시 비도 멎고 하늘은 맑아지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絶對的인 幸福도, 絶對的인 不幸도, 또 絶對的인 善도, 絶對的인 惡도 삶의 양면성을 이해하며 조화의 눈으로 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자 한다. 말처럼 그렇게 쉽고 간단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러한 마음가짐은 사랑앓이를 하며 힘겹게 느껴지는 이 가을이 있으므로 나는 나의 삶을 한 단계 더 성숙시킬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다. 그래, 어떻든지 다 좋다. 한 낮에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던 지난 8월 덕분에 여름 하늘을 놓치고 지금은 10월을 맞으며 9월을 보내고 있다. 가을이 짜르다고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높다란 가을 하늘을 감상할 수 있는 날도 줄었다고 한탄하지 않는다. 여름에 많이 눈 마주치지 못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미안함을 自責하지도 않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가을에 태어나,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을 가지고 생을 살다가, 다시 가을에 가고 싶다!
글쓴 이: 재미 조선인 작가 유순호 (liushunhs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