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보내는 첫 번째 편지
London에서 하루 밤을 묵고, 곧바로 두시간 거리의 남쪽 항구 Southampton로 이동, 북극으로 항로를 잡은 Sea Princes호에 승선했다. 영국은 하루 동안에도 4계절이 있다는 말이 있다지만 아침은 맑고, 덥다는 느낌이었는데 승선 무렵에는 하늘이 낮게 가라앉고 기온도 꽤 내려간 듯했다.
오후 5시, Southampton을 출항, 기수를 북쪽으로 잡고, 그 날 밤과 다시 하루를 더 달려 NORWAY 남단의 항구, Stavanger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북대서양의 수평선만 바라본지 꼬박 36시간, 두 밤을 지내고 나서야 수평선에 검은 바위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불빛들이 더러 눈에 들어왔다.
밤이라고 해야 어둠은 잠시 뿐 백야(白夜)의 시간에 변화 없는 수평선의 풍경은 시간 감각에 혼란을 준다.
일출 4:27분, 일몰 10:50분.
기온은 영상 14도C.

Stavanger는 17-8세기부터 형성된 목조건물들이 아름다운 노르웨이의 역사를 안고 있는 네 번째 크기의 항구.
옛날 VIKING 근거지 중 하나.
수산업 쇠퇴와 더불어 쇠락 해가다가 1969년 석유가 발견되면서 다시 생기를 찾게 된 도시.
부슬거리며 내리는 비속에 동화의 나라 같은 항구에 발을 딛었다.
경사가 심한 빨강 지붕과 흰색 목조 건물들이 그림 엽서 같다. 그런데 도무지 사람들의 왕래를 볼 수 없어서 마치 무대 위에 세트를 지어 놓고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고요랄까,
마법의 피리를 따라 모든 사람들이 어디로 떠나버린 것 같은 그 휑한 공허의 거리라니...작은 쓰레기 조각 하나 보이지 않는 정적의 항구 위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다.
이 나라 4번째 도시라는데 인구는 기껏 12만, 하기야 노르웨이 전체 인구가 450만 명이라니... 북극까지 이어지는 길게 이어지는 국토의 해안에 띄엄띄엄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면 인구 밀도로 보아 12만이 모여 사는 것만 해도 대도시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신석기 시대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찾아 나섰다.
목초지 위로 바다 바람이 흩뿌리는 빗방울과 함께 제법 서늘하다.
우리나라 옛날의 움집과 같은 구조의 반 지하의 집. 땅을 파서 다지고 벽을 세워 지붕을 덮은 후 그 지붕위로 다시 흙을 덮어 직사각형 무덤 같은 형태의 거주지, 집 입구를 들어서면 한 가운데 노지(爐址)가 있어 돌로 둘러싸인 그 노지(爐址)에 말린 가축 분뇨로 모닥불을 피우고, 양쪽 벽을 따라 짐승 가죽을 깔아 침상을 만들었다. 환기를 위해서였는지, 지붕 위와 벽 중간쯤에는 공기가 들어오도록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다.
그 굴속에 모여 앉아 맷돌로 곡식 껍질을 벗기고, 양털을 뽑아 실을 뽑아 내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부근 초원에서 심한 분뇨 냄새가 나서 목초지 위 양들에게 눈을 흘겼는데 웬걸, 언덕 아래의 목초지위에 갈매기들이 떼를 지어 날아드는 것이 이상하다 느껴졌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발견한 것은 엄청나게 큰 탱크를 실은 살수차 한 대가 목초지 위에 버티고 서서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는 것, 처음 물을 뿌리고 했는데 색깔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누런 갈색의 입자들이 흩날리고, 갈매기들이 그 앞으로 마구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아, 악취의 근원이 그것이었다. 그 탱크를 가득 채운 누런 분뇨를 살수차를 이용해서 목초지 위에 뿌려대었던 것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가축을 먹일 목초를 기르기 위해 뿌려대는 그 유기 농법이라니...
빽빽한 아름드리 나무 숲 사이, 인적은 없고, 빨간 지붕의 한가한 집들이 비에 젖어갔다.
어느 집에서나 정성스럽게 가꾼 작은 정원에 핀 꽃들 중에 양귀비꽃들의 선명한 빨강, 노랑 색들이 강렬했다.
언덕 위 높은 망루는 지금은 방송용 시설이라는데, 옛날은 오래도록 바이킹들의 망루였다고 한다.

바이킹들이 먼 곳에서 노략질을 해서 항구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기도 하고, 혹은 배를 타고 낯선 이방의 적들이 나타나는 것을 감시했을 그 망루 위에 올라갔을 때는 비바람이 너무 심해서 서 있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비바람 속에서 그들 바이킹들의 장례(葬禮)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뗏목을 만들고, 그 뗏목 위에 장작을 쌓아올려 충분히 기름을 부운 다음, 시신을 장작 위에 눕힌 뒤 그 뗏목에 불을 붙이고, 썰물 때 닻줄을 잘라 바다 위에서 화장된 재가 바다 위에 흩어져 가도록 하는 그들 사별의식은 불과 물과 바람 속으로 생명을 돌려보내는 의식이었을까.
배 위에서 시체에 불이 붙어 바다 위로 흘러가는 것을 이 망루에 서서 사자(死者)와의 석별을 확인했을까.
백야(白夜)와 안개, 배는 Stavanger를 떠나 22노트로 북쪽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데 바깥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몽롱한 시간만 계속되고 있다.
수평선도 보이지 않고 하늘과 바다가 어둠과 안개에 섞이면서 모든 공간이 비현실적인 몽환 속에 빠져든다.
하루 밤이 또 지나 뿌우연 새벽 속에 수평선 멀리 보이는 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산꼭대기와 계곡을 메우고 있는 만년설이 그림 엽서 같은 느낌이다.
여름날에도 녹을 수 없는 산꼭대기 눈들은 여름을 다 견디고 다시 그 위에 새로운 눈을 덮어쓰고, 덮어쓰면서 영겁의 세월을 그대로 버티고 있으리라.
Trondhiem 항.
997년 Viking 왕 Olav Tryggvason이 자리잡은 오래된 항구, 노르웨이 3번째 도시이지만 인구는 15만.
북쪽으로 하루 밤을 이동해 오는 동안 기온이 더 내려간다. 9도C. 14층 데크에 올라가 찬 바람 속에서 아침 커피를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배 안에서의 식음료는 모두 공짜.
한때 많은 양의 구리를 생산했다는 이제 폐광이 된 구리광산을 가보기로 했다.
현재는 한때 번성했던 흔적만 있을 뿐 쓸쓸한 산 속의 작은 집에는 지붕에 풀이 무성했다. 자운영 꽃 같은 느낌의 보라색 꽃들이 흰 꽃의 클로버 들 사이에 무리 지어 지붕을 덮고 있었다. 지붕에 흙을 얹어 자연스럽게 풀이 돋고 작은 들꽃이 피는 이런 지붕 양식이 바이킹씩 지붕이라고 했다. 혹독한 추위를 막기 위한 배려였으리라.

안전모에 비닐 옷까지 갖추어 입고 넓은 폐광 안을 구경하고 돌아 나오자 한때 구리 광석을 실어 날랐을 협궤 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전나무와 자작나무 무성한 숲길을 작은 꼬마 기차로 구경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알래스카에서 협궤열차로 록키산맥 정상 부근까지 달렸던 기억을 더듬었다.
일조량 때문이겠지만 평소에 친숙한 풀들- 질경이, 클로버들의 잎의 크기가 한국에서보다 5분의 1정도로 축소해 놓은 듯 작다. 그렇다면 우거져 있는 커다란 전나무와 자작나무들은 100년은 넘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엷은 보라색으로 만개한 마로니에 꽃들과 정원의 양귀비꽃들....

길게 카이젤 수염을 기른 기사의 유머러스한 표정이 재미있어서 잠깐 쉬는 동안 기념 촬영을 했다.
갑자기 백인들 몇이 반갑게 다가와 기념 촬영을 하자고 해 돌아보았더니, 어제 스로트머신에서 20달러를 땄다고 좋아하던 친구들이었다.
바로셀라에서 왔다고 해서 두 해전 그곳 올림픽 경기장에 갔던 이야기와 황영조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어깨를 으쓱하였다